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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세규 Apr 28. 2021

나의 나라 드라마에서 장혁이 맡은 역사 속 인물은요?

제3 대 왕 태종 ( 이방원)


혹시 아시는가? 서울 서초구 내곡동에 태종 이방원의 능이 있다. 헌인릉이다. 네이버 길 찾기에 주소(서울특별시 서초구 내곡동 산 13-1  )를 입력해 본다.



이곳은 헌릉 (조선 2대 왕 태종 ), 인릉 (조선 23대 왕 순조)를 모신 능(陵)이다.

아마도 서울에서 중. 고등학교를 다닌 분들이라면 학교에서 소풍으로 한 번쯤은 와봤으리라 생각한다.

그때는 태종 이방원의 능이란 걸 몰랐다. 다만, 먼지 풀풀 날리는 뙤약볕 아래서 있었던 기억, 그늘을 찾아 삼삼오오 모여 친구들과 김밥을 먹고 사이다를 마시며 웃고 떠들던 기억들만 희미하게 남아 있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 그 시절이 자세히 나온다. (어쩜 그리 마음을 짠하게 하던지..)' 시끌벅적 ' 한 능 아래의 어린 백성들을 내려다보며 태종은 흐뭇하셨을까..

주관식 문제 하나를 낸다. 다음 드라마와 주인공을  보고 떠오르는 임금을 쓰시오. 용의 눈물 (유동근),  정도전 (안재모), 육룡이 나르샤 (유아인), 나의 나라 ( 장혁)

그렇다. 정답은 당대 최고의 배우들이 역할을 했던 조선 왕조 세 번째 왕인 태종이다.

나는 요즘에서야 사극 드라마를 즐겨본다. 사실 학창 시절에는 KBS 대하드라마를 잘 보지 않았다. 그때 잘 챙겨봤더라면 국사 점수가 더 잘 나왔듯 싶다.

인물과 인물, 사건과 인물들 간의 흐름 속에서  왜 그랬을까?라는 의문을 품어본다. 지나온  역사가 남긴 조상들의 흔적을 통해 현재의 삶을 뒤돌아본다.

조선왕조의 임금인 태종(이방원) 그의 삶을 알아보자.


       - 태종 왕 어진 (상상도) -

1367 (출생) ~ 1422 (사망) 55세의 나이로 사연 많은 삶을 마감했다. 재위 기간은 1400~1418까지 18년을 왕으로 있었다.

잠시 태종까지의 역사를 상기해본다.
태조 (이성계) 즉위 - 1차 왕자의 난 - 정종 (둘째 아들 방과 ) 즉위  - 2차 왕자의 난 -  태종 (다섯 번째 아들 방원) 즉위.

태조는 조선 건국의 결정적 역할을 한 이방원 대신 두 번째 아내의 아들을 세자로 삼으려 하자 이방원은 아버지의 뜻을 거스르고 1차 왕자의 난에서 배다른 아우들과 개국 공신 정도전을 죽이며 2차 왕자의 난에서는 넷째 형인 이방간을 유배시킨다. ( 아버지인 이성계는 더 이상 아들끼리의 싸움을 보고 싶지 않아 넷째 방간을 적극 말렸으나 형제의 대결에서 이방원의 승리로 끝난다.)

이성계는 이과정을 보며 속에서 천불이 났다. 아들들이 서로 싸우고 죽이며 왕권 다툼을 했으니 아버지로서 얼마나 마음 아팠겠는가.

태조는 모든 걸 등지고 본래 그의 근거지였던 함흥으로 떠난다. 그러나 이방원은 형제와 공신들을 죽이고 왕위에 올랐다는 비난의 굴레에서 벗어나려면 상왕인 아버지 허락을 받아야 했다.

이를 위해 태조를 궁으로 모시려 신하들을 함흥으로 보냈는데 그들은 깜깜무소식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역사 기록에는 두 사람의 신하가 죽임을 당했다고 한다.)

여기서 유명한 함흥차사라는 고사가 유래되었다.



조선 초 태조 이성계를 모시러 함흥에 갔다가 돌아오지 않은 사신을 가리키는 말로, 심부름을 간 사람이 소식이 아주 없거나 또는 회답이 좀처럼 오지 않음을 비유하는 말이다.

- 출처 네이버 지식 백과 -

어떻게든 상왕인 아버지로부터 왕위 계승의 정당성을 확보해야 하는 이방원의 입장에서는 난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결국 함흥에 있던 태조는 한양으로 다시 돌아오게 되는데 이때 야사로 전해지는 일화가 있다.

아버지를 맞으러 지금의 뚝섬 인근까지 마중 나온 방원을 보고 활쏘기의 신궁인 이성계는 활시위를 당겼으나 이를 방원이 피했다. 백발백중인 자신의 활에서 살아난 방원을 ' 하늘의 뜻 '이라 여겨 그를 인정했다는 이야기다.

또한 가지는 지금의 성동구 한양 대학교 뒤쪽 중랑천의 다리 근처에서 이성계가
방원에게 활을 쐈지만 정자의 기둥에 화살이 꽃였다는 이야기다. 여기서 유래해 지금도 ' 살곶이 다리 '라고 불리는 다리가 있다. 두 가지 이야기는 야사에서 전해진다.

태종 이방원은 왕위에 오르기까지 비록 많은 사람을 죽였지만 그의 아들인 세종이 조선 최고의 성군으로 많은 업적을 남길 수 있는 조선 초기의 기반을 다져준 건 사실이다.

사병혁파. 의정부 설치. 숭유억불 정책. 호패법. 신문고 제도 등등 (시험에 나온다.)이 태종의 업적이다. 그는 왕권 강화를 위해 세종의 외척까지도 제거를 했다.

보통 왕들은 살아 있는 동안 양위 ( 임금의 자리를 물려줌  )를 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태종은 셋째 아들 충녕대군 세종)이 세자가 된 지 얼마 안 되어 바로 양위를 하고 세종의 뒤에서 든든한 후원을 했다.

이성계와 이방원, 참으로 사연이 많은 부자간이다.

오늘날로 치면 이방원은 행정고시를 합격했다. 과거시험을 통과한 조선왕조의 유일무이한 왕이다. 고려시대의 과거는 진입장벽이 높아서 귀족의 자제나 사립 교육기관에서 공부를 해야만 하는 아주 어려운 시험이었다. 그 어려운 과거시험에 합격한 이방원은 대단히 총명한 인물이었다.

그가 합격증명서를 아버지인 이성계에게 보여주자 너무 좋아 몇 번이고 읽고 또 읽었다고 한다. 하지만 문무를 다 갖춘 훌륭한 아들을 둔 태조는 왜 여덟 번째 막내아들, 그것도 둘째 부인의 아들인 방석에게 왕위를 물려주려 했을까..


방원이 정몽주를 죽인 이후 태조와 사이가 멀어지기 시작했다. 정몽주를 제거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을 태조는 몰랐는지 의문이다. 좀 더 냉정히 정치적인 판단을 했더라면 아들을 그리 모질게 대하지 않았을 텐데 말이다. 둘째부인과 정도전의 입김이 태조의 생각을 흐리게 만들었던 것 아닌가.



예상 도착시간 37분, 33Km. 자동차로 우리 집에서 헌인릉까지의 도착 시간과 거리다. 이렇게 가까울 수가. 능 옆으로 있는 산책로가 있는데 인적이 드물고 한가 하다고 한다.


주말에 딸아이들을 데리고 가야겠다.
살아 숨 쉬는 역사 교육이란 별거 없다.
실제로 가보는 거다. 몸으로 체험한 역사의 현장이 최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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