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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세규 Sep 09. 2021

창밖, 가을 하늘 커피, 고종은 무슨 생각에 잠겼을까.

제26대 왕 고종

고종...

참... 사연 없는 사람 어디 있으랴만, 할 말이 많은 조선 26대 임금이다. 1852 ~ 1919. 67세의 일기로 승하 하기까지 고종에겐 많은 일들이 있었다. 


너무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라 아버지 흥선대원군이 섭정을 했다. 고종은 성인이 된 후 친정을 하려 했으나 부인  민비(명성왕후) 일가와 흥선대원군의 권력 싸움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결국 아버지와 등을 졌다.


고종이 남긴 역사적 과오는 근대화로 흘러가는  시대의 흐름을 너무 늦게 깨달은 거다. 또한 아내 (명성왕후, 민 씨)가 민 씨 세력을  옹호하고 키우는 걸 내버려 둔 일이다.


흥선대원군에 의해 안동 김 씨의 세도정치가 막을 내렸건만 민 씨 일가의 세도정치를 방관했다. 고종은 어떻게 해서든 또다시 세도정치로 돌아가는 걸 막아야 했다.


차라리 아버지 편을 들어서 좀 더 강력한 왕권을 만들어 조선 내부를 안정화시키고 외세에 대응했다면 어땠을까..

고종이 임금으로서 제 역할을 하지 못한 건 흥선대원군의 책임이 크다. 고종에게 힘을 실어주고 중요한 국가 대사는 뒤에서 조언을 해야 했다. 흥선 대원군의 권력에 대한 집착이 나라를 망국의 길로 이끄는 역할을 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누군가가 그랬다. 내 인생을 소설로 쓰면 아마도 책  수십 권을 쓸 수 있을 거라고..


고종 역시 그렇다. 그가 조선 26대 왕위에 오른 과정부터 출발해보자.


그는 1852년, 흥선 대원군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세도 정치 시기에 왕족으로 태어난 것은 그리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강화도에서 농사를 짓던 철종을 왕위에 올린 것처럼  안동 김 씨는 허수아비 왕을 원했다.


그들은 왕의 자질을 갖추기에 알맞은 왕족들을 모함하고 역모의 누명을 씌워 유배지에서 죽였다. 싹이 보인다 싶으면 미리미리 ' 싹둑 ' 잘라버린 거다.


흥선대원군은 이런 세도정치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 상갓집 개 '라는 별명을 얻으며까지 모자란 듯, 때론 미친 듯 위장하며 살아야 했다.


필자가 학창 시절 읽은 책들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책이 있다. 사실에 기반을 둔 소설 운현궁의 봄 (김동인 씀)이다. 1933년 4월 ~1934년 2월까지 조선일보에 연재된 역사소설인데 흥선대원군의 삶을 잘 표현했다. 현대의 역사소설처럼 쏙 빠져들게 하는 뭔가가 있다.

헌종 (24대) 후손 없이 승하를 했다. 혈통으로 따지자면 먼 왕족인 철종 (25대)이 왕위를 이었다.


철종 역시 후계자가 없이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했다. 이하응 (흥선대원군)은 오랫동안 기회를 엿보다가 자신의 아들 (고종)이 왕으로 등극할 수 있도록 조대비를 설득했다.  


조대비 (신정왕후) 헌종 (24대) 어머니다. 풍향 조 씨로 안동 김 씨와 한 때 세를 겨뤘다. 철종 사후 다음 왕을 그 당시 왕실 최고의 어른인 조대비가 지명할 수 있는 권한이 있었다.


자신의 아들을 왕으로 삼기 위해 흥대 원군은   안동 김 씨를 못마땅하게 여긴 조대비의 의중을 미리 읽었다. 조대비는 안동 김 씨를 이하응과 손을 잡고 정계에서 몰아내기 위해 고종을 다음 왕으로 올렸다.


임금이 된 고종의 재위 기간은 1863.12~1907.7 43년 7개월이다. 워낙 굵직굵직한 사건들이 많은 터라 고종 재위 시절 일어난 일들을 연도 별로 간단히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1863년.

<조대비의 수렴청정>

12세의 나이로 왕이 되다.


1866년.

<흥선대원군의 집권>

조대비 수렴청정에서 물러나고 흥선대원군이 실권을 장악하다.


<천주교 신자 학살>

천주교도를 대대적으로 학살하다. (약 8000여 명) 프랑스 신부를 죽여 프랑스 함대가 강화도를 침범하다.


<병인양요 발생>

조선 <-> 프랑스 함대, 강화도에서 싸움. 결론은 프랑스의 패배


1871년.

<신미양요 발생>

조선 <-> 미국 함대. 강화도 침범. 조선의 승리.

<전국에 척화비 세움>

서양과 두 번의 전투에서 승리한 대원군은 자신감을 갖고 더욱더 강한 쇄국 정책을 시행,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한 어리석음을 범함.


1873년

<흥선 대원군 탄핵>

고종 집권. 명성왕후(민비), 민 씨 다시 세도정치 시작.


1876년.

<민 씨의  개방정책>

일본과 수호 제약 체결


1882년.

<임오군란 발생>

신식 군대인 별기군과의 차별 대우로 인해 발발한 구식 군대의 병란.


1884년.

<갑신정변 일어남>

급진 개화파의 정치 개혁과  일본의 도움을 받고 근대화 추진. 청나라 군대의 개입으로 3일 천하로 끝남


1894년.

<동학 농민운동>

전봉준을 중심으로 한 봉건제도 타파, 외세를 배척 하자는 농민들의 반란.


>> 청. 일 전쟁의 원인 제공. (동학농민운동을 진압하기 위해 청나라가 조선에 군대를 보내자 일본군도 군대를 파견한다.)

>> 일본의 승리.


1895년.

<강화도 조약 체결>

일본이 주도권을 가진 불평등 조약


<을미사변 발생>

명성왕후가 주도한  친일 세력 제거에 큰 불만을 가진 일본의 명성왕후 시해 사건. 시신에 석유로 불을 지르는 잔혹한 일이 벌어짐.

1896년.

<아관파천>

일본의 거침없고 무자비함에 신변 위협을 느낀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

-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할 때 고종이 걸어.       갔던 길로 추정되는 길 -


1897년.

<대한제국 수립>

고종, 러시아 공사관에서 덕수궁으로 다시 돌아옴. 나라의 이름을 대한제국으로 바꾸고 자주독립국가로의 출발을 다짐.


1904년.

<러. 일전쟁 발발>

일본의 승리로 우리나라에 대한 지배권을 강화 시킴.


1905년.

<을사조약 체결>

일본이 우리의 외교권과 통치권을 강제로 박탈함.


1907년.

<헤이그 특사 파견>

네덜란드에서 열린 만국평화 회의에 특사 파견, 을사조약의 부당함을 알림. 세계 여러 나라에게 주권회복을 호소함.


>> 일본은 특사 파견을 추궁. 고종을 강제로 퇴위시키고 순종을 등극시킴.

>> 결과적으로 일본의 한국 지배를 더욱 가속화함.


1919년.

1월 21일. 67세로 덕수궁에서 승하함.


태조 이성계 (1대)에서 출발한 조선왕조는  결국 고종 (26대)에 이르러 공식적인 막을 내린다. 고종은 조선 왕국 26대 임금과 대한제국의 1대 황제이다.


아직 순종 (27대)가 남아 있지만 사실상 고종 (대한제국 1황제)을 끝으로 조선은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안으로는 임오군란, 갑신정변, 동학 농민운동. 밖으로는 청. 일전쟁, 을미사변 , 아관파천, 러. 일전쟁까지. 각 사건 하나하나를 들여다보고 책으로 엮으면 수많은 사연들이 담길 듯하다.


아버지  흥선 대원군은 외척 세력으로 인한 세도정치의 폐해를 바로 잡으려 했다. 그는 고종의 왕비 고르고 골라서 일부러 부모가 없고 외척이 없는 민비 (명성왕후)를 간택했다. 그러나 민비가 민 씨 세력을 모아 또다시  세도정치를 할 줄이야. 대원군은 판단을 잘못했다.


일본에 의한 을미사변 (명성왕후 시해 사건) 이후 쫓기듯 아관파천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 동안 고종은 커피를 즐겨 마셨다고 한다.

커피는 심리적인 안정감을 준다. 나라는 망국으로 치닫고 있는 상황에서 조선의 계절은 가을로 흘러가고 있었다. 창밖 가을 하늘을 바라보며 커피 잔을 든 고종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고종의 능은 홍유릉으로 경기도 남양주시 금곡동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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