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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세규 Sep 02. 2021

철종, 세도정치의 절정, 더 이상 못 참겠다 농민봉기.

제25대 왕 철종


다음 사연은 조선 후기 어느 농민의 삶을 상상력을 통해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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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좀 들어주세요. 저는 올해 나이 28세. 직업은 농부입니다. 1862년에 살고 있지요. 얼마나 살기 힘든지  하소연 한번 시원하게 해 보렵니다.


저는 땅이 없습니다. 땅을 빌려서 농사를 짓고 있어요. 주인에게 빌린 값을 지불하고 어머니와 처. 자식들이 근근이 먹고 삽니다. 그런데 말이지요. 어느 날부터 제가 땅을 빌렸으니 그건 나라의 땅을 빌린 거라며 세금을 내라고 하네요.


아니 생각을 해보십시오. 농사짓는 일이 어디 그렇게 쉽습니까? 흉작일 때는 배고픔을 참고 하루하루 견뎌야 하는데 주인과 나라에게 이중으로 세금을 낼 돈이 어디 있냐구요.


군대를 안가고 대신 내는 군포도 그래요. 얼마 전 돌아가신 아버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아이에게도 군포를 내라니요.


너무 말이 안 되잖아요. 백성을 쥐어짜도 유분수지. 이건 도가 지나칩니다.


또 한 가지, 나라에서 그러대요. 춘궁기에 곡식을 빌려 줄 테니 추수 때 이자를 조금만 내고 다시 갚으라고요. 처음에는 좋았어요. 그렇지만 이 제도를 이용해 사리사욕을 챙기는 관리도 생기더군요.


제 친구는 얼마 전 가을에 갚으려고 관아에서 쌀을 빌려왔어요. 가득 담긴 곡식 자루를 보고 다행이다 싶었는데 웬걸, 열어보니 반은 돌이 섞여 있었어요.


저만 이런 게 아니에요. 주위를 둘러보면 다들 비슷비슷해요. 이런 상황에서 살 수 있다는 게 신기하죠.


옆집 아저씨가 그러대요. 더 이상 사람들이 못 참고 들고 일어났다구요. 내일 자기도 그들 무리에 갈 거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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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란은 이와 같은 백성의 삶 속에서 일어났다. 전정, 군정, 환정 이른바 삼정의 문란이 극에 달한 조선 왕조 마지막 왕인 철종 시대였다. (고종, 순종은 일제 지배하의 대한제국)


세도정치 절정기에 달한 조선은 관료들의 부정부패가 넘지 말아야 할 선까지 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암행어사를 파견해도 소용없었다. 근본적인 문제 (세도정치로 인한 정치적 혼란) 때문에 조선 사회의 삶의 무게는 점점 더 가중되었다.


한 나라의 지도체계가 무너졌다. 조선은 왕이 다스리며 위계가 있는 정치가 아닌 특정세력 (안동김씨) 세상이 되어버렸다.


철종이 임금 자리에 올랐을 때의 상황은 다음과 같다. 흔히 철종을 강화 도령이라 말한다. 그는 24대 왕인 헌종의 7촌, 왕족으로 강화도에서 농사를 짓다가 엉겁결에 왕위를 이어받았다.


헌종이 후사가 없이 젊은 나이에 승하를 하자 순원왕후 (헌종의 할머니, 순조의 정부인)는 대왕대비의 자격으로 다음 왕인 철종을 지명했다.


군더더기를 빼고 간략하게 영조 (21대 왕) 이후 가계도를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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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

 ○                 <직계>      <방계>

(사도세자)-  정조 -    은언군 -   은신 군

                          ○              ○            ○

                        순조         철종   흥선대원군

                          ○                               ○

                   (효령 세자)                   고종

                         헌종                            ○

                   <후사 없음>                   순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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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종이 왕위에 오르기 전 강화도에서 농사를 짓고 살아야 했던 배경을 살펴보자.


정조의 서자인 은언군은 철종의 할아버지다. 이분은 1786년 (정조 10년)에 홍국영과 함께 역모죄로 몰려 강화도로 유배를 떠난다. 가계도에서는 생략되었지만 이광이라는 인물이 철종의 아버지다.


은언군은 순조 때 사사되었고 이광은 살아남아 귀양에서 풀려 아들인 철종을 낳게 된다.


철종은 아버지(이광) 살아생전에는 나름 왕의 종친으로 별 어려움이 살다가 10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14살에 이르러 강화도로 떠나게 된다. 큰형이 역모 사건에 연루되어 연좌제를 받았기 때문이다.


이후 철종은 평범한 농민으로 살다가 어느날 하루 아침에 조선의 임금이 된다.


강화도 행렬도(江華島行列圖)가 북한에 남아 있다. 철종을 모시러 가는 모습이 담겨 있는데 이 행렬을 보고 철종은 큰 형의 역모죄 때문에 자신을 잡으러 온 줄 알고 산속으로 도망쳤다고 한다. 같이 도망가던 둘째 형은 다리가 부러졌다고 하니 얼마나 다급했었는지 짐작해 볼 수 있다.


철종이 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관료들 사이에서 강화도령이라 불린 건 농사를 짓고 평범하게 살던 중 갑자기 임금의 자리에 올랐기 때문이다. 먹고 살기 급급 했던 강화도에서 상상조차 하지 않았던 일이 철종에게 일어났다. 자고 일어나니 다음 날 왕이 된 거다. 19세의 왕은 세자 수업이 전혀 되어 있지 않았다. 어리버리한 농사꾼이었다.


순원왕후(안동 김 씨)가 철종을 왕위에 올린 사실에는 두 가지 입장이 있다.


첫째는 가계도에서 보듯 헌종의 후사가 없었고 가장 가까운 왕족을 찾아보니 철종밖에 없었다. 둘째는 왕을 허수아비로 두고 안동 김 씨가 권력을 마음껏 휘두를 수 있는 최적의 인물이 철종이었다.


나라가 온통 안동 김 씨에 의해 좌지우지되었으니 세도정치는 극으로 치달았고 절정에 이르렀다. 삼정의 문란과 민란, 어디 의지 할 곳 없는 백성들은 최제우가 창시한 신흥 종교 동학을 신봉하게 됐다. 

                              -  철종 어진 -


임술민란이란 1862년(철종 13) 전국에서  일어난 민란을 총칭하는 말이다. 한 해동안 기록된 민란이 37번이었고 어떤 연구에 의하면 70개 지역 이 넘었다고도 한다.


조선왕조실록에서 철종 13년의 기록 일부를 발췌해본다.


2월 29일

진주의 난민이 병사를 협박하고 인명을 살상한 일에 대한 조처를 품처하게 하다.


5월 5일

익산에서 난을 일으킨 임치수·이의식 등을 부대시로 효수하게 하다.


6월 11일

개령 민란의 수창자를 효수하고 전 현감 김후근을 벌하게 하다.


°°°°°°°°°°


11월 2일

함경도 민란의 수종을 엄히 핵실하게 하다.


아무리 허수아비 왕이었을지언정 철종은 여러 지역에서 일어나는 민란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었다. 임금 자신도 어린 시절에 농부였으니 무엇보다도 백성의 삶을 잘 알고 이해할 수 있었리라.


철종 13년 4월 24일

백성을 괴롭히게 하는 세금 등을 혁파하게 하다


하교하기를,

"근래에 듣건대 장시(場市)와 포구(浦口)에 명분 없는 세금과 제언(堤堰)의 전답(田畓)을 억지로 빼앗는 폐단이 있어 여러 가지로 폐해를 끼치고 있다고 한다.


이와 같은데 백성들이 어떻게 편안하게 살아갈 수 있겠는가? 묘당(廟堂)에서 각도에 관문(關文)을 보내어 신칙시켜, 만일 백성을 괴롭게 하는 것이 있으면 일체 혁파한 뒤에 계문(啓聞)하게 하라."

하였다.


철종 13년 6월 12일

삼정의 폐단을 바로잡는 데 대한 시책을 행하다


인정전(仁政殿)에 나가서 친히 전부(田賦)·군정(軍政)·환곡(還穀)의 삼정(三政)의 폐단을 바로잡는 데 대한 시책(試策)이 있었다. 이어 대신(大臣)과 이정청(釐整廳)의 당상(堂上)을 인견하였다.


삼정의 폐단을 고치기 위해 만든 임시 관청인 삼정 이정청은 철종이 만들었다. 나름 백성을 위해 노력했으나 뒷받침이 약한 탓에 얼마 지나지 않아서 철폐되었다. 


아무리 좋은 정책이라 할지라도 철종은 세도가들의 압력을 견딜 수 없었다. 그저 하자는 대로 따를 뿐. 그래서인가. 철종 역시 짧은 생애를 (  1831 ~ 1864  / 33세) 마치는데 말년에는 술과 여색에 빠져 있었고 늘 강화도를 그리워했다고 한다.


부정부패와 민란, 신흥 종교 (동학)의 발생은 조선 사회를 파국으로 몰아갔다. 27명의 왕들 중 철종이 실질적인 조선왕조의 마지막 임금이다. 26대 고종, 27대 순종이 있지만 그들은 일본 지배 아래 왜곡된 조선왕조 실록으로 기록됐다.


통일 신라, 고려 말기, 조선 말기의 공통점은 백성들의 삶이 비참했다는 거다. 관료들은 제 배만 채우기에 여념 없었고 백성은 피눈물을 쏟아야 했다. 살길이 막막했던 부모는 자식을 팔고 세금을 감당하지 못해 노비가 되는 사람들도 생겼다.


어쩌다가 이지경까지 이르게 됐을까. 급변하는 세계정세를 올바로 보고 대책을 마련 하기는커녕 나라가 온통 혼란했으니 우리 가까이 있는 일본은 조선을 또다시 넘보기 시작했다.


철종의 능은 서삼릉이다. 서울의 서쪽에 3개 ( 희릉, 효릉, 예릉)의 왕릉이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이중 예릉이 철종의 능이다. 원래 서삼릉은 광릉수목원에 비할 정도였지만 박정희 정권 때 무참히 훼손되었다고 한다. 경기 고양시 덕양구 원당동 201-99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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