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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세규 Aug 26. 2021

본격적인 세도정치의  헌종과 천주교의 시련

제24대 왕 헌종

궁녀들이 유혹을 할 정도로 잘생긴 외모와 좋은 목소리를 가졌다는 헌종은 22세의 짧은 생애 (1827 ~ 1849 )를 마쳤다.  재위 기간은 1834년 ~ 1849년 (15년)이다.


여색을 밝히며 지나친 성관계를 했다고는 하는데 뒤를 이을 자식이 없었다는 사실이 물음표다.

영조가 손자인 정조에게 왕위를 물려주었듯이 순조 (할아버지 )가 승하를 하자 8세의 손자 헌종이 임금 자리에 올랐다. 두 번째로 왕위가 세자를 거치지 않고 세손으로 이어졌다.


아버지 효명세자 (익종, 추존왕) 순조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다. 어린 왕을 대신해서 순정 왕후 (할머니)가 수렴청정을 다. 본격적인 세도 정치가 시작되고 안동 김 씨와 풍향 조 씨의 대립각이 세워졌다.


이 시기의 세도정치를 간단히 말하자면 다음과 같은 그림이 그려진다. 헌종의 입장에서 바라본다.


순조 (할아버지) ♡ 순원왕후 (할머니)

익종     (아버지) ♡ 신정왕후 (어머니)


할머니인 순원왕후는 안동 김 씨다. 철종 대까지도 계속해서 수렴청정을 했으며 세도정치를 절정기로 이끈 인물이다.


어머니인 신정왕후는 풍향 조 씨다. 1857년 (철종 8) 순원왕후가 별세를 하자 대왕대비가 되어 실질적인 정권 운영을 한다. 1863년 철종이 승하하자 다음 후계자를 고종으로 결정한다.


왕을 둘러싼 이 두 분의 입김은 곧 안동 김 씨와 풍향 조 씨 간의 세력 다툼이었다.

성인이 된 헌종은 안동 김 씨 세력을 누르려 나름 애를 썼으나 역부족이었다. 할머니와 어머니 사이에서 세도가의 권력싸움에 얼마나 힘들었는지 그 스트레스를 여색과 술에 의지한듯하다.

임금의 모습은 이러했다. 


그렇다고 마냥 손을 놓고 있는 건 아니었다. 한편으로 헌종은 암행어사를 보내 지방 행정을 바로잡고자 하기도 했지만 사회적 혼란은 계속되었다.


세도정치 때문에 조선사회는 일부 가문이 권력을 잡았고 그 병폐는 삼정의 문란으로 지속 되었다.


백성들은 도대체 누굴 의지하며 어떤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야 했을지 안타깝다. 만일 그때 내가 살았더라면.. 잠시 19세기 조선의 한 복판에 서 있는 필자의 모습을 상상해본다. 

이렇게 혼란한 사회 속에서 천주교는 지식인들과 백성들에게 암암리에 퍼져나갔다. 그도 그럴 것이 누구나 다 평등하다는 천주교의 교리가 힘든 세월 앞에 놓인 많은 이들에게 위안을 주었다.


조선 후기 우리나라에 들어온 천주교는  5번의 박해를 받았다.


1791년 (정조 15) 신해박해

1801년 (순조 01) 신유박해

1839년 (헌종 05) 기해박해

1846년 (헌종 15) 병오박해

1866년 (고종 03) 병인박해


보통 우리나라의 4대 천주교 탄압이라 함은 정조 시기 신해박해를 빼고 말한다. 헌종 때 일어난 기해박해를 잠시 살펴보자.


기해박해의 이면에는 권력 다툼이 있었다. 헌종은 안동 김 씨의 세력을 약화시키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그러나 순원왕후의 (할머니) 오빠 김유근 (안동 김 씨 )천주교를 믿었기 때문에 명분이 생긴 헌종은 이참에  풍향 조 씨 (어머니의 친정)의 힘을 빌려 그들을 몰아내려 했다.


안동 김 씨에 대한 정치적 탄압의 계산이 깔려 있는 기해박해 때문에 억울하게 희생된 이들도 많았다.

헌종실록 6권, 헌종 5년 10월 18일의 기록을 보면 그때 상황을 잠시 엿볼 수 있다.


- 척사 윤음을 경외에 내리다. -


아! 군신(君臣)의 의리는 천지(天地)에서 도피할 곳이 없는 것인데, 저들은 곧 교황(敎皇)·교주(敎主)라고 칭호(稱號)를 만들어서 융적(戎狄)의 추장(酋長)과 적도(賊盜)의 괴수 같을 뿐만이 아니다.


이는 사목(司牧)의 권병(權柄)을 훔쳐서 정화(政化)가 미칠 곳이 없고 명령을 시행할 곳이 없게 하려는 것이니, 화란(禍亂)의 근본이 어찌 이보다 심함이 있겠는가?


아! 음양(陰陽)이 있으면 반드시 부부(夫婦)가 있는 것은 바꿀 수 없는 이치인데,


저들은 시집가고 장가들지 않는 것을 망령되게 정덕(貞德)으로 가탁(假托)하면서 아랫사람들은 남녀가 섞여 살면서 풍교(風敎)를 더럽혀 어지럽히고 있으니,


앞의 것으로 말미암으면 인류가 진멸(殄滅)할 것이고, 뒤의 것으로 말미암으면 인륜(人倫)이 더럽혀질 것이다.


아비를 업신여기고 임금을 업신여김이 곧 이러한 지경에 이르렀으니, 부부의 관계를 또 어떻게 논할 수 있겠는가?


심지어 성모(聖母)·신부(神父)·영세(領洗)·견진(堅振) 등과 같은 것에 이르러서는 여러 가지 명색이 나올수록 더욱 변환(變幻)이 심하니,


요컨대 마귀에 홀린 무격(巫覡)이 부적이나 정화수로 신(神)에게 빌면서 저주하여 세상을 현혹시키는 것인데, 조금이라도 식견(識見)을 갖춘 자라면 어찌 혹시라도 의심하거나 현혹되겠는가?


그리고 천당(天堂)·지옥(地獄)에 대한 이야기는 어리석은 사람은 쉽게 속일 만한 일이다.


이는 석 씨(釋氏)의 진부(陳腐)한 이야기로서, 이전 사람들이 이미 남김없이 변해(辨解)하였으므로, 거듭 일을 설파(說破)할 것도 못되는데, 이를 전에 누가 보고 누가 전하였다는 말인가? 한 마디로 말해서 황당한 말이다.


기해박해 이후 천주교는 또 다른 시련을 맞게 된다. 헌종 15년 (1846년) 병오박해는 우리나라 최초의 신부인 김대건이 처형된 사건이다.

세도정치와 천주교 박해로 혼란스러운 정국에 있었던 헌종은 왕위를 이을 자식마저 남기지 못한 채로 생을 마감한다.


조선 후기의 세도 정치를 시작,  발전 , 절정, 후반기로 나눈다면 두 번째 발전 단계라 할 수 있겠다.


헌종의 능은 경기 구리시 인창동 66-22에 위치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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