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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병원 가자

by 별빛수 Jan 26. 2025



며칠 전, 비행기 안에서 몹시 건조하다는 느낌이 확 들었던 순간이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다음 날부터 목이 조금 아팠다. 특히 새벽에 목이 신경 쓰여 일찍 일어났다. 덜컥 겁이 났다. 요즘 감기는 기침이 특히 심하다고 해서다.


가열 가습기에 물을 다시 채워 넣었다. 그리고 약을 먹기 위해 평소보다 일찍 주섬주섬 아침을 챙겨 먹었다. 어젯밤에 남편이 예전에 처방받아먹다 남은 감기약을 우선 먹었다. 증상이 비슷하다며 먹으라고 했다.


저녁 무렵에 딸이 전화했다. 저녁 어떻게 할 거냐는 질문이었다. 평소 같았으면 오라고 해서 함께 먹었겠지만, 행여나 감기가 옮을까 봐 알아서 먹으라고 말해 주었다. 당연히 그래야겠다고 딸도 대답했다.


조금 후에 다시 전화가 와서 물었다. 닭매운탕을 테이크 아웃해서 갖다 주겠다는 것이다. 별로 선호하는 음식은 아니었지만 저녁을 차리지 않아도 될 것 같아서 받기로 했다.


또다시 전화가 왔다. 병원에 가자며 3분 뒤에 주차장으로 내려오라고 했다. "엄마, 병원 가자." 시계는 저녁 7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아마도 설연휴기간이라 문 연 병원을 검색한 다음 부르는 것 같았다. 독감 검사를 꼭 받아야 한다고 했다.


가지 않아도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지만 너무 고집을 피우는 것 같아서 부랴부랴 챙겨서 얼른 내려갔다. 10분 정도 거리에 밤 8시 30분까지 하는 의원이 있었다.


2층에 올라가니 의사 혼자 병원에 있었고 간호사도 없었다. 신분증을 내밀어 접수를 하고, 문진과 청진기를 대보더니, 대수롭지 않은데 굳이 왔냐는 표정이 잠깐 스쳐갔다.


독감 검사하러 왔다고 했더니, "해달라고 해서 해주긴 하는데 초기라서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라며 기다란 검사기를 꺼냈다. '앗, 저것은 코로나 검사할 때 사용하는 기분 나쁜 도구 아냐?'


코 안으로 집어넣었다. 첫 번째 벽을 건드릴 때도 신경이 곤두섰는데, 더 깊숙한 곳까지 계속 밀어 넣는 것이었다. 여차 하면 목 안까지 들어갈 기세였다. 잠깐이었지만 끝날 것 같지 않게 느껴졌다.


검사 결과는 독감이 아니었다. 검사비는 3만 원이었는데, 동의가 안 되었지만 비용이 저렴한 편이라 했다. 일반 감기 처방전을 받아 집으로 돌아왔다.


평소에는 잔소리할 것이 많은 딸이라고 생각했다. 집에 오면 아무것도 안 하고 늘어져 있기 일쑤다. 그런데, 오늘 딸이 아니었으면 병원에 가지 않았을 텐데 독감이 아니라는 말을 들어 안심되니 한편 좋았다.


딸이 사다 준 닭매운탕은 생각보다 맛이 있었다. 느닷없이 전화해서 부랴부랴 병원 데려다주고, 저녁 식사까지 해결해 주고, 뱅쇼까지 사 준 딸이 엄마처럼 보였던 날이다. 생각 없어 보이던 딸은 속으로 엄마 안색을 살피는 아이였음에 새삼 뭉클했다.


아플 땐 누구나 엄마 같은 사람이 필요하다. 부모만 아이를 잘 돌보는게 아니었다. 아이가 나를 챙겨 주니 돌고 도는 손길이다. 가족 사랑 통장에 좀 더 열심히 그리고 묵묵히 시나브로 사랑을 부어 놓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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