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하여 제가 죄를 지었나요 슬프게 울부짖어도 죄를 지은 이유라는 것은 죄인은 절대 알 수 없다네
죄인의 죄를 규명하는 주체는 죄인이 아닌 이 세상이므로 우리의 죄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에게 저절로 주어질 지어니
죄란 한때 얄궂은 운명과도 같아서 그 어떤 참회로도 벗어날 수 없을 터
죄를 지은 우리는 불쌍한 오이디푸스가 되어서 눈알을 뽑아버리자 눈알을 뽑아버리자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2021.2
1896년 연극 <오이디푸스 왕>
대학생 시절 교육학에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라는 걸 배웠다.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만든 단어로, 남자아이가 어머니에게 가지는 소유욕 또는 아버지에게 가지는 경쟁의식을 뜻한다. 뭐 남근기에 엄마랑 결혼하고 싶다느니 헛소리를 지껄이는 걸 가리킨다는데, 프로이트 이론 대부분이 그러하듯 개소리다. 현대 심리학에서는 취급하지도 않는 낡은 이론이다.
오이디푸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비극적인 영웅이다. 신생아 때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한다'라는 뚱딴지같은 신탁을 받았다. 왕이었던 오이디푸스의 아버지는 기겁을 하며 오이디푸스를 내다버렸지만, 어떤 농부가 오이디푸스를 주워서 키웠다. 어른이 된 오이디푸스는 모험을 떠났다가 웬 남자를 만나 싸우다가 홧김에 죽여버린다. 계속 모험을 이어간 오이디푸스는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풀어 어떤 나라의 왕이 되어 왕비를 얻는다. 그런데 웬걸? 알고 보니 오이디푸스가 죽였던 남자가 자신의 아버지였고, 지금 아내는 자신을 낳은 어머니였다.
오이디푸스는 이 사실을 깨닫고 절망한다. 자기 손으로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잤다는 사실에. 평생을 신탁에서 벗어나려 발버둥 쳤으나 결국 실패했다는 수치심에. 수치심을 못 이긴 오이디푸스는 결국 두 눈을 뽑아버린다.
나는 오이디푸스가 죄책감이 아니라 '수치심'을 느꼈다는 해석을 좋아한다.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동침했는데 겨우 수치를 느끼고 말았다니. 그리고 그 수치에 못 이겨 눈알을 뽑아버렸다니. '영웅'이라고 부르기엔, 너무나도 추하지 않은가. 역시 영웅도 나약한 인간에 불과한 걸까. 내가 오이디푸스에게 동질감을 느끼는 이유도 그가 나약한 인간이어서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