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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시 일기 1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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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비단 Aug 25. 2024

무빈소

침대와 관


오랜만에 집에 돌아왔더니
웬 조문객이 나를 따라 들어왔다

신발이 나를 따라 들어왔다
너는 방바닥이 아니라 땅바닥을 밟아야지 하며
타일러서 내보냈다

양말이 나를 따라 들어왔다
이곳은 살아 숨쉬는 존재만이 올 수 있다 하며
꾸짖었더니 울면서 나갔다

발목이 나를 따라 들어왔다
나에게 이제 네 놈은 필요 없다 꼴 뵈기도 싫다 하며
발목을 잘라 문밖에 내다 던졌다

내가 나를 따라 들어왔다
나는 더이상 댈 핑계가 없다 하며
그대로 침대에 몸을 뉘였다 관뚜껑을 덮었다



<무빈소>, 2020.12


2020년 12월, 숲 속의 정체 모를 의자




 대학생 때 나는 아웃사이더로 살았다. 내향적인 성격에 술 안 마시고 인간관계도 좁다 보니 아싸가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강의실, 기숙사, 식당을 오가는 반복적인 일과. 대학 생활의 낭만이라곤 전혀 찾을 수 없는 생활이었다.


 스트레스가 쌓이면 혼자 시내에 나갔다. 노래방에 가거나, 카페에 가서 글을 쓰거나, 서점에 가서 책을 사거나 했다. 언젠가 한 번은 저녁에 기숙사 돌아가는 길에 과 동기를 만난 적 있다. 보기 드물게 외출복을 입은 내 모습을 보며 혼자 놀러 갔다 왔냐고 물어봤다. 무슨 괴생명체 보는 듯한 눈빛과 믿을 수 없다는 말투와 함께. 더러운 인싸놈들 머리속에는 '혼자 시내에 나가서 논다'라는 명제가 존재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가끔은 아무 목적지 없이 무작정 걸을 때도 있었다. 그날도 그런 날이었다. 청주미술관에 가려다가 코로나 때문에 예약 없이는 못 간다 해서 빠꾸 먹은 그날. 나는 청주 시내를 4시간 동안 걸어 다녔다. 잔디밭에 뛰어다니는 아이들, 그 아이들을 지켜보는 부모들, 콘크리트 벽에 칠해진 그래피티 낙서, 한적한 골목에 숨어 있는 분식집....


 숲 속이었다. 웬 나무 의자 하나가 처량하게 놓여 있었다. 그 위로 나뭇가지가 힘차게 뻗어나갔다. 마치 누군가 나무에 목을 매달기 위해 가져가놓은 의자 같았다. 홀린 듯 사진을 찍었다.




 그 의자는 나를 위해 준비해 둔 걸지도 모른다. 어떤 친절한 이웃이 내 수고를 덜어주기 위해 놓아둔 걸지도 모른다. 내가 의자에 올라가 목을 매달기를 기다리고 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 기대에 응해주지 않고 기숙사에 돌아와 침대에 누웠다. 이 침대가 나의 관이었다. 조문객은 아무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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