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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비단 Mar 24. 2024

똥컴과 팀 포트리스 2

기대가 없으면 실망도 없다.


 초등학교 고학년 때쯤부터 더이상 놀이터에 나가지 않았다. 집에 컴퓨터가 생겼기 때문이다. 누렇고 뚱뚱한 모니터가 우리 집 책상에 멍청하니 자리 잡았다. 발가락으로 전원 버튼을 누르면 우우웅- 하는 엔진 소리가 들리고, 몇 분 기다리면 푸른 들판 위로 적운과 층운이 양 떼처럼 달려가는 하늘이 펼쳐졌다. 그곳은 현실과 또 다른 세계, 제2의 고향이었다.




 본격적으로 게임에 빠진 것은 중학생 때였다. 매일 저녁 친구들과 같이 스카이프로 통화하며 게임을 하는 게 일상이 되었다. 친구에게 스팀이라는 것을 배우고, 구매 대행 사이트에서 문화상품권을 긁어서 오렌지 박스를 구입했다. 오렌지 박스에는 밸브 게임이 여러 개 들어 있었다. 내가 처음으로 구매한 게임이다.


3을 모르는 그 회사가 만든 하이퍼 fps의 조상


 친구들은 ‘팀 포트리스 2’에 빠져 있었다. 밸브에서 제작한 FPS 게임으로, 오버워치의 모티브가 된 게임이다. 나도 팀포에 입문했다. 솔저를 선택해서 이리저리 로켓을 쏴댔지만, 렉이 너무 심해서 정상적인 게임이 불가능했다. 결국 나는 엔지니어밖에 하지 못했다. 몽키스패너를 들고 기지에서 뚱땅거리며 센트리건과 디스펜서, 텔레포터를 만들고 무사히 전쟁터에 운반하기만 하면 임무 완료였다. 팀이 답답하면 로봇팔을 끼고 샷건을 들어서 적진에 돌진했다.


 우리 집 컴퓨터는 똥컴이었다. 아빠가 어디선가 주워온 고물 컴퓨터였다. 툭하면 게임이 버벅댔다. 친구들은 컴퓨터가 좋았다. 언젠가 친구 집에 놀러 갔을 때, 투명한 케이스 안에 선풍기 같은 팬이 휘황찬란한 빛을 내며 돌아가고 있었다. 모니터는 홀쭉했고, 키보드는 철컥철컥 소리가 났고, 헤드셋에서 웅장한 소리가 고막을 채웠다. 팀포를 고사양으로 돌려도 하나도 버벅거리지 않았다. 친구는 솔저를 고르고 자기 발 아래에 로켓을 쏴 점프하더니, 공중에 떠오른 적을 쏴서 직격했다. 우리 집 컴퓨터로는 절대 불가능한 플레이였다.


컴퓨터에서 빛이 나는 이유는 뭘까


 나는 부모님에게 컴퓨터를 사달라고 했다. 그러자 성적이 더 오르면 새 컴퓨터를 사주겠다고 했다. 그때 전 시험 성적은 평균 99점이었다. 성적을 올리려면 올백을 맞아야 했다. 새벽 2시까지 스탠드를 켜놓고 공부했지만, 다음 시험에서는 평균 96점을 받았다. 그래도 좋은 성적이니 컴퓨터를 사주지 않을까 내심 기대했지만, 부모님은 ‘약속은 약속이지’라고 말하며 아무것도 사주지 않았다. 누나는 성적이 올라서 새 휴대폰을 받았다. 나보다 낮은 점수였다. 학교에서 친구가 부모님이 시험 잘 봤다고 새 컴퓨터를 사줬다고 자랑했다. 그 친구는 평균 70점이었다. 나는 그 이후로 부모님에게 무언가 사달라는 말을 다시는 하지 않았다. 기대가 없으면 실망도 없음을 일찍이 깨달았다.




 컴퓨터가 안 좋은 나는 친구들과 게임만 하면 괴롭힘 당하는 역할이었다. 마인크래프트에서는 잠시 한눈을 팔자 어느새 흑요석에 갇혀 있었다. 맨손으로 흑요석을 파는 데 몇 분이나 걸렸다. 테라리아에서는 렉이 너무 걸려서 프로그램 몇 개 종료하고 왔더니 내 발 아래에 용암이 깔려 캐릭터가 타 죽어가고 있었다. 레프트 4 데드를 하면 렉이 계속 걸려 자꾸만 나 혼자 뒤처지고, 친구들은 저 멀리 달려가고 있었다. 스모커와 헌터는 혼자 고립된 나를 노렸다.


나 고문하려고 게임 사라고 꼬셨냐고


 친구들과 함께 게임하는 건 재밌었지만, 하면 할수록 컴퓨터의 낮은 성능에 진절머리가 났다. 나는 하고 싶은 게임을 마음껏 하지 못했다. 피시방에 갈 생각은 하지 못했다. 초등학생 때 피시방에 간 걸 들킨 기억이 너무 강렬했다. 그렇게 나는 게임을 갈망하게 되었다. 아프리카 티비 게임 방송에 빠진 것은 당연한 수순일지도 모르겠다.




 친구들은 이제 게임을 별로 하지 않는다. 나는 아직도 게임 유튜브를 찾아보고, 실시간 인터넷 방송을 보며, 노트북과 아이패드에 갖가지 게임을 설치한다. 친구들은 아직도 게임을 붙잡는 나를 보며 신기해한다. 자기들은 어른이 되자 게임에 손이 안 가던데, 너는 어떻게 아직도 게임을 하냐면서. 친구들은 모른다. 내가 어렸을 때 얼마나 게임을 하고 싶어 했고, 얼마나 그 욕심이 좌절되었는지.


 어릴 때 풀지 못한 욕구는 어른이 되어서 폭발한다고 한다. 내가 게임에 집착하는 게 그 때문 아닐까. 나는 어쩐지 슬픔을 느끼며, 이번 버전 픽업 캐릭터를 확인하고, 스택이 얼마나 쌓여 있는지 계산한다. 제발 이번에는 픽뚫이 아니길 간절히 기도하며 가챠 버튼을 누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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