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브런치북 시 일기 27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천비단 Sep 20. 2024

스페이스 오디세이

나는 내 고향별 찾아 찬란한 우주를 항해하는 오디세우스


불면은 자꾸만 날 괴롭혀
이제는 똑바로 누워서는 잠이 오질 않고
허리를 둥글게 말고 이불에 몸을 묻어야만 겨우 잠에 들지


하지만 베개에 귀를 갖다 대면
베개 속에서 들려오는 고동 소리에
콱 죽어버리고 싶은 밤이 한둘이 아니었어

어쩌면 침대는 우주선일지도 몰라
쿵쿵거리는 고동 소리는 사실 엔진 소리고
나는 내 고향별 찾아
찬란한 우주를 항해하는 오디세우스
고된 여행 끝에 목도한 은하
기쁨에 겨워 흘리는 눈물

하지만 알람 울리면 돌아오는 현실
눈 떠보니 내 고향은 온데간데 없고
축축하게 젖은 베개만 있을 뿐이었다

아아,
내가 이토록 갈망하는 것은
왜 모두 저 우주 너머에나 있을까

귓가에 고동 소리가 들려온다

—죽고 싶은 밤이었다



<스페이스 오디세이>, 2021.9


<우주여행>, painted by MS Image Creator




 어릴 때부터 잠자리가 예민했다. 침대에 누워도 한두 시간 뒤척이는 건 물론이고, 심할 때는 5-6시간 동안 잠에 들지 못해 거의 잠을 자지 못하고 일어날 때도 있다. 잠에 들지 못하는 이유도 다양하다. 추워서, 더워서, 습해서, 건조해서, 밝아서, 시계 소리가 거슬려서, 스트레스를 너무 받아서, 갑자기 슬퍼져 눈물이 흘러서.


 초등학생 때는 너무 잠이 안 와서 아예 엎드려서 얼굴을 베개에 처박고 잤다. 왠지 포근해서 잠이 잘 왔다. 엎드려 자는 것이 건강에 매우 좋지 않음을 알게 된 이후로는 똑바로 누워서 자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똑바로 누워서는 도저히 잠이 안 온다. 그래서 타협해서 옆으로 돌아누워서 잔다. 허리를 최대한 둥글게 말아 새우잠을 잔다. 이 자세가 아니고서는 잠을 잘 못 잔다.


 문제가 하나 있다. 옆으로 누우면 귀가 베개에 닿아 심장 소리가 들렸다. 베개 속에서 주기적으로 쿵쿵 소리가 들려 잠을 못 잔다. 심장 소리가 들리지 않게 자세를 이리저리 바꾸지만, 겨우 잠에 들었다가 잠결에 뒤척여 다시 심장 소리가 들려 깬 적도 있다. 그럴 때면 저절로 심장을 죽여버리고 싶단 생각이 든다.




 그날도 비슷했다. 어떤 자세를 취해도 심장 소리가 멈추질 않아 잠에 못 들었다. 새벽 3시가 넘어갔다. 나는 차라리 생각을 고쳐먹기로 했다. 이건 심장 소리가 아니라 엔진 소리라고. 이건 침대가 아니라 우주선이라고. 여긴 기숙사가 아니라 우주 속이라고. 나는 용감한 오디세우스가 되어서 우주를 항해하는 거라고. 그런 유치한 상상을 하자 신기하게도 잠에 들었다.


 알람이 울렸다. 아침 7시 30분. 4시간 남짓밖에 자지 못했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일어났다. 어째선지 베개가 젖어 있었다. 우주여행을 마치고 현실로 돌아오니 참담한 기분이 들었다. 심장은 여전히 작동하고 있었다. 고동 소리가 들려온다.

이전 26화 달맞이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