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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시 일기 2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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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비단 Sep 22. 2024

보라빛 파탄

안타깝게도 피는 붉은빛이었다


마지막 숨을 내뱉고
날 아프게 했던 모든 것들에게
하릴없이 손을 흔들어본다.

땅에서 너무 멀리 있었기에 당신은 나를 보지 못했고
우주와 너무 가까이 있었기에 살갗이 타들어 갔고
그러자 당신은 나를 만이천 조각으로 분해했다.
질긴 살덩이는 맛은 없고 질기기만 했다.

나는 다시 땅으로 돌아와
다시 땅속으로 들어가
더 깊은 곳으로
더 짙은 곳으로

심장의 한 조각이 흐물흐물 녹아내리고
시신경이 그을려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이곳에서 나를 반겨주는 건 파탄 난 보라빛뿐

저 위도 사실 온통 보라빛뿐이었다
안타깝게도 피는 붉은빛이었다

소름 끼칠 정도로 새빨갰다



<보빛 파탄>, 2019.5


막스 플랑크(1858~1947)




 막스 플랑크는 양자약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물리학자다. 물리학을 조금이라도 공부해 본 사람은 그 이름을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생물 전공이었던 나조차도 플랑크란 이름은 뇌리에 박혀 잊히지 않을 정도이니.


 '흑체'는 모든 파장의 빛을 흡수하고 방출할 수 있는 가상의 물체다. 19세기말 과학자들은 이 흑체가 방출하는 복사 에너지의 스펙트럼을 계산했다. 흑체가 방출하는 복사 에너지는 흑체의 온도에 비례한다. 이 사실에 입각한 과학자들은 순조롭게 계산해 나갔다. 하지만 문제가 하나 있었다. 계산에 따르면 높은 온도의 흑체가 방출하는 자외선 에너지는 무한대가 되어야 했다. 긴 파장의 복사 에너지는 정확하게 예측하지만, 자외선보다 짧은 파장의 복사 에너지는 무한대라는 터무니없는 값이 도출된 것이다. 이러한 현상을 '자외선 파탄'이라고 명했다.


 막스 플랑크는 놀라운 아이디어로 자외선 파탄 문제를 해결했다. 바로 에너지가 연속적으로 방출되는 것이 아닌, 특정한 주파수에서만 방출된다는 것. 즉, 에너지가 양자화되어 있다는 가설이었다. 플랑크가 내놓은 계산은 높은 주파수의 복사 에너지도 정확하게 계산하였다. 이 계산을 바로 '플랑크 법칙'이라 부른다.


 플랑크 이후 여러 과학자들의 의해 양자역학이 발전했다. 막스 플랑크가 양자역학의 기틀을 마련한 것이다. 고전 물리학에서 현대 물리학으로 한 단계 올라가는 눈부신 도약이었다. 막스 플랑크는 그 공을 인정받아 1918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 받는다.




 막스 플랑크는 흑체 복사에 관한 논문에 '플랑크 상수'를 처음 사용했다. 이 플랑크 상수는 지금도 양자역학의 기본적인 상수로 쓰인다. 자신의 이름이 하나의 법칙으로, 이론으로, 상수로 영원히 기억되는 것. 그것은 인간으로서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영광 아닐까. 육신은 죽어 사라져도 그 영혼만큼은 불멸을 얻는 것이다.


 나도 한때는 불멸을 꿈꿨다. 사람들의 기억 속에 영원히 살아 숨 쉬기를 바랐다. 그것이 얼마나 애처롭고 처절한 소망인지 그때는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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