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겨울날 바람은 내 모습은 못 본 체 나에게 다가온다. 한 겨울날 추위는 내 기분은 모른 체 뼛속까지 스며든다.
나는 믿는다. 네가 나의 차가운 두 손을 따뜻하게 잡아주리라. 얼어붙은 마음을 부드럽게 녹여주리라. 멈춰버린 감정을 다시 한번 일깨워주리라.
천천히 떨어지는 첫눈을 보며 나는 기다린다. 늦게까지 오지 않는 너를, 한 겨울날을 추억한다.
<한 겨울날>, 2014
<겨울벤치>, painted by Midjourney
나는 글쓰기에 그다지 큰 관심이 없었다. 글이라고는 학교에서 시켜서 쓴 게 다였다. 어른들은 내가 쓴 글을 보며 호들갑을 떨었다. 어린애가 뭐 이리 글을 잘 쓰냐며 난리였다. 국어 수행평가, 과학의 날 글쓰기, 독후감 등등.... 어른들은 계속 내게 글쓰기를 시켰고, 나는 그저 썼다. 아무렴 물감으로 도화지에 형체 모를 그림을 그리거나, 땡볕 아래에서 엉성한 물로켓을 만드는 것보단 에어컨 빵빵한 교실에서 원고지에 아무 말이나 끄적이는 게 훨씬 나았다.
내가 글을 잘 쓴다는 사실은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다. 다른 아이들이 한 줄도 못 적어 끙끙댈 때 나는 이미 몇 페이지를 가득 채워 먼저 제출하기 일쑤였고, 나도 모르는 사이 선생님이 멋대로 내 독후감을 시에서 주관한 청소년 독후감 대회에 내버려서 상을 타기도 했다. 그렇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 나는 글을 잘 쓰는 아이였다.
하지만 나는 글 쓰기를 싫어했다. 이유는 단순하다. 아빠가 글을 쓰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싫어하는 인간이 하는 짓은 절로 싫어지기 마련 아닌가. 자연스럽게 어린 나는 글을 쓴다는 행위를 혐오했다. 어디까지나 내가 글을 쓰는 것은 학교 성적을 위해서라고, 스스로 타협하면서.
극심한 우울증을 겪던 2014년 중2, 나는 내 방에 있던 칼과 가위를 모두 치웠다. 그러고 나서 어두운 방 안에 앉았다. 몇십 분이 지나자 공허함이 밀려왔다. 지금 이 상태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미쳐버리거나 죽어버리겠다는 직감이 들었다.
그래서... 책장에 꽂혀 있던 빈 노트를 펼치고샤프를 쥐었다. 노란 종이 위에 샤프를 꾹꾹 눌러 시를 썼다. 생각은 하지 않았다. 손이 움직이는 대로 썼다. 5분 정도 지나자 <한 겨울날>이라는 제목의 유치한 사랑시가 탄생했다. 그때는 겨울도 아니었고, 좋아하는 사람이 있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이런 시가 내 손에서 나왔는지 나도 모른다.
이 시는 내게 있어 기념비적인 글이다. 인생 처음으로 내 자의로 쓴 글이기 때문이다. 비록 글을 쓴 이유가, 죽고 싶은 마음이 감당 못 할 정도로 커졌기 때문이었지만. 이유야 어떠랴. 그토록 싫어하던 글쓰기를 나 스스로 했다는 게 중요하지.
무심코 시작한 글쓰기가 올해로 10년이 되었다. 나는 이 시를 볼 때마다, 그날의 내가 기억난다. 스탠드등 하나 켜고 등을 구부린 채, 눈물로 소매를 적셔가며, 유치한 시를 끄적이는 작은 아이를, 나는 추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