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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시 일기 2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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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비단 Sep 25. 2024

유성

흐르는 별을 따라


내가 서 있는 곳 지구 반대편에 쓰러져 있을 내 그림자에게

그곳은 태양이 붉게 빛나고 있겠지 널 등진 채 말야
뜨거운 여름에도 차가운 겨울인 듯 네 크기를 늘리고 있겠지
숨을 곳 하나 마땅치 않고 맡은 일 하나 만만치 않아
푸른 하늘 아래서 너는 점점 더 짙어지겠지 까맣게 까맣게

기다려
이곳은 달이 없는 밤
괴롭히는 이도 위로하는 이도
슬프게 하는 것 하나 없는 아름다운 밤

너에게 가고 있어
흐르는 별을 따라
머리 위 검은 우주 가로지른 초록빛 직선 따라
이 빛줄기가 네게 데려다줄 거라 믿어
언젠가는 불타 사라진대도 닿을 수 있을 거라 믿어

널 혼자 내버려둬서 미안해
태양도 오래 있지는 못 할 거야
날 믿고 조금만 더 버텨줘
언젠가 이 유성과 함께 너를 찾아갈 테니



<유성>, 2019.4


<유성>, painted by MS Image Creator




 생물교육과를 진학하면 생명과학만 배울 줄 알았다. 헛된 망을 품은 내게 들려온 소식은 1학년은 기본 물리학, 화학, 지구과학을 필수로 수강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졸업을 빌미로 원하지도 않는 과목을 배워야 한다니. 시간이 짧기라도 하면 몰라. 일주일에 4시간씩, 총 12시간이나 시간표를 잡아먹었다. 덕분에 1학년 때는 시간표를 맘대로 짜지도 못했다. 필수과목을 넣고 나면 빈자리가 얼마 없었다.


 지구과학 수업은 다른 수업과 달랐다. 물리나 화학은 실험 하고 실험 보고서 작성하고 제출하는 게 다였다. 그런데 지구과학은 노트북이 필수 준비물이었다. 노트북을 들고 가서 뭘 하나? 웬 이상한 프로그램 돌리면서 행성의 운동을 관찰했다. 덕분에 나는 아침 9시에 60만 원짜리 무거운 노트북을 들고 낑낑거리며 실험실에 갔어야 했다. 솔직히 무슨 수업을 했는지  기억이 안 난다. 기억나는 거라곤 뒷자리에서 친구들과 카트라이더 한 것밖에 없다.

 

 지구과학 수업은 장황했다라는 표현이 들어맞다. 우주, 행성, 태양, 성운, 블랙홀.... 살면서 전혀 상상해보지 못한 거대한 스케일에 대해 배웠다. 나는 그 스케일에 압도되어버렸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내가 수업을 들으며 가장 많이 느낀 감정은 바로 '외로움'이었다. 차가운 우주 속에 자리한 녀석들이 어째선지 외롭게만 느껴졌다.


 동시에 내 처지가 서글퍼졌다. 고향에 닿지 못한 채 지구에 불시착하여 지구에 묶여 있는 내 자신이 너무나도 슬펐다. 지구에 태어난 대가로 우주를 동경할 수밖에 없는 운명에 여러 날밤을 울며 지냈다.




 상처입은 나를 구해줄 나를 기다린다. 지구 반대편에서 초록빛 유성과 함께 나를 찾아올 나를 기다린다. 나를 슬프게 하는 것 하나 없는 밤을 다린다. 그것을 위해 이 외롭고 슬픈 우주 속에서 오늘을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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