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공부방
나의 희망이 된 엄마선생님의 시작
엄마는 내가 초등학교 고학년 군에 막 들어선 4학년이 되고 새로운 동네로 이사를 오고나서부터 집 안에 조그만 공부방을 차리셨다. 공부방이라기엔 우리 집에서 가장 넓은 엄마 아빠의 안방에 대여섯 명이 앉을 수 있는 커다란 좌식 상을 놓은 게 전부였다. 내 친구들과 내 친구는 아니지만 같은 학년인 아이들, 같은 학교를 다니지만 본 적 없는 윗 학년 오빠들이 하나둘씩 엄마의 학생으로 자리를 채우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면 엄마가 집에 계셔도 일을 시작했다는 건 자녀인 나에게 꽤 큰 변화였을 텐데도 나는 별 생각이 없었던 것 같다. 그저 학교에서 집에 돌아와 수업하고 있는 엄마의 목소리를 문 너머로 들으며 좋아하는 라면을 마음껏 끓여먹었던 게 좋았던 기억이 있다. 어쩔 수 없이 나도 엄마의 학생이 되어 다른 애들과 함께 공부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건 별 생각이 없을 수가 없었다. 학교 선생님 말을 듣지 않는 애들을 보는 것과 우리 엄마 말을 듣지 않는 애들을 보는 마음은 다를 수밖에 없었으니까. 그들을 혼내는 엄마의 모습을 보는 것도 편하진 않았다. 그래도 우리 엄만데, 아이들이 선생님을 싫어하듯 쉽게 엄말 싫어할까 봐 겁이 났고, 친구들과의 관계가 엄마로 인해 영향을 받을까 봐 신경 쓰였다. 자녀이자 학생으로서 엄마이자 선생님을 대하는 것 역시도 어딘가 애매하고 어색했다. 엄마선생님께 잘 보이려고 애쓰기도, 대충 농땡이 부리기도 어려운 상태로 어정쩡하게 자리를 지키고 앉아있었다.
엄마에겐 공부방이 어떤 의미였을까. 그때도, 그 때로부터 20년 이상이 흐르는 동안에도 엄마가 왜 갑자기 공부방을 시작하셨는지 딱히 생각해보지 않았다. 그러다 내가 엄마가 되고, 그때의 엄마 나이와 비슷해지고 나서야 생각해보게 된다. 아빠는 사업을 하고 싶어 하는 누구보다 성실한 직장인이었고 그 안정감이 가장 메리트였던 남편이었으니 생활비가 부족해서 시작하신 것 같진 않다. 아마 지금의 내 마음과 비슷하지 않았을까. 엄마는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가지게 되었다. 지금도 외할아버지의 자랑인 엄마의 사범대 수석졸업은, 결혼과 출산, 육아로 무용지물이 되었다. 아무리 그때 당시의 분위기가 지금과는 달라 여자는 일보다 출산, 육아를 하는 게 당연하다 해도 학생에서 사회인이 되어보지 못한 채로 순식간에 엄마가, 그것도 빼도 박도 할 수 없는 세 아이의 엄마가 되어버렸다는 게 문득문득 억울하고 답답하지 않았을까.
엄마는 첫째를 딸로 낳았고, 둘째는 아들을 바랐으나 또 딸을 낳았고, 그때의 출산정책을 거스르면서까지 셋째까지 낳아 결국 아들을 보았다. 그렇게 가족들의, 특히 시어머니의 기대에 어느 정도 부응하고 나서는 더 막막하지 않았을까. 이렇게 열심히 달려왔는데 남은 건 무엇인가. 엄마가 되고 보니 엄마를 직업으로 따진다면 이렇게 유능감을 느끼기가 어려운 직업이 없고, 경력이라기엔 매 시기마다, 각 아이마다의 어려움이 있어 뭔가 쌓이는 느낌보단 익숙해질 만하면 또 새로운 부서로 넘어가는 느낌이다. 엄마가 나처럼 '잘 해내는 것'과 '익숙해지는 것'이 중요한 사람인 게 맞다면 엄마라는 직업으로는 그 두 가지가 충족되지 않아 힘들었을 거다. 그 지속적인 결핍을 채우기 위해 내가 글을 쓰듯이 엄마도 가르치는 일을 택한 게 아닐까. 그럼에도 그 일을 집 안에서 해야 했던 건 엄마 역할과의 충돌지점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서였겠지, 싶은 게 이 제약 안에서도 '나로 있기 위한 몸부림' 같아서 자꾸만 공감이 된다.
나도 어느 때가 되면 엄마처럼 과감하게 뭔가를 시작해볼 수 있을까. 글쓰기를 시작했지만 시작한 것 같지 않은 지금보다 '잘하는 것'과 '익숙해지는 것'을 둘 다 잡은 무언가를 해보기로 결심할 수 있을까. 내가 알기론 나보다 겁도 걱정도 많은 엄마지만 해냈고, 그 가르치는 일을 지금까지 하고 계시다. 그 당시 별생각 없이 바라보았던 엄마는 지금의 나에게 하나의 희망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