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보니 성인이 되고 나서 공부도 일도 안하는 날들을 보낸 적이 없다. 대학교나 대학원을 다니면서도 아르바이트나 파트로 일을 했다. 회사를 다니면서는 자격증 공부와 교육을 들으며 지냈다. 아이를 낳고나서도 일이나 공부를 하는게 내겐 당연했다. 그렇게 일을 하는 신분으로 돌아가고자 시도했다가 장렬하게 실패했다. 아이를 키우면서 일을 한다는 건 생각보다 제약이 컸다. 아이들을 어린이집만 보내면 될거라는 초보부모다운 착각으로 호기롭게 도전했다가 깨닫게 되었다. 한 명도 아니고 두 명의 아이를 한꺼번에 키우면서 둘 다 일을 할 순 없다는 것을. 아이들은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하자마자 수시로 아팠고, 우리 둘 중 한명은 제대로 일을 할 수가 없었다. 결국 둘 중에 수입이 더 적은 내가 포기해야만 했다. 그 뒤로 나는 처음으로 개인정보 직업란에 '주부'라고 체크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일을 하지 않는 삶은 일면 편했다. 일을 하면 육아를 같이 해야 하니 일과 육아를 둘 다 하며 전쟁같이 살지 않아도 됐으니까. 나를 위해서 시간과 에너지를 쓸 수 있다는 건 설레는 일이었다. 그런데 일을 하지 않는 나를 내가 견디기 어려워했다. 육아와 집안일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지만 하지 않으면 치명적인 일이었다. 인정욕구와 유능감 둘 다 충분히 채울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심지어 나의 경우는 육아나 집안일에 재미를 느끼지 못했다. 아이들이 예쁜 것과 아이들과의 시간이 재미있는 건 완전히 별개의 문제였다. 일을 하지 않으니 육아와 집안일을 더 잘해내야 한다는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잘해내려고 하면서 재미를 느끼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뭐라도 생산성 있는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블로그를 시작했다. 재미로 하는게 아니라 뭐라도 수입이 되는 일이 되었으면 해서 강의까지 들으며 해보았다. 바짝 하다보니 나름 광고도 달게 되고 체험단도 하게 되었다. 체험단으로 머리도 하고 눈썹문신도 하고 얼마간을 재미있게 보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또 흥미를 잃었다. 아이들이 아프면 모든 걸 멈춰야 하는 상황은 그대로였다. 일주일에 2~3개의 글을 쓰는 것에 대한 보상이 충분치 않아서인지 권태롭게 느껴졌다. 실질적으로 돈이 되는 일을 하고 싶었다. 육아로 인한 제약 안에서 할 수 있는 부업들을 알아보았다. 돈을 벌고 싶어하면서도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 힘든 일은 하고 싶지 않았다. 이미 무리해서 육아와 부부관계에 타격을 입어보고 나서는 모든게 조심스러웠다. 무리하면 남편과 아이들을 잘 대해줄 수 없다는게 나에겐 제일 무서운 일이었다. 무리하지 않으면서 할 수 있는 일은 아주 제한적이었다. 찾아보면 아주 없지는 않겠지만 어찌된게 내 눈에는 띄지 않았다. 그래서였는지도 모르겠다. 신경정신과에 처음 갔을 때 내 검사 결과로 좌절감이 높게 나온 것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나았다. 사람들이 라이킷을 눌러주고 조회수가 높게 나오고 다음 메인에 걸릴 때는 꽤 신이 났다. 인정욕구와 유능감이 어느 정도 채워지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그마저도 한계에 부딪히고 있다. 여전히 내 직업은 '주부'니까. 글쓰기와 그림그리기로 돈을 벌고 있지 않으니 직업이라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글을 써봤자 아무것도 될 수 없을거라는 막막함에 자주 사로잡히기 시작했다. 글을 쓰면 쓸수록 직업으로 하기엔 내 글쓰기 능력이 그렇게 뛰어나지 않다는 걸 아프게 깨닫게 되었다.
내 힘으로 돈을 번다는게 어떻게 이렇게 어려운 일이 된걸까. 내가 좀 더 마음을 편하게 먹으면 지금을 즐길 수도 있다. 아이들이 어린이집 간 시간에 카페에 가고, 좀 쉬고, 운동을 하고, 먹고 싶은 걸 먹을 수 있는 시간을. 분명히 좋으면서도 자꾸만 막막해지는 시간이다. 이 시간을 마음껏 즐기지 못하는 나에게 화가 난다. 그리고 안쓰럽다. 나는 주부면서도 아직 주부인 나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내가 하는 일에 누구보다도 내가 가치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 시간과 에너지를 가장 많이 들이는 일에 의미를 느끼지 못한다는건 참 불행한 일이다. 왜 엄마의 노동은 돈으로 보상받지 못하는걸까. 갑자기 엉뚱한 억울함이 들기도 한다. 나는 주부라서 일하면서 받는 스트레스가 없으니 좋다. 동시에 돈을 벌지 못하는 주부인게 싫다. 그게 아직 끝나지 않은 고민에 대한 오늘의 결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