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부터 무턱대고 말하자면 내 남편은 잘생겼다. 정우성이나 차은우처럼 화려하고 조각처럼 잘 생긴 건 아니지만 본인도 얼굴 중에선 어디 하나 고치고 싶은 데가 없다고 할 정도로 괜찮은 이목구비가 나름 자리를 잘 잡고 있다. 그러니까 호감형인 건 맞지만 문제는 내 눈에 실제보다 더 잘 생겨 보인다는 점인데, 이게 왜 문제가 되냐면 남편에게 화가 나고 정나미가 떨어질 때에도 얼굴만큼은 못나보이지가 않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는 배터지는 소리라고 할 지 모르지만 얼굴마저도 밉상으로 보일만큼 좀 냉정해졌으면 할 때가 있는데, 냉랭해진 내 마음과는 별개로 내 눈은 '그래도 잘생기긴 잘생겼네.' 해버리니 내가 마음껏 쿨해지지 못하고 이미 져버린것 같아서 분통이 터지기도 하는 것이다. 어찌된게 연애할 때는 그래도 몸이 비쩍 말라서 듬직하고 두툼한 맛이 없었는데, 결혼을 하고나서는 제 3차 성장기를 맞이한 아저씨가 되어 덩치가 벌크업되니 그마저도 커버가 되어버렸다.
이쯤하면 결혼을 얼굴만 보고 한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올만한데 사실은 그게 맞다. 나는 키보다도 얼굴을 보는 사람이고, 적어도 내 눈에는 잘생겨보여야 만날 수 있는 사람이다. 이런 나에게 있어 남편은 좋은놈이 맞다.
그 놈의 잘생긴 얼굴을 빼고 말하자면 나쁜놈인 구석이 있다. 바로 내가 원하는 말을 잘 안해준다는 점인데, 본인은 MBTI에서 감정형인 F로 나온다고 주장하지만 어쩐지 나에게는 T로 반응할 때가 많다는 것이 의아하다.
한번은 내가 꼬박꼬박 잘 참여하면 보증금으로 걸어둔 3만원을 그대로 환급해주는 영어회화 스터디에 참여한적이 있는데 당연히 환급받을거라 예상했던 스터디는 그 달에 아이들이 아파 내내 가정보육운 하는바람에 제대로 참여하지 못해 돌려받지 못하고 말았다. 내 불성실때문이 아닌 상황적인 이유로 이렇게 되니 더 속상하고 억울해서 남편한테도 얘기했더니 그는 "공짜로 뭘 배우려하면 안되지~" 하더라.
공감은 어디 개나 주고 달라고 한 적 없는 훈계나 주는게 어이가 없어서 웃고는 방금 본인이 한 말을 되돌려 해주니 본인도 좀 머쓱한지 웃는다. 도대체 그 놈의 F 감정형 공감은 어디에 쓰는건지? 나에게도 써줄 때가 분명 있지만 애써 노력해서 말하는게 보여 고맙다못해 짠하다.
육아를 시작하고 마음의 여유가 없을때는 내 답을 벗어난 남편의 말들에 마음이 상함을 넘어 멍든듯 아프기까지했다. 그래서 늘 서로의 답을 말해줄순 없지만 최소한의 존중은 하자는 의미로 10년째 쓰던 반말을 존댓말로 바꾸자는 제안에 처음엔 속이 느글거린다고 하면서도 어느 새 빠르게 적응해서 내가 나도 모르게 "응응"추임새를 넣으면 응은 반말이라며 눈치를 주기도 했다. 결론적으로 존댓말을 쓰니 그는 자신이 하고픈대로 얘기해도 내가 그닥 마상을 입지않을 수 있어 그도 나도 만족. 그럼 그는 더 이상 나쁜놈이 아닐까? 그건 물론 아니지만 내 기준 제일 크게 느껴진 나쁜놈의 구석은 많이 사라졌다.
마지막 이상한 놈은 사실 남편이 아니고 나다. 나는 남편과 얘기할 땐 그냥 넘어가놓고 뒤늦게 곱씹으면서 '아...이렇게 대답해서 받아칠걸' 아쉬워하고 그 중 진짜 아쉬운건 카톡으로라도 남긴다. 남편은 다 지난 얘기를 갑자기 꺼내니 띠용하고 어떨땐 무섭다고 한다. 남편한테 편지 좀 써달라고 일 년 내내 졸라놓고 막상 그가 큰 맘 먹고 쓴 편지를 받으면 속독으로 겁나 빨리 읽어버려서 반응을 살피는 상대를 허탈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래놓고는 또 여러번 보고 흐뭇해하며 가족들한테 보여주고, 익명의 힘을 빌려 맘카페까지 올려 자랑한다.
남편은 그런 날 보고 편지를 자랑거리로 써달라했냐고 하는데 사실 절반정도는 그게 맞다. 이렇게 자랑을 좋아하면서 자랑하기 딱 좋은 sns는 안한다. 남들 자랑을 보는게 더 배아파서다. 남편한테 갑자기 나도 투자해보겠다면서 돈 좀 달라고 당당히 요구한 뒤에 반짝 여기저기 넣어보고는 수익이 안나니 흥미를 잃고 짱박아두기도 한다. 쓰고 나니 어쩐지 이상한 놈보단 별로인 놈에 가깝지만 괜찮다. 남편은 내가 실은 무지무지 좋은 놈이라는걸 잘 알고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