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시어머니는 내가 봐 온 어른들 중에서 제일 우아한 분이다. 그녀는 우선 외모부터가 우아하다. 환하게 웃으실 때면 활처럼 휘어지는 눈매 끝으로 이어지는 눈주름, 한껏 양 쪽 위로 꽃처럼 퍼지는 입매도 그녀의 우아함을 돋보이게 만들어준다. 그녀에게 잘 어울리는 이미지와 스타일을 분명하게 아시고 하나하나 선택하신 옷과 액세서리들로 이루어진 옷맵시는 뵐 때마다 감탄하게 된다. 어머님과 쇼핑을 할 때마다 놀라는 것은 그녀가 자신이 원하는 아이템과 스타일의 디테일에 대해 확신을 가지고 매장 직원에게 주문을 하고 그 주문마저도 무례하지 않고 예의 있으면서도 단호한 태도로 하신다는 점이다. 나는 정확히 그 반대 지점에서 일일이 보고 입어보지 않으면 내가 원하는 게 뭔지 나에게 잘 어울리는 게 뭔지 잘 알지 못하고 매장 직원의 추천을 기다리며 그 의견에 기대는 사람이라 더더욱 그 단호함에서 카리스마를 느끼는 것일 수도 있겠다.
어머님의 우아함은 그녀의 솔직함으로 더욱 빛이 난다.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는 남편이 남친일 때, 그가 다니던 대학원 코스의 일환으로 6개월간의 미국행을 앞둔 때였다. 곳곳이 바다인 그의 고향이니만큼 우리는 한 횟집에서 만났다. 그때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어차피 서울 생활을 하면서 고향에는 명절 외에 거의 내려가지 않는 남편이 미국으로 떠나는 이야기를 하는데 어머님의 눈시울이 갑자기 붉게 물들어가던 기억만큼은 분명하다. 첫 만남에서 어머님의 눈물을 보게 되는 건 예상치 못한 일이어서 나도 그녀도 남편도 당황했더랬다. 이 부분만 들으면 우리 어머님이 내가 끼어들 자리 없이 아들과 과하게 밀착된 관계인 것인가 싶어 특히 며느리들이라면 다소 경계하고 긴장하는 대목일지 모르겠으나 실상은 아들이 먼저 연락하지 않으면 특별한 일 없이는 먼저 연락하지 않으시는 분인 걸 알기에 찰나에 드러난 그 애틋한 마음이 나에겐 더 크게 와닿았다. 알고 보니 어머님은 예기치 않은 눈물만 보이시는 분이 아니라 그런 마음에 대해서 말로도 솔직하게 표현하시는 분이었다. 우리 엄마 아빠는 경상도 사람이 아닌데도 당신들의 마음에 대해서 고맙다, 미안하다, 보고 싶다 등의 말들로 표현하시는 걸 잘 보지 못했는데 정작 경상도분인 어머님의 입에서는 다정하고 애틋한 마음이 말로도 자연스럽게 나오는 걸 신기해하며 내 지역문화에 대한 편견을 새삼 돌아보게 되었다.
사실 어머님이 정말로 남달리 우아한 분이라고 생각하는 건, 그녀의 너그러움 때문이다. 어머님은 아버님과 헤어지신 건 벌써 10여 년이 지난 일인데, 그녀의 결혼생활은 생판 모르는 남이 들어도 여러모로 상당히 고생스럽고 아픈 시간들의 연속이었다. 물론 그 이유로는 호된 시집살이도 한 몫했지만 남편인 아버님은 그녀의 편이 되어주지 않았을뿐더러 오히려 그보다 더한 행동과 말들로 어머님을 많이 아프고 힘들게 하셨다. 나에겐 남편의 아버지일 뿐이지만 어머님에게는 평생 지울 수 없어 이후의 날들에도 영향을 줄 만큼 깊은 상처를 남긴 분이셨다. 그런 아버님을 그녀는 몇 년 전부터 완전히 용서하고 이제는 좋을 것도 없지만 미울 것도 없이 아무런 마음이 들지 않는 대상으로 만드는 데 성공하셨다. 나는 10여 년이 아니라 몇십 년이 걸려도 안 될, 아니 안 할 용서를 몇 년 만에 하실 수 있었던 이유를 물으니 그녀는 누군가를 미워하는 건 자신을 오히려 더 힘들게 하는 일이기 때문이라 말한다. 그냥 용서하고 마는 정도가 아니라 아들 부부의 결혼, 손주들과 관련된 행사 때마다 아버님을 마주치실 때 어른을 대하듯이 예의를 차려 인사하고 대하신다. 부부로서의 연은 끊어졌지만 자녀들의 아버지, 손주들의 할아버지로서의 대우는 잊지 않으신다. 나는 그 모습을 볼 때마다 아버님도 감히 나로선 상상할 수 없는 이 관대함을 느끼시는지, 이렇게 하실 수 있는 어머님이야말로 그 누구보다 우아한 어른이라는 걸 알고 계시는 건지 묻고 싶은 마음이 된다.
나 역시도 그 너그러움의 수혜를 입은 사람이다. 남편에게 상처받았다는 이유로 그 불똥이 어머님한테까지 튀었던 날들이 있었다. 그녀는 남편의 어머님이라는 한계를 넘어서면서까지 내 쪽으로 와주었음에도 분노로 인해 시야가 좁아져 있던 나에게는 그게 보이지 않았다. 급기야는 남편이 내가 원하는 대로 움직여주지 않는 것에 대한 책임을 어머님에게 돌리는 말까지 하게 되었고, 어머님은 내 말과 행동으로 인해 깊은 상처를 받으셨다. 일반 시어머님과 며느리 사이보다도 더 각별하게 믿고 지냈던 관계였던 만큼 몸까지 아프실 정도로 충격을 받으셨다. 나는 내 상처로 정신이 없어 그녀의 상처를 바로 알아보지 못했고, 내가 좀 살만해지고 나서야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알고 나니 내가 정말 큰 실수와 잘못을 저질렀다는 게 실감이 났고, 용기를 내어 영상통화를 걸어 1시간 넘게 울고불고하며 그렇게 하게 되었던 내 마음과 더불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사과를 드렸다. 사실 어머님에게 중요한 건 단 하나였다. 그때의 내 말과 행동이 진심이었냐는 것. 그게 아니라는 내 말을 어머님은 믿어주셨고, 그거면 됐다고 하시며 정말 바로 나를 용서해주셨다. 어머님이 받으신 상처와 충격에 비해 너무도 간단했기에 한편으로는 그 용서를 바로 믿기 어려웠지만 그녀는 그 이후에도 올라오실 때마다 남편은 안먹지만 나는 좋아하는 반찬들을 해오시며 그 마음을 증명해주셨다.
나는 그녀의 우아함을 누구보다 본받고 싶은 사람이다. 그중에선 어머님의 우아한 패션감각과 센스가 차라리 가장 따라잡기 쉬울 것이다. 그녀의 남을 상처 입히지 않는 솔직함, 자신과 타인을 향한 인내와 너그러움은 평생을 연습해도 될까 싶다. 그래서 나는 그걸 한 번에 다 따라잡으려는 욕심을 부리는 대신 그녀의 옆에 가능한 만큼 오래오래 함께하면서 나에게도 그녀의 우아함이 조금씩이라도 물들어가길 기대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