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빠의 이름은 윤호이다. 아빠가 훨씬 먼저 이 이름을 가졌음에도 사람들은 아빠의 이름을 들으면 그와 같은 이름을 가진 연예인을 떠올리곤 했고, 그로 인해 생긴 에피소드도 있다. 그 연예인의 생일날, 아빠는 우스갯소리로 "오늘 윤호 생일이잖아." 하고 넘어갔는데, 회식자리에서 그 이야기를 들은 후배 직원 하나가 깜짝 놀라 몰래 나가서 생일케이크를 사와 갑자기 아빠의 생일파티를 하게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아빠는 자신의 이름을 따서 메일주소도 지었다. youknow라는 메일주소를 들었을 때, 그 뜻이 '너는 아느냐?'인건지, 말을 시작할 때 쓰는 '있잖아'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꽤 위트 있는 메일주소라고 생각했다. 아빠의 메일주소를 알게 된 것은 대학교 2학년 때였다. 한시간 반 거리를 열심히 집에서 통학하던 나는, 연년생인 여동생까지 대학에 들어오고 나서야 서울에서 자취를 시작할 수 있었다. 비로소 독립생활이 시작된 것이다. 아빠의 메일은 그 독립생활이 시작된 해에 처음 오기 시작했다. 안뇽? 이라는 제목의 메일이었다.
사실 어릴 적 아빠에 대한 기억은 많이 없다. 우리 윗세대의 아빠들이란 가정의 일들은 대부분 아내가 담당하고 자신은 사회생활, 직장생활에 충실하며 집에 생활비를 벌어다주는 것을 아빠이자 남편담당으로 여겼기 때문에 그 역할에 충실했던 아빠는 야근이며 회식으로 평일에 얼굴을 보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아빠와의 기억은 주로 주말에 있다. 아빠는 주말에 우리 삼남매와 시간을 보내기 위해 등산을 선택했다. 문제는 우리도 그걸 원하는지 의사를 묻지 않았다는 것이지만 아빠는 우리와의 시간에도 충실하기 위해 새벽부터 우릴 열심히 깨우시곤 했다. 아빠는 다혈질인 구석이 있었지만 그 포인트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점잖은 사람이었기 때문에 우리를 깨울 때에도 큰소리를 내지 않았다. 주로 발바닥을 간지럽히거나 물뿌리개로 물을 뿌리는 식이었다. 끈질기게 깨우는 아빠의 노력에 힘들게 일어나서 간 등산은 하다보면 꽤재미있었고 정상에 올랐을 때 느끼는 뿌듯함도 있었다.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한 바위산에는 산 중턱에 뜬금없이 전이나 국수를 파는 천막도 있었는데 그렇게 예기치 않은 곳에서 음식을 먹게 되는 것도 하나의 재미로 기억에 남아 있다. 그러나 정작 그 길에서 아빠와 주고 받은 대화가 많았던 것 같진 않다. 아마 그 때의 나에게 아빠에 대해서 묻는다면 대답할거리가 많지 않았을 것이다.
그랬던 아빠에게서 메일이 오기 시작한 것이다. 아빠의 첫 메일에는 엄마에게 전화를 잘 해달라는 부탁이 있었다. 우리가 독립해서 따로 지내면서 대학생활에 빠져 엄마에게 연락하는걸 소홀히 했던 모양이다. 그 다음 메일은 6개월이 지난 10월경에 왔다.
새삼스럽게 왠 메일?
요즘 자주 보기도 힘들고 얘기할 기회도 없어서 자주 메일을 쓰기로 했단다.
또 좋은 글들이 있으면 같이 읽어보기도 하고,
틈나는 대로 엄마와 너희들 생각도 들어보기도 하고,
지금까지 너무 회사일에 메달려 살아오다보니 조금씩 후회도 되고....
어찌됐던 매일 메일 쓰기로 작정은 했는데 잘 지켜질지 모르겠다.
가끔은 답장도 기대해도 되겠지?
오늘은 맛보기로 이만....
아빠가
이 짧은 글에서 가장 와닿는 부분은 아빠의 후회였다. 어떤게 후회되시는건지 구체적으로 적혀있진 않지만 우리에게 메일을 매일 쓰시기로 작정하셨다는 부분에서 그 후회 중 하나가 우리와의 소통과 관련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아빠의 메일은 분명 새삼스러웠지만 반가웠다. 자라면서도 아빠의 노력덕분인지 아빠와의 관계가 불만족스럽거나 하진 않았지만 개인적으로 이야기를 많이 하진 못했던 것도 사실이라 내심 아쉬웠는데 아빠도 그런 마음이 있었나보다. 아빠의 메일은 정말로 매일 오기 시작했다. 메일에는 좋은 글귀나 명언 같은 것들이 적혀 있기도 했고 아빠의 하루 일과나 엄마에 대한 이야기가 적혀있기도 했다. 내가 답장을 얼마나 꼬박꼬박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 때나 지금이나 편지쓰기에 큰 어려움이 없는 나는 나름 아빠보다 긴 메일들을 예쁜 온라인 편지지까지 써서 보냈었다. 무엇보다 아빠가 바쁘신 와중에도 메일을 매일 보내시는 노력이 허탈해지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 컸다. 아빠의 메일 매일 프로젝트는 한 달을 채 넘지 못했지만 아빠가 손 내밀어 시작한 메일 소통은 그 뒤로도 5-6년간 이어졌다. 얼굴보고는 하기 어려운 이야기부터 굳이 하지않는 시시콜콜한 이야기들까지 메일에 담을 수 있었다.
이제는 아빠와 메일을 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메일을 대신하는 연락을 많이 하는 것도 아니다. 여전히 아빠보단 엄마에게 전화를 더 많이 한다. 아빠와의 대화는 여쭤볼 것이 있거나 아빠가 약주하시고 전화하셔서 평소엔 못하시는 애정표현을 잔뜩하시는게 다인데 그마저도 밤에는 아이들을 재우느라 잘 받지 못한다. 그치만 아빠의 매일 메일은 그 기간이나 양과 상관없이 마음에 깊이 남아서 언제든 내가 원할 때면 아빠와의 메일창이 열릴 것만 같다. 그 때 나눈 이야기들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그 메일들을 보내는 아빠의 마음은 사실 그 메일을 보내기 전에도, 후에도 한결 같다는 걸 안다. 아빠의 바쁘고 고된 삶 속에서도 우리를 항상 생각하고, 얼굴 마주하며 얘기하기가 어려울뿐 전하고 싶고 나누고 싶은 이야기는 많은 마음을. 그 마음을 내가 약해질 때나 흔들릴 때에 약처럼 꺼내먹기로 한다. 말로 표현하는 것보다 더 큰 아빠의 노력형 사랑이 나를 잘 잡아줄거라 믿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