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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의 사랑

가진 것은 기억이 전부였고, 할 수 있는 것은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by 오션뷰



그것은 예기치 않은 것이었다. 가까이 가기엔 너무 멀었고, 작정하고 다가가기엔 너무 외로운 곳이었다. 거리를 좁혀갈수록 방향에 대한 의구심이 들었고, 확신은 점점 줄어들었다. 내 마음을 콩알만큼 점점이 떨어뜨리며 점차 한가운데로 들어갔다. 납작한 길과 봉긋한 표정이 계속해서 나를 따라왔다. 피부를 겨누는 햇빛에 손톱마저도 움츠러드는 더위였다. 마음을 떨어뜨린 길을 돌아보니, 더 이상 시작점이 보이지 않았다. 시야를 벗어난 첫 발자국은 고요하게 모래에 잠겼고, 그 위를 구름이 평온하게 지나갔다. 아무 일도 일어날 것 같지 않은 불안이 맴돌았다.


그렇게 사랑은 다클라(Dakhla)의 사막 한가운데에 불시착했다. 가진 것은 지난날의 기억이 전부였고, 할 수 있는 것은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기억을 가지고 얼마큼 버틸 수 있을까? 존재에 대한 형상은 가루가 되어 여기저기에 날렸고, 그것은 늘 근처에 있지만 결코 잡지 못할 것처럼 작아졌다. 손에 쉽사리 잡히지 않는 꽃가루처럼, 만질 수 없는 새의 노래처럼, 눈을 뜰 수 없게 만드는 설산의 시림처럼.


그렇게 그곳은 손에 넣을 수 없는 비물질적인 것들로 이루어진 곳이었다. 사막의 반대편 어딘가에 두둥실 떠다닐 기억에 의지하여 언제까지 머물 수 있을지를 가늠해보려 애를 썼다.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바람이 불어왔다. 잠든 고요를 방해하는 바람이 점차 매서워졌다. 강도를 할 수 있는 한 높인 채, 모든 사막을 뒤덮을 심정으로 다가왔다. 분해된 표정과, 흩어진 모든 낱말들, 희미해진 웃음소리를 전부 집어삼킬듯했다. 가진 건 기억뿐이라, 두 손에 꽉 쥐고 온 몸의 무게로 지탱할 수 있는 건 기억뿐이라, 아주 오랫동안 기억만을 꼭 잡고 버텼다. 기억이 사랑을 지켜낼 수 있다는 믿음으로, 사랑이 기억에 의지할 수 있다는 희망으로. 꽉 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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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는 기억이 있으니까 괜찮아, 그것은 수백만 개의 오아시스를 가진 것만큼이나 배부르고 안정이 되는 느낌이지. 아주 든든한 누군가가 내 뒤를 봐주고 있는 느낌도 들고 말이야. 내 얼굴을 보지 않아도, 어떤 표정이 가장 어울릴지 확신할 수 있는 그런 마음이야.

라는 사막의 속삭임에 바람은 대꾸하지 않았다.


아무리 망망대해에 홀로 남겨졌다 하더라도, 기억 위에 올라타서 둥둥 떠가다 보면 목도 마르지 않고 두려움도 없을 것만 같아. 어두운 지하실에 홀로 남겨져도 작은 빛 하나 발현되어 주위를 밝혀주면 그곳이 지하라는 사실을 잊게 만들어 줄 것만 같아.

라는 사막의 떨리는 목소리에 바람은 더 이상 흥미를 갖지 못했다.


그렇게 바람이 사그라들자, 사막이 속삭인 문장들은 씨앗으로 잉태되었다. 흩뿌리듯 소량의 비가 여러 날에 걸쳐 내렸고, 이유를 찾지 못한 바람이 어슬렁거리며 사막의 주변을 맴돌았다. 잔잔히 남아있던 바람이 모두 자취를 감추자 더운 날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모래는 해를 닮아 뜨겁게 치장했다.




황량한 곳에서 기억은 사랑의 꽃이 되어 피어났다. 기억을 닮은 얼굴을 하고선, 뜨거운 심장을 지닌 아주 작은 꽃송이가 되어 피어났다. 작은 씨앗에서 새로운 꽃이 피어나는 이 단순한 진리에 사막은 전에 없던 감동을 받았다. 꽃 이파리 하나하나마다, 그 얇은 줄기의 마디마디마다 기억이 새겨져 있었다. 사막은 기억에 의해 생명이 연장되었다. 보이지 않은 것이 보이는 것을 만들어 내어, 온몸으로 기억되었다. 잊히고 소멸되어 더 이상 기억되지 않는 기억들이 그렇게 사막에 뿌리를 내렸다.


그것은 예기치 못한 것이었다. 확신을 갖기엔 모르는 것이 너무 많았고, 마냥 모른 척 하기에는 생생한 기억이 넘쳤다. 애쓰지 않아도 기억은 사막의 주변을 넘실거렸고, 기억은 하루의 일과가 되었다. 마음이 흩어지고, 노력이 부서진 곳으로 사막의 지난 기억이 흘러 들어왔다. 한 밤중의 은하수를 타고 내려와 한낮의 구름 속으로 들어갔고, 이름 모를 풀로 자라나 사막의 노을을 기다렸다. 기다림에 보답한 기억은 사랑으로 연주되어 그렇게 사막의 한가운데에 자라났다. 아침 이슬을 닮은 영롱함으로, 한낮에도 밝게 빛나는 달빛으로, 모두가 귀 기울이는 설렘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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