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봉협상은 감정이 아니라 전략이다
그날, 연봉협상의 첫 전화를 받는 날이었다. 아직 퇴사를 하기 전이었기 때문에 사무실에서 전화를 받는 건 마음이 불편했다. 그래서 나는 조용히 회사 옥상으로 올라갔다. 누군가 볼까 싶어 옥상 한쪽 구석에 숨어 눈치를 살피며 휴대폰을 꺼냈다. 한겨울의 바람은 유난히 차가웠고, 통화를 시작하기 전까지 몇 번이고 화면을 들여다보다가 다시 껐다 켰다를 반복했다. 그렇게 긴장 속에 전화벨이 울렸고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연봉협상과 처우협의는 한 번에 끝나지 않았다. 가끔은 업무시간에 옥상으로 올라가 전화를 받았지만, 회사 업무로 바쁠 때는, 퇴근 후 회사에서 조금 떨어진 조용한 카페에 앉아 인사팀과 이어진 전화도 몇 차례 있었다. 이 모든 과정이 낯설었고, 어쩐지 몰래 무언가를 도모하고 있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마치 하면 안 되는 행동을 하고 있는 사람처럼.
사실 나는 이직 자체가 처음이다 보니 ‘연봉협상’이란 단어조차 나에겐 무척 낯설었다. 더군다나 ‘처우 협의’니 ‘오퍼레터’니 하는 단어들은 나와는 상관없는 단어들이라고 생각했었기에 더 어색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연봉협상을 진행하기 전 유튜브와 브런치 같은 곳을 뒤적이며 협상이란 걸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공부를 시작했다. 누군가는 이걸 ‘밀당’이라 부르기도 했지만, 나는 그저 후회 없이, 내 몫을 제대로 챙기고 싶을 뿐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연봉협상과 처우 협의는 생각보다 복잡했고, 예상보다도 많은 감정을 수반했다. 그리고 그 과정을 지나며 나는 몇 가지를 분명하게 배울 수 있었다.
가장 먼저, 연봉협상이란 건 결국 ‘스탠스’가 가장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내가 이직을 꼭 해야만 하는 상황인지, 아니면 지금 회사에서도 충분히 만족하며 다닐 수 있는지를 꼭 스스로 생각해 봐야 한다. 이 차이는 생각보다 크다. 예를 들어, 지금 회사에 큰 불만이 없고, 새 회사에 꼭 가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라면 연봉협상 테이블에서 나는 훨씬 더 여유 있는 태도를 유지할 수 있다. 말 그대로 ‘가도 그만, 안 가도 그만’이라는 마음이 생기면, 협상에서도 자연스레 내 조건을 명확히 이야기할 수 있게 된다. 반대로 새 회사에 꼭 가야만 하는 상황이라면 인사팀이 제시한 조건이 기대보다 낮아도, ‘혹시 거절당하면 어쩌지?’라는 불안감 때문에 섣불리 목소리를 내지 못하게 된다. 그래서 연봉협상을 시작하기 전에는, 반드시 지금 내 상황을 솔직하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나는 새 회사를 얼마나 원하고 있는가? 이건 그 누구도 대신 판단해 줄 수 없는 질문이다.
그리고 또 하나 중요했던 건, 협상은 가능한 한 ‘문서로 남겨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인사팀과의 통화 중 상대방이 구체적인 조건을 제시하면, 나는 항상 “말씀해 주신 내용 확인해 보고 메일로 회신드리겠습니다”라고 답했다. 이 한 문장이, 나에게는 생각할 시간을 벌어주었고, 나중에 혹시 모를 오해를 줄여주었다. 특히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전화를 통해 협의를 진행하면, 내 할 말을 다 하지 못한 채 인사팀의 흐름에 휘말릴 가능성이 크다. 그럴 땐, 아무리 좋은 조건이라도 다시 한번 나만의 시간 속에서 찬찬히 뜯어보고 판단하는 게 훨씬 낫다. 그래서 협상의 과정은 최대한 메일과 같이 명확하게 기록을 남길 수 있는 방식으로 할 수 있도록 정중하게 이야기하는 게 좋다.
마지막으로는, 내가 현재 받고 있는 연봉과 복지 항목들을 얼마나 잘 알고 있느냐가 협상력을 결정짓는 기준이 되었다. 연봉은 물론이고 명절 상여, 성과급, 유연 근무제도나 사내 교육비 지원 같은 현금성 복지들까지 꼼꼼하게 정리해두어야 한다. 그래야만 인사팀에게 “현재 나는 이 정도의 연봉과 성과급, 현금성 복지를 받고 있는데, 지금 제안해 주신 조건은 어떤 부분에서 좀 보완이 되었으면 좋겠다.“라고 말하며 객관적으로 협상을 끌고 갈 수 있다. 그냥 막연하게 “조금 부족한 것 같아요”라는 말은 설득력이 없다. 그래서 내가 현재 받고 있는 것들을 명확히 알고 있어야, 연봉을 비롯한 처우를 스스로 설계할 수 있다.
지금 나는 새 회사에 잘 적응하고 있다. 처음엔 두려웠고, 뭔가를 잃는 기분도 들었지만, 결과적으로는 후회 없는 선택이었다고 믿는다. 연봉협상은 단순히 숫자를 조율하는 과정이 아니었다. 그건 나라는 사람의 가치를 다시 말해보고, 다시 정리해 보는 시간이기도 했다.
혹시 지금 이직을 준비하고 있거나, 연봉협상이라는 단어 앞에서 막막함을 느끼고 있는 누군가가 있다면 꼭 말해주고 싶다. 협상은 어렵고 낯설 수 있지만, 스스로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준비만 있다면 분명히 잘 해낼 수 있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말고, 한 걸음 한 걸음 차근차근 나아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