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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마음 한편에 남아있는 전 직장의 팀장님과 동료들

끝내 발송하지 못한 ‘감사합니다’ 문자

by 허군

새 직장에 앉아 있는 지금, 가끔 문득 예전 회사 팀장님의 얼굴이 떠오른다. 아침마다 사무실에 들어서며 건네던 인사, 점심시간에 나누던 소소한 대화들, 야근할 때는 같이 밥 먹으러 가자는 따뜻한 한마디. 그런 기억들이 정해진 시간 없이 불쑥불쑥 찾아온다.



퇴사를 결정했을 때, 나는 충분히 합리적인 이유들을 나열했다. 새로운 도전, 가족과의 관계, 아내의 사업... 그럴듯한 명분들로 포장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그건 나 자신을 설득하려는 변명에 가까웠던 것 같다. 정작 매일 함께 일하며 쌓아온 신뢰, 서로를 의지하며 만들어낸 팀워크, 그리고 무엇보다 ‘함께’라는 그 소속감을 등지고 떠나온 것이다.


새 직장 생활이 순조롭다고 해서 이 복잡한 감정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오히려 더 선명해진다. 예전에는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이 얼마나 소중했는지 새삼 깨닫게 된다. 팀장님이 내 업무 스타일을 완벽하게 파악하고 계셨던 것, 동료들과 서로의 약점을 보완하며 일했던 그 호흡, 실수해도 “괜찮다, 다음에 조심하자”며 격려해 주던 따뜻함.


전화기를 들었다가 다시 내려놓는 일이 몇 번이나 반복됐다. “안녕하세요, 팀장님. 잘 지내세요? “라는 간단한 인사말도 용기가 나지 않는다. 미안함이 앞서 서다. 나를 믿고 일을 맡겨주셨는데, 나를 키워주셨는데, 내가 먼저 등을 돌리고 떠나왔으니까.


게다가 ‘지금 연락하면 뭔가 부탁하려는 것처럼 보이지 않을까’, ‘괜히 연락해서 민폐 끼치는 건 아닐까’라는 걱정도 든다. 퇴사했다는 건 이미 그 관계에서 한 발 물러섰다는 의미인데, 지금 와서 다시 연락하는 게 적절한 일인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처음 퇴사했을 때는 ‘나중에 연락드려야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나중에’는 점점 더 멀어져만 간다. 한 달이 지나고, 세 달이 지나고, 지금은 거의 반년이 다 되어간다. 이제는 “왜 이제야 연락하냐”는 말을 들을까 봐 더 망설여진다.


요즘 들어 더 자주 생각난다. 새 직장에 어느 정도 적응하면서 여유가 생겨서일까. 예전 회사 사람들이 지금 어떻게 지내는지, 내가 하던 일은 누가 맡고 있는지, 팀장님은 여전히 바쁘게 지내고 계시는지 궁금하다. 하지만 여전히 먼저 연락하기는 어렵다. 미안함과 그리움이 뒤섞인 이 복잡한 감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죄송합니다”로 시작해야 할지, “보고 싶었습니다”로 시작해야 할지. 어떤 말도 내 마음을 제대로 담지 못할 것 같다.


그래도 한 가지 확실한 건, 그분들에 대한 고마움이다. 팀장님이 보여주신 리더십, 동료들과 함께 만들어낸 성과, 그리고 그 시간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새 직장에서 인정받고 있는 것도, 업무를 능숙하게 처리할 수 있는 것도 모두 그때의 경험 덕분이다.


언젠가는 용기를 내서 연락을 드릴 것이다. 늦더라도 내 마음을 전하고 싶다. 미안하다고, 그리고 고맙다고. 그분들과 함께한 시간이 얼마나 소중했는지, 지금도 그 기억들이 내게 얼마나 큰 힘이 되고 있는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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