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를 망설이고 있는 누군가에게 전하고 싶은 말
작년 겨울, 13년 동안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기로 마음먹으면서 가장 힘들었던 건, 내가 맡고 있던 일들에 대한 책임감이었던 것 같다. 다들 바쁜데 나 혼자만 빠져나오는 것 같다는 죄책감, 내가 빠지면 우리 팀은 더 힘들어지지 않을까 하는 부담감, 모두가 바쁜 와중에 나만 그만둬도 되나 하는 묘한 죄의식이 날 점점 지치게 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마음이 흔들렸다. 회사에서 문서를 정리할 때도, 회의 시간에 의견을 나눌 때도, 무심결에 팀원들의 표정을 살피게 됐다. '내가 빠지면 이 업무는 누가 하지?', '이 일은 아직 나 말고 아는 사람이 없는데...' 머릿속이 복잡했다. 퇴사를 결심하고도 매일같이 그런 생각들에 마음이 눌렸다.
그 무렵, 오랜만에 친구를 만났다. 10년 넘게 만난 오랜 친구라 그런지, 고민이 입 밖으로 쉽게 흘러나왔다. 우리는 편안하게 오랫동안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술집에 앉았다. 그리고 나는 고개를 푹 숙인 채 말했다. "나 없으면 우리 팀 진짜 힘들어질 것 같아. 내가 맡은 일도 많고, 갑자기 빠지면 다들 당황하겠지. 내가 이래도 되는 건가, 요즘 그런 생각이 자꾸 들어." 친구는 내 말을 조용히 듣더니, 술 한 잔을 들고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야, 우리는 그냥 새우젓 통에 한 마리 새우야."
나는 무슨 말인가 싶어 고개를 들었다. 친구는 말끝을 흐리지 않았다. "새우젓에서 새우 한 마리 빠진다고, 그 맛이 변할 거 같아? 회사도 마찬가지야. 네가 빠진다고 회사가 망할 것 같아? 오히려 더 잘 돌아갈걸?"
그 말에 순간 멍해졌다. 그동안 회사를 떠나도 괜찮을까, 내가 없으면 구멍이 생기지 않을까, 이런 생각으로 마음을 졸였던 내가 한없이 우습게 느껴졌다. 회사는 나 하나 없다고 흔들릴 조직이 아니었다. 오히려 너무 당연하게, 빠진 자리를 금방 메우고, 이전보다 더 매끄럽게 굴러갈지도 모른다. 나는 그 사실을 알면서도 인정하지 않으려고 했던 것 같다.
친구의 말은 묘하게 따뜻하고도 냉정했다. "너 없으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 그냥 너만의 착각일 수도 있어. 회사는 늘 누군가를 대신할 준비가 돼 있고, 누군가 시스템 안에 들어와 굴러가게 돼 있어. 그게 조직이니까." 친구는 말하면서도 내가 무너지지 않도록 이야기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다. 잔잔하게 퍼지는 말 한마디가, 몇 달간 복잡하게 꼬였던 마음을 조용히 풀어냈다. 갑자기 퇴사에 대한 부담이 확 가시는 건 아니었지만, 적어도 내가 회사를 위해 ‘버티고 있는 중’이라는 착각에서는 빠져나올 수 있었다.
회사는 어느 한 명을 위해 움직이지 않는다. 누군가가 퇴사해도, 놀랄 만큼 금방 그 공백을 메우고 다시 돌아간다. 우리는 언제든 교체 가능한 톱니바퀴이고, 하나 빠졌다고 해서 기계가 멈추게 두지는 않는다. 바로 더 좋은 톱니바퀴를 끼워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잘 작동시킬 것이다. 그리고 그게 슬프기만 한 일은 아닐지도 모른다. 그만큼 우리는 더 이상 ‘회사’라는 시스템에 목숨 걸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니까.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너무 많은 걸 짊어진 채 살아왔다. 회사에 대한 충성심, 책임감, 의무감… 그게 꼭 나쁜 감정만은 아니었지만, 결국 나를 갉아먹고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그래서 지금 퇴사를 고민하고 있는 누군가가 있다면, 친구의 말을 꼭 전해주고 싶다.
"우리는 새우젓 속 한 마리 새우일 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