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이직 두 번은 절대 못할 것 같아요

나를 가장 힘들게 했던 ‘레퍼런스체크’

by 허군

새로운 회사에 입사를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경력직 동기들과 연수를 받게 됐다. 누군가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다들 이직 몇 번 하셨어요?” 나는 당연히 대부분 첫 이직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다들 3번, 4번씩 이직을 했다고 했다. 순간, ‘와... 다들 정말 대단하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잠시 후 내 차례가 되었다. 머뭇거리며 말했다.


“저는... 이직, 두 번은 절대 못할 것 같아요.”


이번에 이직을 준비하면서 처음 알게 된 게 있다. 이직은 단순히 회사를 옮기는 일이 아니라는 것.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와 새로운 회사 사이에서, 양다리를 걸치고 외줄 타듯 조심조심 움직여야 하는 일이라는 걸. 특히 나를 가장 지치게 했던 건 ‘레퍼런스 체크’였다. 새 회사에서 현 직장 동료에게 직접 연락해 나라는 사람을 검증하는 절차. 말로는 사람을 신중하게 뽑기 위한 과정이라지만, 내 입장에선 아직 확정되지도 않은 미래를 위해 지금의 나를 조심스럽게 흔들어야만 하는 일이었다.


문제는, 나는 10년 넘게 한 회사에 다녔다는 것. 결국 이전 직장이란 게 따로 없으니, 지금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게 ‘레퍼런스 체크 대상자’가 되어달라고 요청해야 했다. 처음엔 손이 떨렸다. 말 한마디 꺼내는 것도 쉽지 않았다. “사실 내가 지금... 다른 회사를 보고 있는데. 아직 확정은 아니구. 혹시 연락 가면... 말 좀 잘해줄 수 있을까” 그 말을 꺼내는 순간, 마치 내 마음속 깊은 곳을 누군가에게 들켜버린 기분이었다. 겉으론 웃으며 말했지만, 마음속엔 '혹시'라는 불안이 계속 맴돌았다. 누군가 말이라도 흘리면 어쩌지. 이직이 실패로 끝나고, 소문만 돌면 어떻게 하지.


게다가 레퍼런스 체크라는게 내가 지정한 사람 외에도 진행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아예 마음이 편할 날이 없었다. 회사에선 평소처럼 일하고 있었지만, 머릿속은 온통 레퍼첵(레퍼런스 체크의 줄임말) 생각뿐이었다. 팀장님이 아무 이유 없이 “잠깐 얘기 좀 하자”라고 부르면, 심장이 먼저 반응했다. ‘아… 드디어 들켰나?’라는 생각이 습관처럼 떠올랐다. 회의 중에도, 커피를 마시는 짧은 틈에도, 팀원들의 눈빛 하나하나가 신경 쓰였다. 그렇게 조심스럽게 한 달이 흘렀다. 어쩌면 일보다 ‘나 자신을 숨기는 일’에 더 많은 에너지를 쏟았던 것 같다. 매일 기도하듯 생각했다.


“제발, 아무 일 없이 이 시간이 지나가기를.”


나중에 외국에서 일하는 친구에게 이런 얘기를 했더니, 해외에서는 오히려 이직을 한 번도 안 해봤다고 하면 더 이상하게 본다고 한다. 이직은 경력 개발이고, 경력 개발은 자기 성장이라고. 그래서 레퍼런스 체크도 흔한 절차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 한참을 멍하니 있었다. 그 세계에선 자연스러운 일이, 여기선 왜 이렇게 숨겨야만 했을까. 왜 우리는 누군가의 새로운 출발을 ‘배신’처럼 여기는 걸까.


이직은 쉬운 결심이 아니었다. 나는 회사를 떠나는 게 아니라, 나라는 이름을 다시 꺼내 드는 기분으로 그 과정을 겪었다. 묵묵히 쌓아온 신뢰와 관계, 아직 끝나지 않은 현재, 그리고 손에 잡히지 않는 미래 사이에서 매일 줄타기를 했다. 누구에게도 쉽게 말할 수 없던 그 시간은 생각보다 길었고, 버거웠고, 조용히 견뎌야 했다.


그래서 요즘은 이런 바람이 생긴다. 누군가의 이직이 궁금증이나 소문거리가 아니라, 그저 응원해 주는 일상이 되면 좋겠다는. 자기 삶을 바꾸려는 시도가, 누군가에게 의심받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었으면 좋겠다는. 그 바람 하나면, 다음 이직은... 아마 조금은 덜 외롭지 않을까.



keyword
목요일 연재
이전 06화14년 만의 이직, 첫 출근의 설렘과 어색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