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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민지 Nov 01. 2020

[동화책]

 나이가 들면서 과식을 하게 되지 않아 좋다고 생각했다. 내가 얼마큼 해낼 수 있는지를 인정하게 되면서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일을 벌일 수 있게 되어 뿌듯하다고 자위했다. 하지만 이미 긴 세월을 과식하며 살아왔으니 몸에 밴 습관이 하루아침에 고쳐질 리 없다. 책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실행으로 옮기면서 나는 당연히 독립출판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독립출판 과정에 대해 배울 수 있는 원데이 클래스에 참석했다. 그렇게 모인 사람들이 팀 아닌 팀을 이루게 되었다. 모두의 얼굴을 아는 것도 아니고 하루 만나 같은 날 수업을 들은 6명의 사람들도 그저 얼굴 한 번 본 게 다 인데도 서로의 출간을 기원하며 목표 달성에 힘을 실어준다. 9월까지 책을 완성하여 소소한 출판 파티를 열자는 주최자에 말에 나는 6개월을 계획했고 이제 막 시작해서 불가능하다고 얘기했다. 이내 그래도 해보겠다며 그럼 작은 이야기책을 완성하겠다고 선언해버렸다. 


  그렇게 하라고 거든 사람은 한 명도 없다. 사실 내가 만들고 싶은 건 동화책인데 ‘동화’라는 단어는 왠지 순수하고 완전한 느낌이라 그 단어를 내 입에 담기 간질거려 이야기 책이라고 말했다. 완성하지 못해도 그만이고 참석을 약속한 출간 파티에도 독자로서 방문하면 그만이지만 처음 만난 그들과 완성의 뿌듯함을 함께 나누고 싶다. 


 동화책을 완성하는 것은 내 욕심 리스트에 항상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오래된 소망이다. 영유아용 교구로 사용될 교육용 동화는 아니고 어른이 보아도 마음을 저릿하게 만들 수 있는 감동적이거나 아름다운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싶었다. 잘 그리는 그림은 아니지만 삽화도 직접 그려서 완벽한 완성의 뿌듯함을 증폭시키고 싶다. 


  ‘위로’라는 따뜻하지만 조심스러운 마음에 대해서 한 번쯤 이야기하고 싶었는데 동화책의 주제로 삼아볼까 싶다. 위로는 타인을 위한 마음에서 시작해도 순식간에 자만과 자위로 변질되기 쉬운 다루기 힘든 마음이다. 상대를 돕겠다는 대의명분을 가슴 앞에 걸어놓고 결국에는 스스로에 대한 만족감에 취하게 해주는 도구로 변질되는 경우가 잦은 것 같다. 안 하느니만 못하다는 말이 위로와 닮아있는 것도 같다. 세상에 나쁜 사람도 있고 좋은 사람도 있는 것처럼 가면을 쓴 나쁜 위로가 있다면 착한 위로도 있다. 문제는 착한 위로라고 해도 상대가 감정에 압도당한 그 당시에는 상대에 마음에 닿지 못할 수도 있고 그래서 진가가 발휘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위로는 주로 슬프거나 아쉽거나 안타까운 상황에서 생겨나는데 슬픔의 한 복판에 서 있는 상대방에게는 어떤 위로도 마음에 도착하지 못할 수 있다. 


  ‘내가 널 생각해’, ‘난 널 걱정해’라는 사실을 알리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면 상관없을 것 같다. 너무 짙어서 시야를 가리던 슬픔도 시간이 지나면 색이 바래 옅어진다. 그러면 슬픔에 가려 흑백으로 변했던 세상이 점점 원래의 색으로 채워져 선명해진다. 착한 위로는 슬픔 밑에서 그 순간을 기다리고 있다가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생겼을 때 발견된다. 뒤늦게 착한 위로의 진가가 발휘되고 감동까지 더해져 상대방의 마음을 보듬어준다. 그 ‘착한 위로’에 대한 이야기를 맑은 단어와 그림을 통해 표현하고 싶다. 쓰면서 더욱 어려운 일임을 깨닫는다. 내일이면 8월인데 마감까지 한 달 남았다. 좋은 글을 쓰겠다는 욕심은 버리자고 다짐했는데 다짐은 역시 다짐일 뿐 실현되는 경우가 언제나 드문 '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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