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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민지 Nov 01. 2020

[사람을 잘 보는 능력]

 난 사람을 잘 못 본다. 선한지 악한지 성격이 어떠한지 사람을 잘 가려내지 못한다는 말이다. 새로 알게 된 상대방에 대한 나의 예상은 항상 빗나갔다. 단답으로 대답하는 걸 보니 까칠한 사람일 것 같은데, 과장된 표정을 짓는 걸 보니 가식적인 사람일 거야, 나긋한 말투를 사용하는 걸 보니 마음이 여린 사람이겠네 라는 식인 나의 첫 판단은 늘 어긋나곤 했다. 필라테스 강사일을 시작하고 처음 만났던 대표는 자신은 뱉은 말은 지키는 사람이고 성실하게 노력하며 살아왔다고 자신의 일기까지 직접 보여주며 말했다. 처음 일하게 된 센터라 걱정했는데 대표가 열심히 사는 사람인 것 같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대표는 나를 포함한 여러 강사의 임금을 상습적으로 체불했고 회원님들 환불 요구를 거부하는 등의 이슈가 많았다. 그런데도 자기는 경제 사범으로 감옥에 다녀온 적도 있는 사람이라 월급 몇 백 때문에 이러고 있을 사람이 아니라며 당당한 태도를 보였고 말도 안 되는 트집을 잡으며 되려 나를 겁주기까지 한 나쁜 사람이었다. 못된 사람이라는 걸 진작 알아봤다면 이런 험한 일을 겪지 않았을 텐데 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사람들에 대한 나의 예상은 늘 빗겨나갔고 나는 정말 사람을 잘 보는 능력을 갖고 싶었다. 한눈에 상대를 꿰뚫어 보는 통찰력이 있어서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에게만 마음을 쓰고 싶고, 나와 마음이 통하지 않을 사람과는 애초에 친해지려는 시도를 하지 않아 관계의 수고를 덜고 싶다는 소망이었다. 그런데 사람을 잘 보는 능력은 대부분의 택시 기사님들이 갖고 계신 것 같았다. 내가 만나본 베테랑 기사님들 중 대부분은 몇 마디만 나눠봐도 어떤 사람인지 대충 감이 온다고 자신 있게 말씀하셨다. 택시일 하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승객으로 많이 만나면서 자연스럽게 되었다는 말을 들으면 나는 언제쯤 사람을 잘 볼 수 있게 될까 더욱 부러웠다. 


한 번은 택시 안에서 약속 시간에 늦을 것 같다는 친구와 통화를 한 적이 있다. 친구의 지각을 나무라는 내용의 통화를 들으신 기사님은 내게 남자 친구 없죠?라고 질문하셨다. 어떻게 아셨냐고 되묻자 그렇게 잔소리하면 남자들 다 도망간다고 남자들은 자기 말 잘 들을 것 같은 여자 좋아하지 할 말 다하고 따지기 좋아하는 여자 싫어한다면서 나를 그런 사람으로 확신하며 기분 나쁜 말을 거침없이 뱉어냈다. 처음 만나는 사람으로부터 내가 따지기 좋아하는 탓에 남자들이 도망가는 여자라는 평가를 들으니 매우 불쾌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도 알지 못하고, 전후 상황도 모르는 남으로부터 고작 몇 분동 안의 관찰을 통해 나는 판단 내려졌고, 그 판단은 부정적이었다. 나에 대한 기사님의 추측이 맞는 말이라 해도 이를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일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처음엔 나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가 기분 나빴고, 나 스스로 그것이 억측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언짢은 것인 줄 알았다. 늦게 온 친구를 만나 택시에서의 불쾌한 에피소드를 털어놓는데 나도 모르게 ‘나를 언제 봤다고 그런 얘기를 하지??’라는 말을 반복하는 걸 보고 나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도 물론 기분 나빴지만 나에 대한 섣부른 판단 자체가 불쾌함의 결정적인 포인트였음을 알게 되었다.


 생각은 흘러 ‘한눈에’, ‘사람을’, ‘파악’ 하고 싶다는, 다시 말해 사람을 판단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것에 도달했다. 사람을 잘 알아보고 싶다고 생각한 나와 잠깐 본 나를 제멋대로 판단한 택시 기사님과 다를 게 없었다. 상대에 대한 판단, 예상이 정말 맞는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말투, 목소리, 표정만 보고 어떨 것이다 예상하는 것 자체가 어리석었다. 평생을 봐왔는데도 나는 나를 모른다. 나를 사랑으로 키워주신 나의 부모님의 사정조차도 나는 다 알지 못한다. 하물며 남이다. 상대의 사정을 다 알 수 있을 리가 없고 그러니까 판단 내릴 수도 없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는 말을 멀리 하자. ‘그런가 보다’해보자. 관계의 편의를 위해 쉬운 말로 상대를 단순하게 정의 내리려고 하지 말아야지 명심한다. 이렇게 직접 당해보고 나서야 그러면 안되는구나 알게 된 나는 이제라도 알게 된 게 어디냐 하며 오늘을 잊지 말아야지 한다. 사람을 잘 본다는 마법 같은 능력을 탐내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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