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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민지 Nov 01. 2020

[편견의 씨앗]

 ‘글 잘 써서 좋겠다~’, ‘글 잘 쓰시잖아요~’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 내가 쓴 글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사람들로부터 듣는다. 이력서는 제출 이후 글에 대한 평가 돌아오지 않으니 제외하고, 학교를 졸업한 이후로는 내가 쓴 글이 누군가에게 읽히고 그로부터 피드백을 받는 상황이 없었다. 초등학교 때 방과 후 글쓰기 수업에서나 글을 평가받고 수정하고 했다. 원고지 위에 가족에 대한 글짓기를 했는데 그 날 선생님이 해주셨던 디테일한 칭찬들이 내 글을 직접 읽은 이로부터 받은 긍정적인 피드백의 마지막 기억이다. 그리고 요새 들어 글 잘 쓴다는 칭찬을 듣는다. 내 글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사람들에게 듣는다. 큰 의미 없이 분위기를 풀기 위해 입이 하는 칭찬이라는 걸 안다. 그래도 의문스럽긴 하다. 상대방이 내게 글 잘 써서 좋겠다고 듣기 좋으라는 칭찬을 해오면 나는 가끔 짓궂게 ‘제가 쓴 글 본 적도 없으시잖아요?’ 묻고 싶기도 하다. 그러나 이내 본 적이 없으니까 칭찬하는 거겠지 깨닫고 웃어버린다. 


 직접 느끼지 않고 하는 이런 칭찬은 내가 만든 음식을 먹어보지도 않고 요리 잘하잖아요 하는 것과 같다. 하지만 이 칭찬들에도 나름의 근거는 있다. 바로 당사자나 주변의 ‘의견’이다. 직접 본 적은 없지만 소문을 듣고 믿어버리는 것이다. 이런 대화는 흔하다. 어렵지도 않다. 옆 사람이 잘한다고 한 마디만 거들어주면 된다. 거기다 스스로 ‘요리하는 걸 좋아해요’ 하고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으면서 요리를 즐긴다는 뉘앙스를 풍기면 그 길로 그 구역의 요리왕으로 등극한다. 내 음식을 한 번도 먹어보지 않은 사람들로부터 말이다. 사실 요리를 잘하는지 못하는지가 그 대화나 관계 속에서 중요한 사안이 아니기 때문에 의심 없이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하고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요리 경연장이었다면 직접 맛을 보고 신중하게 요리 실력을 판단했을 것이다. 


 그래서 심각할 필요도 없고 나쁘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호의를 가진 사람들이 가볍게 주고받는 일상적인 대화이다. 나에게 글을 잘 써서 좋겠다고 말하는 상대방도 내가 국문학을 전공했고 글 쓰는 걸 좋아한다고 말했기 때문에 그런 편견을 갖게 된 것이다. 편견의 씨앗을 준 건 나이고 싹을 틔운 것은 상대방이다. 나는 상대방이 나에 대해 글을 잘 쓴다는 이미지를 갖는 것을 은근히 즐긴다. 글을 잘 쓰는 사람이 되고 싶기 때문이다. 그리고 당장 내 글을 보여줄 것도 아니기 때문에 굳이 부정하지 않고 즐기는 편이다. 가벼운 칭찬이니 만큼 나도 가벼운 마음으로 받아들인다. 요즘 새로운 사람들을 많이 만나다 보니 이런 상황이 잦아졌다. 처음 만난 사람들 앞에서는 나에 대한 편견의 씨앗을 뿌릴 수 있다. 서로에 대한 정보가 없는 상황에서는 내가 나를 소개하게 되는데 관계가 깊어지기 전까지는 나의 설명이 나에 대한 정보의 전부이기 때문이다. 만남이 반복되고 함께 하는 시간이 늘어서 서로를 직접 알게 되면 처음에 했던 자기소개가 허풍이었는지 자신에 대한 오해였는지 알게 되지만 그건 나중의 일이다. 관계가 얼마나 지속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한두 번의 인연으로 마무리될 수 있는 상대방이 나에 대한 작은 오해를 갖고 있는 것은 썩 나쁘지 않은 것 같다. 게다가 내가 되고 싶은 나의 모습으로 기억될 수 있다니 좋은 기회인 것도 같다. 솔직해야 하는 만남인지 작은 허풍이 허용될 수 있는 만남인지를 잘 판단해야겠지만 나를 확인할 길 없는 이들 앞에서 나에 대한 작은 편견의 씨앗을 심어준다. 직접적으로는 말하지 않는다. 자연스럽게 오해할 수 있을 만큼만 ‘글 쓰는 걸 좋아해서 매일 글을 쓰고 있어요.’라고 흘린다. 이런 나의 설명을 듣고 글쓰기 실력과 연결하여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아닌 사람도 있지만 어쨌거나 싹이 움튼다면 오해의 주체는 그들이다. 기분 좋은 오해의 씨앗을 또 누구에게 나눠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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