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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민지 Nov 01. 2020

[사랑을 깨닫는 순간]

 2년 전에 월드디제이 페스티벌에 갔다. 부스별로 몸을 들썩이게 하는 노래들이 나오고 텐션을 한껏 올려줄 맥주가 가득한 곳이었다. 얼굴이 붉어지고 숨이 차오를 때까지 뛰고 춤추고 재미나게 놀았다. 자정이 넘어가면서 가운데 있는 메인 스테이지에서 가수의 공연과 함께 불꽃놀이가 열린다. 커다란 불꽃들이 하늘을 가득 메우고 음악은 한창이었다. 고개를 들어 불꽃을 감상하다가 한순간 울컥하고 눈물이 턱 끝에 찼다. 엄마 생각이 났기 때문이다. 엄마는 이런 음악와 이런 분위기 속에 한껏 놀아본 적이 있을까? 그 질문이 마음에 찾아오면 나만 이런 좋은 구경을 해서 속상한 마음이 들기 시작한다. 아빠는 워낙 외향적이고 사교적인 편이셔서 잘 놀러다니시니까 생각이 많이 안나는데 엄마 생각이 그렇게 난다. 사실 엄마는 시끄럽다고 별로 안좋아할텐데 혹시 여기에 같이 오셨더라도 먼 발치에서 구경이나 하다 집에 가고 싶어할텐데도 그 순간에는 속상함과 울컥한 마음에 사로잡힌다. 스스로도 이게 웬 청승인가 싶지만 일단 카메라로 하늘의 불꽃을 담는다. 집에 가서 보여드려야지 하고 여러번 동영상 녹화를 한다. 불쑥 찾아온 엄마에 대한 이 애틋함의 정체는 더 마음 편하게 놀려는 심보에서 나온 효심인 척 하는 교활함일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의도한 바는 아니다. 제 발로 자주 찾아와 내 눈물샘을 자극해 곤란하게 한다. 이제는 노하우가 생겨 해가 지날수록 떨쳐버리는게 쉬워지고 있지만 이런 순간에 나는 내가 울엄마를 무지하게 사랑하고 있구나 한다. 


 평소에 삐지기도 자주 삐지고 엄마 속을 애닳게 한 딸이지만 내가 행복했던 순간을 엄마에게도 주고 싶다. 그러나 일생을 같이 살면서 시행착오를 겪다 알게 된 것들이 있다. 우리는 서로 취향이 다르기 때문에 내가 느낀 그 순간의 분위기를 엄마에게 고스란히 전해줄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엄마는 월디페를 싫어할 게 분명하다. 내가 불꽃놀이를 보며 느꼈던 감정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건 엄마도 이만큼의 행복감과 유쾌함을 느꼈으면 좋곘다 이지, 엄마도 여기와서 같이 춤추고 놀았으면 좋겠다가 아니다. 그리고 나는 엄마가 알길 바란다. 내가 친구들이랑 놀고 있는 와중에도 멋진 불꽃놀이를 구경하다가도 엄마를 떠올렸다는 것을. 내가 엄마를 그렇게 사랑한다는 것을 말이다. 그 마음을 전하기 위해 집에 와서 엄마에게 핸드폰 앨범을 열심히 보여준다. 그런데 엄마는 처음에만 몇 장 보는 척 하고 이내 티비로 눈을 돌린다. 그래서 사진 말고 이야기를 한다. ‘그 곳에 밤하늘이 어땠고, 음악이 어땠는데 친구가 이런 춤을 춰서 너무 웃겼잖아.’ 라고 웃으며 이야기하면 엄마도 같이 웃으며 들어준다. 아무래도 엄마는 사진이 중요한게 아니고 내가 중요한가보다 싶다. 재미났던 기억을 떠올리는 내 얼굴을 보는게 더 행복한가 보다 한다. 


 평범한 일상 속에서도 사랑이라고 느껴지는 여러 상황들이 있다. 노래 가사에서 처럼 맛있는 걸 먹으면 생각날 때, 보고 있어도 보고 싶을 때, 나보다 먼저 챙기게 될 때 등등 상황은 다양하다. 나는 내가 가장 행복한 순간에 상대가 생각나면 내가 정말로 사랑하고 있구나 한다. 그리고 행복해하는 내 얼굴을 보고 상대방이 웃으면 사랑받고 있구나 한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걸 엄마에게도 주고 싶고, 엄마는 내가 행복하면 기분이 좋다. 나는 내가 직접 행복감을 느끼고 나서야 엄마를 떠올리고 엄마는 직접 느끼지 않았어도 내가 좋아하는 걸 보면서 행복해한다. 역시 엄마는 엄마고 나는 딸이다.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는 사이다. 나는 할 거 다하면서 엄마를 떠올리고 엄마는 나를 먼저 살핀다는 커다란 차이가 있지만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는 사이다. 내 표정이 엄마의 행복의 큰 지분을 차지한다. 행복의 구실이 또 하나 생겼다. 엄마가 있어 참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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