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인조 Mar 25. 2022

2. 잘 지내고 있습니다!

1장 – 처음 들어보는 삶과 죽음 이야기

소설 『어느 날 내가 죽었습니다』(이경혜, 바람의아이들/2016)의 주인공 중학교 3학년 여학생 진유미에게는 황재준이라는 같은 반 친구가 있습니다. 

우연한 기회에 가까워졌는데, 어느 날 재준이가 몇 번 타보지도 못했던 오토바이 사고로 죽습니다. 


그리고 여러 날 후, 유미는 재준이의 어머니로부터 일기장을 받습니다. 이것은 유미가 재준이에게 선물로 준 파란 표지의 일기장이었습니다. 좀처럼 펼쳐 읽지 못하다, 어렵게 유미가 펼쳐 읽은 첫 장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어느 날 내가 죽었습니다. 내 죽음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이 책은 가까운 친구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인한 슬픔과 그 슬픔을 추스르는 과정을 그렸습니다. 시간이 걸렸지만 마음을 추스르고는 용기를 내서 재준이가 죽었던 장소, 함께 놀던 곳에도 찾아가봅니다. 

충분히 슬픔을 경험하고 그리고 그 슬픔으로 한 단계 성장합니다. 겉으로는 거친 척, 무관심한 척하지만 서로를 배려하는 따뜻한 마음이 전해져 슬픈 이야기임에도 읽는 내내 푸근한 느낌이 듭니다.


재준이가 남긴 일기장의 기록 중에서 특이한 부분은 죽음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적은 내용으로 재준이는 종종 친구들과 시체놀이를 하며 그 때 느꼈던 것을 적었습니다. 

그것은 자신이 죽었다고 생각하고 모든 것을 바라보자, 자신의 주변에 있는 것들이 정말 소중한 것으로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그런 경험은 죽기 전의 재준이의 삶을 성장으로 이끌었습니다.     


소설 속 주인공 유미가 되어 이제는 볼 수 없는 친구나 가깝게 지내던 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건넨다면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빈자리가 느껴진다면  

“3000만큼 사랑해.”     
(그림출처: 다음 영화)

마블 스튜디오가 제작한 <어벤져스> 시리즈의 마지막 편인 <어벤져스: 엔드게임>(Avengers: Endgame)에서 어벤져스는 지구를 멸망시킬 타노스를 막기 위해 각자가 맡은 6개의 스톤을 찾아 과거로 떠납니다.

아내 페퍼 그리고 딸 모건과 평화로운 삶을 원했던 아이언맨 토니 스타크는 어벤져스의 동참 권유를 처음에는 거부했지만, 결국 과거로 돌아가는 방법을 찾아내고 수백 명의 마블 히어로와 함께 타노스 부대와 전투를 벌입니다.


마지막 장면, 토니는 6개의 스톤이 박혀 우주를 관장할 수 있는 힘이 있는 건틀렛(Gauntlet) 장갑을 타노스로부터 빼앗아 핑거스텝(FingerStep)으로 타노스의 군대를 모두 소멸시킵니다.

하지만 인간이었던 토니는 스톤의 힘을 견디지 못하고 죽습니다. 자신이 죽을 것을 알았음에도, 피할 수 없는 선택을 한 토니는 자신을 희생함으로 지구를 구합니다.

 

전쟁이 끝나고 토니의 장례식 자리에서 동료 히어로와 페퍼, 그리고 딸 모건은 토니가 남긴 영상을 봅니다. 홀로그램(hologram)으로 등장한 토니는 바로 앞에 살아있는 것처럼 다가와 자신의 마지막 이야기를 전합니다.

이 영상은 과거로의 시간여행에 앞서서 다시 정상으로 돌아올 지구에서 자신이 죽었을 때를 예상하며 미리 만들어둔 것입니다.


토니는 농담조로 언제 죽던 죽는 것은 갑작스러운 것은 아니라며 죽는 것까지도 히어로의 역할이고 여정의 한 부분이라고 말하면서 더 이상 보지 못할 사람들을 위로합니다.

그리고 미래 세대가 자라면서 직면하고 싸워가며 성장할 현실을 잘 이겨낼 것을 격려하며 딸 모건을 향해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대사를 남깁니다. “3000만큼 사랑해.”                              




토니 스타크는 이미 죽었지만, 그래서 장례식에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지만 이미 준비한 영상을 통해 마지막 말을 전할 수 있었지요.

“토니의 마지막 메시지”- <어벤져스: 엔드게임>

길지 않은 그 한마디는 토니의 죽음으로 슬퍼하는 딸 모건과 아내, 그리고 동료 히어로에게 큰 위로가 되었고요. 토니가 이들 모두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그의 목소리와 표정, 몸짓으로 충분히 알 수 있었습니다. 이 기억은 이후에 토니의 빈자리가 느껴져 마음이 힘들 때에도 일상을 잘 지낼 수 있는 큰 힘이 될 것입니다.


영화의 이 장면이 주는 깊은 감동 못지않게 눈에 띈 것은 토니가 그 자리에 함께 있는 것 같은 생생한 모습으로 등장한 것이었습니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 찍은 영상편지를 스크린을 통해 보고만 있는 것이 아니라,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나서 함께 이야기하는 것처럼 실제적이었습니다.


요즘 증강현실이나 가상현실 기술의 발달로 이와 비슷한 경험을 하지만, 아직까지는 몰입도와 현장감에서 영화의 이 장면과는 큰 차이가 느껴집니다.     


메타버스 시대

요즘 유행하는 용어인 ‘메타버스(metaverse)’를 뉴스 등 방송에서 자주 들어봤을 거예요.

메타버스는 초월, 가상을 의미하는 ‘메타(meta)’와 세계, 우주를 뜻하는 ‘유니버스(universe)’의 합성어로 현실을 초월한 가상세계, 디지털화된 지구를 의미합니다.

(그림설명: 증강현실 경험)

그리 오래되지 않은 1992년, 닐 스테픈슨(Neal Stephenson)의 SF 소설 『스노우 크래쉬』(Snowcrash)에서 처음 등장한 단어입니다.


기술연구단체인 ASF(Acceleration Studies Foundation)은 ‘증강현실(Augmented Reality)’, ‘라이프로깅(lifelogging)’, ‘거울 세계(mirror worlds)’, ‘가상세계(Virtual Worlds)’를 가리켜 메타버스라고 부릅니다.

예를 들어,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에 소소한 이야기와 사진을 올리거나 인터넷 카페에 가입해서 활동하는 것 그리고 온라인 게임을 즐기는 것 등이 일상에서 만나는 메타버스 세상입니다.




이미 오래전 게임이지만, 포켓몬 고(Pokémon GO) 게임을 해보셨을 거예요.

“Adventures go on with Pokémon GO!”(Pokémon GO 5th Anniversary)- <포켓몬 GO>(Pokémon GO)

2016년에 나이언틱(Niantic) 사에서 내놓은 이 게임은 증강현실을 통해 길거리를 다니다가 만화 속 포켓몬을 만나서 잡는 방식으로 현실 공간이라는 배경 속에서 다른 세상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집 근처 길거리에서 생전 처음 보는 어른과 아이가 모여 함께 게임을 하는 모습을 신기하게 봤습니다.


이후 증강현실 기술은 스마트폰 카메라로 거리를 비추면 상점에 대한 설명이 표시되거나, 운행 중인 차량의 정면 유리에 현재 통과지역 주변 정보가 표시되는 서비스로도 사용됩니다.

앞으로는 물건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안구에 심은 생체 렌즈를 통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하네요. 물건의 가격이나 광고는 물론, 미래에는 길에서 마주치는 타인의 나이를 비롯한 다양한 정보까지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림설명: 포켓몬 고 게임)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을 낯설어할 일도, 상대방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할 일도 없을 거예요. 그리고 이 모든 순간을 영상 데이터로 저장해 언제든지 재생하거나 전송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합니다. 이러한 기술은 범죄자 검거나 안전을 위한 방범에도 활용될 수 있습니다.     


신기하게도 불가능하게 여겨지던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경험이 증강현실을 비롯한 메타버스 기술을 통해 가능해졌습니다.

지금 꼭 어디를 가지 않아도 내가 있는 여기서, 바로 지금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사람과의 만남 경험도 무한히 확장되어 직접 얼굴을 대면하지 않아도 새로운 방식과 채널을 통해 만날 수 있습니다.


또 지금이 꼭 아니어도 언제든지 함께 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과거의 일이 지금 여기서 펼쳐지는 현실로 경험됩니다. 증강현실과 가상현실을 통해 일상에서 다양하고 신기한 경험을 할 수 있는 시대입니다.     


다시 만나고 싶은 사람들

직접 만날 수 없는 사람, 혹시 이미 죽은 사람과도 만날 수 있을까요?

여러분 중에 오래전에 죽었지만 다시 만나고 싶은 사람, 함께 이야기하며 같이 했으면 하는 사람이 있나요?

 만일 누군가에게 예전에 하고 싶은 말을 다하지 못해 이제라도 ‘사랑한다’, ‘고맙다’고 말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나요?     


MBC 방송의 VR 휴먼 다큐멘터리 <너를 만났다> 프로그램은 가상현실(VR)과 시각특수효과(VFX, Visual Effect) 기술을 통해 이미 돌아가신 고인과의 만남을 시도한 프로그램으로 화제를 모았습니다. 2020년 시즌 1을 시작으로 2021년에 시즌 2가 방영됐습니다.


방법은 이렇습니다. 고인과 비슷한 나이의 사람을 선정해서 얼굴과 몸을 촬영해 3D 스캐닝(scanning)으로 모델링 작업을 하고 CG 작업으로 실제 살아있는 사람처럼 구현했습니다.

그리고 모션 캡처(motion capture) 기술로 배우의 동작과 표정을 3D 모델에 입혔습니다.


목소리는 실제 목소리 데이터만 아니라, 비슷한 연령의 목소리 데이터를 모아 딥 러닝(Deep Learning)을 통해 학습시켜 고인과 최대한 비슷한 목소리로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짧은 대화까지 가능하게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가상현실용 장갑으로 촉감과 온기까지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디지털 작업은 고인이 살았을 때의 몇 가지 표정과 목소리, 특유의 몸동작, 가족을 비롯한 주변 사람과의 인터뷰 등에 근거해서 이루어졌습니다.                              

“엄마 안 울게. 그리워하지 않고 더 사랑할게”- MBC 

체험 당일, 가상현실 기기를 머리에 쓰고 과거 익숙했던 현장을 배경으로 만든 가상의 공간에서 고인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며 상호교감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 시도의 첫 번째는 시즌 1에서 ‘혈구탐식성 림프조직구증’이라는 희귀 난치병으로 7세에 세상을 떠난 셋째 딸 나연이와 엄마 장지성 씨와의 만남이었습니다. 딸을 위한 생일잔치를 열고 다 하지 못했던 말을 전했습니다.


시즌 2에서 질병으로 아내 성지혜 씨를 잃고 다섯 아이와 살고 있는 김정수 씨의 이야기가 두 번째로 소개됐습니다. 평소 사이가 다정했듯이 부부는 손을 잡고 춤을 췄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는 2018년 12월 10일, 어두운 발전소에서 혼자 일하다 컨베이어 벨트 사이에 끼어 사망한 김용균 씨와 어머니와의 만남이었습니다.      




해당 방송을 다시 보기를 통해 이어 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벌써 여러 해가 지났지만 한 번이라도 더 만지고 싶고, 한 마디라도 더 하려는 안타까운 몸부림을 보면서 마음이 많이 아팠어요. 신체의 생명활동이 멈춰 한 공간에서 호흡하며 소통할 수는 없지만, 여전히 그 마음속에 살아 있어 함께하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 프로그램에 참여한 분들은 이미 죽어 기억과 추억 속에만 존재하는 고인을 가상현실 기술로 마음으로만 아니라 오감을 통해 만날 수 있었다고 소감을 밝혔습니다.


현대 과학기술의 핵심 중 하나는 기존의 정보와 현실에서 경험하는 것들의 디지털화입니다. 그래서 현장을 직접 방문해야만 할 수 있던 많은 일들이 인터넷이라는 온라인상에서 가능해졌습니다. 실재감도 점점 높아지고 있고요.

미래에는 실제 세계와 구별이 불가능할 수 있는 오감을 통해 경험하는 완전한 가상세계의 구현을 상상하게 되네요.     


후회 없이 살 수는 없을까

사람들에게는 후회의 마음이 있습니다. 잠시만 지난 삶의 시간을 돌아보아도 후회되는 일들이 여럿 떠오릅니다. 그때 왜 그런 말과 행동을 했는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아쉬운 마음이 듭니다.


물론 이런 후회라는 것들은 더 나은 결정을 위한 하나의 동기도 됩니다. 실수를 통해 성장하고 같은 후회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주의를 더 기울일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삶을 다시 재정립하게 하는데 도움을 줍니다. 혹시 어긋난 길로 가고 있다면 다시 수정할 수 있는 기회가 되니까요.


그런데 안타까운 순간은 대체 불가능한, 정말 소중한 것을 잃고 난 후에야 그 가치를 깨닫고 후회하는 경우입니다. 대표적으로 생명을 꼽을 수 있겠지요.

이런 잘 알려진 명언이 있습니다. “돈을 잃으면 조금 잃는 것이요, 명예를 잃으면 반을 잃는 것이요, 건강을 잃으면 전부 잃는 것이다.” 가장 소중한 건강을 완전히 잃어 곧 죽음을 앞둔 사람에게 후회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다시 제자리로 돌릴 시간이 없기에 전부를 잃는 순간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그때도 할 수 있는 중요한 것들이 있습니다. 삶의 중함을 깨닫고 죽음과 죽음 이후를 생각할 줄 안다면 말이지요.

대표적으로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감사하며 소중하게 보내는 것입니다. 그런 모습은 주변 사람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을 것이고, 그 기억은 상실의 슬픔 중에 있게 될 이들이 잘 지낼 수 있도록 힘을 줍니다.


사실 죽음을 앞둔 순간에야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음식을 먹고, 이야기하며 함께 웃고, 손을 잡고 걷는 것처럼 일상적인 일들이 정말 소중하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좀 더 미리 알았으면 좋았을 텐데 그렇지 못한 것이 후회된다고 말들 합니다.     




천명의 죽음을 함께 한 호스피스 전문가 오츠 슈이치는 저서 『죽을 때 후회하는 스물다섯 가지』에서 죽음을 앞두고 사람들이 지난 삶을 돌아보며 후회하는 것으로 꼽는 것도 그런 것들입니다.

‘진짜 하고 싶은 일을 했더라면’, ‘꿈을 꾸고 그 꿈을 이루려고 노력했더라면’, ‘가고 싶은 곳으로 여행을 떠났더라면’, ‘맛있는 음식을 많이 맛보았더라면’과 같이 단순하지만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고요.


그런데 그중의 첫 번째 후회로 꼽은 것은 바로 ‘사랑하는 사람에게 고맙다는 말을 많이 했더라면’이었습니다.

사랑의 마음을 더 전하지 못한 것, 사랑하는 마음으로 함께 하지 못한 것을 가장 아쉬워했습니다. 유명한 대학에 입학하거나 더 많은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더 사랑하지 못한 것을 가장 후회했다는 이야기입니다.     


메모) 호스피스란 / ‘호스피스(Hospice)’란 단어의 어원은 4세기경 로마에서 처음 사용된 것으로 라틴어 ‘hospitium’에서 기원합니다. ‘hospital’, ‘hostel’, ‘motel’ 등이 모두 같은 어원을 가지는데, 이는 ‘쉬어갈 편안한 장소’를 의미합니다. 중세 유럽에서 호스피스는 ‘성지 순례자들이 하룻밤을 쉬어 가는 곳’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었고, 예루살렘 성지 탈환을 위한 십자군 전쟁 당시 많은 부상자들을 호스피스에 수용하여 수녀들이 치료했는데, 이곳에서 부상자가 임종하게 되면서 호스피스는 ‘임종을 앞둔 사람들의 안식처’라는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근대에 호스피스는 임종을 삶의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받아들이고 환자가 남은 생애 동안 인간다운 삶을 유지하며 마지막 순간을 편안하게 맞이해 생을 마칠 수 있도록 돕는 의미와 환자나 가족을 보살피는 일, 집, 관련 프로그램 등의 여러 가지 의미를 포함합니다.

1815년 아일랜드의 더블린에서 채리티 수녀회의 수녀들이 거리에서 죽어 가는 가난한 환자들을 데려다가 임종 준비를 시킨 것을 시작으로, 1967년 시슬리 손더스(Cicely Saunders)에 의해 영국 런던 교외에 세워진 성 크리스토퍼 호스피스가 현대적 의미에서의 호스피스의 효시가 됩니다. 그 이후에 호스피스가 세계적으로 보급되는데, 한국에서는 1978년에 강릉의 갈바리병원에서 호스피스 활동을 시작한 것이 최초입니다.                              

“Hospice in a day”- 국립암센터 중앙호스피스센터

이 책에서 후회하는 것으로 꼽는 것 중에는 자신의 죽음을 의식하고 준비하는 것에 대한 것도 여러 가지 있었습니다.

‘내 장례식을 생각했더라면’, ‘내가 살아온 증거를 남겨두었더라면’, ‘삶과 죽음의 의미를 진지하게 생각했더라면’, ‘건강할 때 마지막 의사를 밝혔더라면’과 같은 것들입니다.


“죽음의 인식으로부터 삶은 가치 있게 시작된다”는 생사학 보급에 기여한 알폰스 데켄(Alfons Deeken) 교수의 말처럼 사람은 죽음 앞에서 인생의 근거와 터전이 되는 중요한 가치를 깨닫고 그것을 간절히 추구하게 됩니다.

오늘의 소중함과 생명의 고귀함 또 내가 만난 한 사람 한 사람이 정말 소중하다는 것과 같은 것들을 말이지요.     


오늘이 나의 삶의 마지막 날이라면

가상의 체험은 일반적인 시간의 흐름과 공간의 법칙을 초월하는 특징이 있습니다.

(그림설명: 가상현실 안경을 쓴 소년)

현장을 직접 방문해야만 할 수 있던 많은 일들이 인터넷이라는 온라인 가상공간에서 이루어집니다. 정해진 시간에만 가능하던 경험도 이제는 언제든지 원하는 때에 할 수 있게 된 것은 가상의 현실을 구현하는 기술의 발달 때문이지요.


이런 기술은 먼저 죽은 고인을 기억하고 추모하며 상실의 마음을 다잡는데도 큰 도움이 됩니다. 이전에 하지 못했던 경험들이 가능해졌습니다.


그리고 가상의 경험이 주는 편리와 효율은 뛰어납니다. 과거의 경험을 다시 반복해서 재생할 수 있습니다. 현재의 정보를 보다 구체적이고 회화적으로 시현하는 것도 가능하고요. 미래적 상상을 현실화시켜 지금 여기서 만날 수도 있습니다.

앞으로는 가상 경험을 시각적으로만 아니라, 촉감을 비롯한 오감으로 느끼게 될 거라네요.     


하지만 가상 경험이 새로운 가상 경험을 만들어 내거나, 상상하지 못했던 가상세계가 스스로 펼쳐지지는 않습니다.

스마트폰이나 모니터에서 볼 수 있거나, 고글을 비롯한 특수 장비를 착용해야 경험할 수 있는 이미 만들어진 세상이니까요. 그러니 만든 사람의 의도와 계획이 관여될 수 있지요.


그리고 배터리나 전기 공급이 멈추면 중단되는 세상, 사라지는 현실입니다. 그런 면에서 가상의 세계가 무한대인 것 같지만, 사실 인간의 창발성이라는 능력, “남이 모르거나 하지 않은 것을 처음 또는 새롭게 밝혀내거나 이루어 내는 성질” 안에 한정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미 죽은 사람과의 만남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최대한 완벽하게 살아있을 당시의 모습을 재현한다고 하더라도 과거의 아쉬움과 후회는 좀처럼 사라지기 어렵거든요. 그래서 오늘이 나의 삶의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만나는 사람과 해야 할 일들에 정성을 다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쉽게도 인간은 죽음의 순간에서야 가장 고귀한 판단을 하는 것 같습니다. 그 선택이 최선이라고만 할 수는 없을지라도 가치 있는 선택, 사랑을 따른 결정에 좀 더 가까워 보입니다.


죽음을 앞둔 시간에는 나의 욕심이나 기대를 더 이상 붙잡지 않아도 되니까요. 그보다 더 높은 가치, 사랑과 배려를 따라 움직일 수 있는 특별한 시간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삶에 있어 성장의 기회 또한 죽음을 알아가는 것과 함께 찾아옵니다. 죽음을 배우고 인간에게 있어서의 의미를 찾으며 숙고해야 할 중요한 이유를 여기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오늘을 살며 죽음을 준비하는 삶이야말로 죽은 이도 또 살아갈 이도 모두 잘 지내는 방법이니까요.


러시아 문호 레오 톨스토이(Leo Tolstoy)가 단편 <세 가지 질문>에서 삶의 중요한 지혜로 소개하는 “지금 네 옆에 있는 사람에게 선을 행하라”는 명언을 죽음을 생각하며 스스로에게 물어보면 참 특별한 삶의 지침을 선물합니다.     


“오늘이 나의 삶의 마지막이라면 나는 누구와 무엇을 어떻게 하겠습니까?”
이전 02화 1. 삶을 잘 몰라도 죽음에 대해 물어볼게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