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 나와 우리의 삶과 죽음 이야기
가히 폭발적이라고 표현할 만큼, 컴퓨터 게임을 비롯해 게임의 종류가 참 많아졌습니다.
이제 TV 광고의 대세가 게임 광고가 되었고, 어느 순간부터는 유명 연예인이 게임 광고에 등장하고 있습니다.
게임은 어린이의 놀이기구가 아닌, 전 국민적인 관심거리가 되었어요. 지하철이나 버스와 같은 대중교통에서 스마트폰을 들고 있는 사람의 상당수는 게임을 하고 있는 겁니다.
심지어 집집마다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다들 게임에 심취해 밥을 먹을 때나 텔레비전을 볼 때 서로 아무 말이 없다고 해요. 게임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게임 인류’라는 말까지 등장했으니 게임에 문외한인 사람이라도 게임의 종류 정도는 알아야 대화가 가능한 시대입니다. 게임이 일상의 중요한 부분이 되었어요.
사람들이 게임에 빠지는 이유 중의 하나로 대리만족을 꼽을 수 있습니다. 각 단계의 미션을 해결하고 통과하면서 점수와 레벨이 올라가는 경험이 주는 성취감은 대단합니다.
각종 아이템을 획득해서 더 멋지고 강한 내가 되어가는 것은 짜릿한 즐거움입니다.
더욱이 현실 세상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것들을 해볼 수 있고 또 지금의 나와는 다른 내가 되어 사는 경험도 할 수 있습니다.
카레이서가 되어 마음껏 질주하는 것이나, 왕이 되어 나라를 다스리고 군대를 이끄는 것도 게임에서는 가능합니다. 가보지 못한 곳을 자유롭게 가볼 수도 있습니다. 심지어 건물을 부수고 사람을 죽일 수도 있습니다.
게임이라는 가상공간에서는 이런 인간의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키기에 참 좋습니다. 요즘에는 세밀한 그래픽의 구현으로 게임 속 환경에 사실감이 높아지면서 만족도도 높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그 공간은 스마트폰이나 컴퓨터 모니터 상의 세계라 다들 아쉬워합니다.
최근에는 가상현실과 증강현실 기기의 발전으로 점차 오감을 통해 게임에 몰입하는 경험을 한다고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상세계에서는 이미 많은 일들이 이루어지고 있어요.
음악공연을 비롯해, 대학교 입학식 등의 행사와 명품을 구입하고 아바타 얼굴에 화장까지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일을 도와주는 사람도 있고요.
옷과 가구를 비롯한 각종 아이템을 제작해서 수입을 얻기도 합니다.
도시를 건설하고 이전에 해보지 못한 다양한 경험도 하는데, 현실에서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체험의 기회가 제공된다면 가상세계는 새로운 삶의 현장이 될 수 있습니다.
앞으로는 가상세계인 메타버스 안에만 존재하는 일자리가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이라고 합니다.
가상세계 내의 질서를 유지하고 사람들을 도우며 공연을 하고 아이템을 얻는 것과 관련된 여러 일자리도 생길 것으로 예상합니다.
더욱 죽음을 공부해야 할 이유들
그런데 아쉬운 것은 많은 인터넷 게임, 현실을 배경으로 증강현실을 경험하는 게임들의 대부분도 혼자 또는 팀을 이루어 다른 사람과 싸우는 내용입니다.
동맹을 맺기도 하지만, 수없이 몰려오는 게임의 인물들을 죽여 레벨을 올리고 더 좋은 무기를 획득하는 것이 게임의 주된 스토리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아무런 생각 없이 사람을 죽여도 되는지 묻고 싶어요.
가상세계에서 이루어지는 일이니 아무 상관없지 않으냐고 말할지도 모르지만, 누군가를 죽이는 것이 자신에게 미칠 부정적인 영향은 없는지 진지하게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tvN 드라마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은 증강현실을 배경으로 만든 대한민국 최초의 드라마로 관심을 끌었습니다.
IT 투자회사 제이원 홀딩스의 유진우 대표는 스페인 출장 중에 증강현실 게임을 개발한 익명의 프로그래머의 연락을 받고 그라나다로 향합니다.
그라나다에서 게임 전용 렌즈를 끼고 프로그래머가 보내온 게임을 거리에서 직접 해보고는 사실적인 몰입감에 감탄해 어떻게든 게임 개발자를 만나 계약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게임 개발자 정세주는 많은 의문만을 남긴 채 그라나다행 기차 안에서 실종됩니다.
한편 진우의 경쟁자이자 자취방 시절 동료였던 차형석도 이 게임을 계약하려고 하지만 개발자가 사라지며 오리무중인 상황에서 그라나다에 온 진우와 게임에서 만나 결투를 벌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게임에서 진우의 칼을 맞아 죽은 형석은 다음 날 아침, 공원에서 실제 죽은 상태로 발견됩니다.
그리고 게임에서 사라지지 않고 계속 나타나 진우와 결투를 벌입니다.
제이원에서는 자신의 회사에서 만든 렌즈를 눈에 끼고 증강현실 게임을 즐길 수 있는 ‘넥스트’ 출시를 준비합니다.
스페인 그라나다와 대한민국 서울, 두 도시의 거리와 건물을 배경으로 이 렌즈를 착용하고 조선 시대 무사, 테러리스트, 탈영병 등과 싸워 레벨을 올려 무기를 업그레이드시키는 게임입니다.
그런데 게임에서 사람이 죽으면 실제 그 사람이 죽는, 게임과 현실 상황이 서로 교차하는 위험성을 경고했지만 일반인에게 게임을 오픈하려고 합니다.
결국 진우는 게임의 버그 문제를 해결하고 수많은 NPC(Non Player Character)들과 함께 사라집니다.
1년이 흐르고, 제이원에서 출시한 증강현실 게임 넥스트는 엄청난 돌풍을 일으킵니다.
그리고 죽었다고 생각했던 진우는 게임 마스터가 위급 상황에서 만들 수 있는 인스턴트 던전(Instance Dungeon)에 숨어 있다 다시 활동하는 것으로 드라마는 끝납니다.
드라마에서 증강현실 게임 ‘넥스트’가 출시됐을 때, 여의도 공원을 비롯한 곳곳에서 사람들이 허공을 향해 손을 휘두르는 행동을 합니다.
칼과 총으로 대결을 벌이는 것으로 게임에 참여한 사람들에 의해 길거리에서 크고 작은 사고가 일어납니다.
편의점으로 사람들이 몰리고 다툼이 벌어집니다. 특징 햄버거를 먹고 음료수를 마시면 생명력이 올라가며 에너지가 충전되기에 서로 사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정부차원에서 법규를 마련하고 제이원은 4차선 이상 도로, 학교 주변, 10층 이상 고층건물은 게임 존에서 제외시키고, 12시부터 2시까지 점심시간과 6시 이후에만 접속이 가능하도록 해서 게임이 일상생활을 해치지 않도록 조치합니다.
드라마 속 증강현실 게임인 넥스트는 전투를 테마로 합니다.
많은 인터넷 게임이 그렇지만, 현실을 배경으로 증강현실을 경험하는 이 게임도 혼자 또는 팀을 이루어 다른 사람을 죽여 레벨을 올리고 더욱 강력한 무기를 얻습니다. 누군가를 더 많이 죽일수록 더 큰 힘과 지위를 얻게 되는 형태인 것이지요.
지금까지 죽음과 관련된 경험이나 죽음을 대하는 태도는 어린 시절부터 가정에서 부모로부터 보고 배웠습니다. 부모 또는 조부모로부터 식구 중 누군가의 또는 가까운 친척의 죽음 소식과 함께 죽음이 무엇인지 또 죽음 이후 무슨 일이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듣습니다.
그러면서 고인과 유가족을 만났을 때 어떤 태도를 보여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을 듣거나 함께 장례식장을 찾아 부모의 행동을 지켜보고 따라 함으로 죽음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특히 옛날에는 대부분 집에서 장례식을 했기에 이웃집에서 진행되는 장례식을 지나가다 보면서 자연스럽게 죽음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는 계기도 있었지요.
보다 직접적으로는 함께 사는 가족 중 한 사람이 질병이나 나이가 많아 죽어가는 모습을 옆에서 경험하게 되는 경우도 있었어요. 할아버지와 할머니처럼 조부모와 한 집에서 사는 경우도 많았으니까요.
또 키우던 동물이나 식물처럼 관계를 맺던 생명이 죽어 땅에 묻어주거나 슬퍼했던 경험도 죽음교육이 이루어지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죽음과 죽어감의 과정 그리고 사별에 대한 불안과 슬픔의 감정을 다루는 일이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체득될 수 있었어요.
그런데 요즘은 그런 경험의 기회가 줄어들었고, 그러면서 죽음과 죽어감의 이해의 폭이 좁아졌습니다.
‘학생은 그런데 갈 필요 없다’는 인식에 부모와 장례식장에 가는 일이 거의 없을 뿐 아니라, 집 근처 동네에서 장례식을 경험할 일도 없습니다.
미디어를 통해 자연재해와 사건과 사고로 많은 사람이 죽은 소식을 자주 듣지만, 그런 내용이 일상적인 뉴스에 섞여 전해지면서 주의 깊게 다가오지 않아요.
잠깐은 놀라지만 곧 먼 나라의 이야기, 나와 상관없는 남의 이야기로만 여겨집니다. 게임기나 인터넷 게임에서처럼 가상세계에서 손쉽게 사람과 생명체를 죽이는 경험은 생명의 가치를 소홀히 여기는 사고와 행동을 낳을까 걱정됩니다.
이처럼 가정에서의 비형식적 죽음교육이나 지역사회에서의 경험이 희박해지고 생명과 죽음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는 기회가 부족해졌기에 더욱 체계적인 죽음교육이 필요합니다.
죽음은 일상에서 언제든지, 어디에서나 접할 수 있는 사건이기 때문에 남녀노소 대상을 제한할 일이 아니지요.
또 생명윤리에 대한 주제와 인간을 대하는 인격적인 삶과도 깊이 연관되어 있어 성장하고 성숙해가는 과정에서 실제적으로 배우고 익혀야 할 주제입니다.
넘쳐나는 죽음 기사들과 미디어 리터러시
오늘날 죽음에 대한 뉴스와 기사를 흔하게 접합니다. 살인사건, 아동 유기, 대형 참사, 유명인의 자살까지 수많은 사고와 사건에서 누군가 죽었다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그런데 그중에는 죽음에 대한 부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거나 제대로 설명하지 않아 죽음에 대한 지나친 공포를 조장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반대로 죽음에 대한 고통을 미화하며 환상적인 생각을 심어주기도 하고요.
각종 미디어를 통해 죽음에 대한 소식을 접할 기회가 늘어난 만큼 죽음에 대한 바른 정보를 제공하는 일이 현대사회에서 더욱 필요해졌고 동시에 잘 읽고 이해할 책임도 커졌습니다.
한국기자협회(journalist Association of Korea, https://www.journalist.or.kr)는 ‘재난보도준칙’에서 재난 보도는 사회적 혼란이나 불안을 야기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하며, 재난 수습에 지장을 주거나 피해자의 명예나 사생활 등 개인의 인권을 침해하는 일이 없도록 각별히 유의해야 한다고 명시합니다.
그러면서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침몰 참사를 계기로 재난보도준칙을 제정하며 실천할 몇 가지 ‘취재와 보도’(제2장) 준칙을 제시합니다.
진위와 정확성을 최대한 검증할 것과 흥미위주 보도로 피해자와 주변 사람들 그리고 시청자의 반발이나 불쾌감을 유발하지 말 것을 권고하는데, 그중의 몇 가지 조항은 이런 내용입니다.
“피해 규모나 피해자 명단, 사고 원인과 수사 상황 등 중요한 정보에 관한 보도는 책임 있는 재난관리당국이나 관련기관의 공식 발표에 따르되 공식 발표의 진위와 정확성에 대해서도 최대한 검증해야 한다. 공식 발표가 늦어지거나 발표 내용이 의심스러울 때는 자체적으로 취재한 내용을 보도하되 정확성과 객관성을 최대한 검증하고 자체 취재임을 밝혀야 한다.” - 제11조(공적 정보의 취급)
“피해자 가족의 오열 등 과도한 감정 표현, 부적절한 신체 노출, 재난 상황의 본질과 관련이 없는 흥미위주의 보도 등은 하지 않는다. 자극적인 장면의 단순 반복 보도는 지양한다. 불필요한 반발이나 불쾌감을 유발할 수 있는 지나친 근접 취재도 자제한다.” - 제15조(선정적 보도 지양)
“피해자와 그 가족, 주변 사람들에게 인터뷰를 강요해서는 안 된다. 인터뷰를 원치 않을 경우에는 그 의사를 존중해야 하며 비밀 촬영이나 녹음 등은 하지 않는다. 인터뷰에 응한다 할지라도 질문 내용과 질문 방법, 인터뷰 시간 등을 세심하게 배려해 피해자의 심리적, 육체적 안정을 해치지 않도록 각별히 유의해야 한다.” - 제20조(피해자 인터뷰)
특히 자살과 관련된 기사를 보도할 때는 더욱 주의가 요구됩니다. 그래서 <한국기자협회 자살보도 윤리강령>에서는 한국자살예방협회와 공동 제정한 ‘자살보도를 위한 실천 요강’을 제시합니다.
그 내용은 죽음의 방식은 한 개인의 사적 영역에 속하며 언론은 이를 존중해야 하고 따라서 보도에 매우 신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①자살을 영웅적 행위나 낭만적 해결책처럼 포장하기,
②자살 방법을 소개하고 세세하게 설명하기,
③작은 사실에 근거하여 일반화하거나 자살의 원인을 단순화하기,
④자살이 아무런 예고나 이유 없이 일어났다고 서술하기,
⑤자살한 사람의 매력이나 명성에 누가 될까 봐 정신건강 상태나 약물중독과 같은 문제를 쉬쉬하기,
⑥‘자살’이란 용어를 헤드라인에 쓰거나 사인(死因)을 자살로 밝히기,
⑦자살한 사람의 사진 넣기, ⑧유명인의 자살을 주요 기사로 싣기를 피하라고 합니다.
그리고 보도에 넣을 것으로
①자살률의 최근 경향,
②최근의 치료 및 상담의 발전 양상,
③치료 및 상담을 받고 자살위기에서 벗어난 사람들의 사례,
④자살하지 않고도 절망에서 일어선 사람들의 사례,
⑤자살의 신화나 잘못된 상식,
⑥자살 징후들 소개,
⑦자살위기에 처한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할 것을 이야기합니다.
이런 강령을 제시할 만큼 미디어를 통해 죽음과 관련된 이야기를 들을 때는 바르게 읽는 노력이 중요하고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이 필요합니다.
메모) 미디어 리터러시란 / 미디어 리터러시란, 미디어(media)와 리터러시(literacy)의 합성어로 미디어를 읽고 쓸 줄 아는 능력을 말합니다. 미디어 콘텐츠를 단순히 읽는 것을 넘어 비판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를 바탕으로 올바른 정보를 추출해내고, 특성에 맞는 미디어를 선택하고 활용하는 능력을 키우며, 미디어를 통해 바르게 의사소통할 수 있는 능력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학교에서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은 다음 네 가지 방향으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①미디어 이용 방법을 알고 목적에 맞는 미디어를 선정하고 활용하며 미디어 사용에 관한 조절 능력을 높이는 ‘접근 능력’ 부분, ②미디어를 통해 사회적 소통에 대한 참여 욕구와 능력을 높이고 사회적 규범을 준수한 건강한 소통을 위한 ‘사회적 소통능력’ 부분, ③미디어가 제공하는 정보가 사실인지 분별할 수 있도록 비판적이고 선별적 수용능력을 키우는 ‘비판적 이해능력’ 부분, ④창의적으로 미디어를 활용해 의사를 표현하고 영상제작과 편집 등 활용능력을 키우는 ‘창의적 표현능력’ 부분입니다.
죽음 리터러시가 필요합니다
사람들이 부를 과시하며 튤립에 대한 투기 열풍에 빠졌을 때, 한 유형의 정물화가 유한한 삶과 누구나 맞이하게 될 죽음 그리고 겸손한 일상생활에 대해 사람들을 일깨웠습니다.
잊고 살던 죽음에 대해 바르게 이해하고 죽음을 직시하는 능력을 키워주었으니 일명 ‘죽음 리터러시’ 기능을 했다고 말할 수 있겠지요.
그것은 17세기 유럽, 특히 네덜란드를 중심으로 유행하던 ‘바니타스 정물화’입니다.
라틴어 ‘바니타스’는 ‘헛됨’을 의미하는데, 바니타스 정물화는 인생의 덧없음과 죽음을 의미를 설명하는 그림으로 여기에는 몇 가지 물건이 공통적으로 등장합니다.
이 그림에서 보듯이 왼쪽의 회중시계는 점점 다가오는 죽음을, 꽃병에 활짝 핀 꽃과 시든 꽃은 인간의 젊음이 유한함을 나타냅니다.
그 옆의 해골은 누구나 이르게 될 필연적인 죽음을, 그리고 오른쪽의 담뱃대는 연기처럼 사라지는 인생의 허무함을 의미합니다.
그 외에도 여러 물건들이 등장합니다. 죽으면 사라질 세속의 권력과 부를 나타내는 각종 ‘금은보화와 지갑과 왕관’, 배움과 지식의 유한함을 뜻하는 ‘책과 지구의’, 세상의 즐거움에 내재한 허무를 의미하는 ‘피리 같은 악기와 그림, 트럼프’ 같은 것들입니다.
그리고 무엇으로도 막지 못할 죽음의 힘을 상징하는 ‘투구와 창 그리고 갑옷’ 등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메모) 네덜란드 튤립 투기열풍 / 1602년 세계 최초의 주식회사인 동인도회사(Dutch East India Company)가 설립되고 식민지 국가에서 막대한 자금이 유입되면서 네덜란드는 엄청난 부를 누립니다. 그 부를 과시하기 위해 당시 오스만 튀르크(Osman Türk)에서 들여와 재배하기 시작한 희귀 꽃인 튤립을 앞 다투어 구입했습니다. 이 꽃은 당시 대표적인 부의 상징이었습니다. 심지어 아직 꽃이 피기 전의 구근까지 투자하는 열풍이 불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거품이 갑자기 붕괴되면서 큰 사회적 문제가 되었습니다.
죽음은 누구나 경험하게 되지만 언제 일어날지 알 수 없고 미리 경험할 수가 없는 사건입니다.
그리고 가장 큰 불안과 함께 주변 사람의 죽음은 극심한 고통을 일으킵니다.
그래서 좀처럼 생각하거나 말하려 하지 않습니다.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처럼 여기며 사는데, 그러다가 자신의 죽음은 물론 가까운 사람의 죽음으로 인해 당황하거나 분노합니다.
걱정스러운 경우는 깊은 슬픔에 빠져 어쩔 줄을 몰라 멍한 상태에서 엉뚱한 결정을 내리거나 어리석은 행동을 하는 경우입니다.
죽음을 제대로 이해함으로 합리적이고 비판적으로 생각하는 능력을 키우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미리 준비하며 죽음을 통해 성장할 기회를 가지지 못한 이유입니다. 이것이 지금 무엇보다 먼저 죽음을 배워야 하는 까닭입니다.
지금은 죽음을 공부할 시간
교육은 인지적인 차원에서 이전까지 알지 못했던 것을 알게 해 주고 더 폭넓은 지식을 제공합니다.
또 정서적인 차원에서는 불필요한 감정의 소진을 막고 긍정적인 감정을 활성화시켜 심리적인 만족감과 안정감을 부여합니다.
그리고 의지적인 차원에서 바람직한 선택과 결정에 도움을 주고 예상하지 못한 일에 대해 미리 대비하게 하는 적극성을 줍니다.
사회적인 차원에서는 개인적인 차원을 넘어 공동체적 경험을 통해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전망을 갖게 하는 것이 교육의 역할입니다.
죽음교육은 인지적으로, 정서적으로, 의지적으로 죽음(death)과 죽어감(dying)의 과정에 대해 이해하고 준비하게 합니다.
죽음에 대한 불필요한 오해와 불안을 감소시키고, 지금의 삶에 대한 해석의 폭을 넓혀줍니다.
죽음에 대한 불안감을 감소시키고 보다 안정된 정서적 태도를 통해 삶에 대한 통합적인 시각을 갖게 하며 다른 사람과의 건강한 관계로 이끌어요.
또한 언제, 어디서, 어떻게 다가올지 모르는 죽음을 의식하면서 삶에 대한 이해가 확장되어 매사에 정성을 다해 삶을 살게 합니다.
그리고 생명을 경시 여기는 사회적인 분위기에 경각심을 불어넣고 공동체적인 연대를 고민하게 합니다.
상실로 인한 슬픔의 감정을 다루는 애도의 과정에 공감할 수 있도록 해서 다른 사람과의 협력과 일치감을 형성하는데도 죽음교육이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그래서 모든 세대가 지금 공부해야 할 주제입니다.
“죽게 되리라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정작 자신이 죽을 거라고는 아무도 믿질 않는다 말이야. 만약 그 사실을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될 텐데.”
“다시 말하면 일단 죽는 법을 배우게 되면 사는 법도 배우게 된다네.”
“서로 사랑하고 그 사랑의 감정을 기억할 수 있는 한, 우리는 우리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잊히지 않고 죽을 수 있네. 자네가 가꾼 모든 사랑과 모든 기억이 거기에 고스란히 남아 있겠지. 자네는 계속 살아 있을 수 있어. 자네가 여기에 있는 동안은 만지고 보듬었던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에 말이야. 죽음은 생명이 끝나는 것이지 관계가 끝나는 것은 아니네.”
책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Tuesdays with Morrie)에서 모리 교수가 애제자 미치 앨봄에게 해준 말입니다.
모리 슈워츠 교수는 미국 매사추세츠 월트햄에 있는 브랜다이스대학에서 35년 동안 사회학 교수로 재직하다, 1994년 77세에 루게릭병이 걸립니다.
정신은 멀쩡하지만 다리부터 서서히 굳어지기 시작하는 이 병은 결국 심장까지 다가와 목숨을 잃게 합니다. 보통 3년 이내에 50%, 6년 이내에 90%가 죽습니다.
그에게는 미치 앨봄이라는 애제자가 있었는데 각종 매체에서 언론인 겸 작가로 정신없이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때로 성공을 위해 다른 사람을 비난하는 기사도 서슴없이 썼습니다.
우연히 스승의 투병생활에 대한 TV 방송을 보게 되어 스승을 만나고 온 후, 인생의 의미에 대해 이야기하는 매주 화요일의 수업시간을 갖게 됩니다.
앨봄은 죽음을 앞둔 스승 모리와의 만남을 통해 죽어가는 스승을 보면서 죽음을 깊이 생각하게 되고, 삶의 의미를 새롭게 깨닫는 가운데 겸손한 사람으로 변화됩니다.
그는 이 시간을 통해 성공 지향적이고 일 지향적이며 자기중심적인 삶에 변화를 경험합니다.
또 죽음에 대한 생각은 시간의 우선순위를 바꾸어 놓습니다. 시간이 없어서가 아니라 주변의 여러 일에 빼앗겼던 시간을 제자리로 돌려놓게 합니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라는 말이 있습니다. 라틴어인 이 말은 ‘죽음을 기억하라’는 뜻입니다.
옛날 로마에서는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고 개선하는 장군이 시가행진을 할 때, 노예를 시켜 행렬 뒤에서 큰소리로 메멘토 모리를 외치게 했다고 합니다.
‘전쟁에서 승리했다고 너무 우쭐대지 말라. 오늘은 개선장군이지만, 너도 언젠가는 죽는다. 그러니 겸손하게 행동하라’는 메시지를 전하게 한 것이지요.
죽음을 기억하면 오늘의 삶을 제대로 충분히 보며 읽을 수 있습니다.
죽음을 기억한다는 것은 목숨에 대해, 생명에 대해 생각한다는 것인데, 그럴 때 우리는 겸손해지고 단단해집니다.
죽음 앞에서는 과장하거나 보기 좋게 치장하는 것도 무의미하니까요. 생명의 가치를 깨닫는 데 있어서 자신의 죽음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은 중요합니다.
죽음을 의식하는 것이야말로 생명의 존엄함을 알 수 있기 때문으로, 죽는다는 것을 앞에 두었을 때 지금 자신이 살아있다는 것이 얼마나 멋진 일인지 알게 됩니다. 생명의 존엄함과 소중함을 느끼게 해 줍니다.
때로 죽음에 직면하여 절망과 좌절을 느낄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죽음을 인생의 불운이 아니라 소중한 선물로 받아들이고 새로운 기회로 여긴다면 이전에 없던 인생의 계기를 만날 수 있습니다.
내일도 바르게 전망할 수 있고요. 진정한 삶의 의미를 발견하게 하는 것도 죽음을 통해 생명과 삶의 의미를 찾을 때입니다.
죽음이 없다면 시간은 늘어지고, 삶은 사소해져 버리니까요. 이것이 죽음을 생각하고 준비하며 기억해야 할 이유이고, 우리에게 주는 유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