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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조 Apr 22. 2022

7. 슬픔은 함께 할 때 더 잘 이길 수 있습니다

2장 – 나와 우리의 삶과 죽음 이야기

소설 『마지막 이벤트』(유은실, 바람의아이들/2010)의 주인공 영욱이 할아버지에게 보내는 마지막 핸드폰 문자입니다.


“할아버지 내가 치사하다는 말 진심 아니지? 엄청 보고 싶어. 그리고 어제 활명수 한 병만 사와서 미안해. 많이 먹으면 나쁠까 봐 그런 거야. 할아버지 사랑해.” “할아버지, 바탕화면 안 지울께. 번호도 그냥 계속 일 번 할게.”     


79세 된 할아버지는 “일흔아홉, 죽기 딱 좋은 나이지”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하는데, 영욱은 할아버지와 문간방에서 같이 지냅니다. 항상 자신을 소중히 생각하는 할아버지와 함께 있으면 행복합니다. 

그래서 할아버지 냄새도, 엄마와 누나가 싫어하는 ‘저승꽃’이라는 검버섯도 영욱은 좋기만 합니다. 그래서 영욱의 장례희망은 노인복지사입니다.     


어느 날, 할아버지가 식은땀을 흘리다 죽을 것 같다며 자식을 불러들이는데, 이미 여러 번 있던 일이라 관심들이 없습니다.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모이지 않았는데, 결국 할아버지는 세상을 떠납니다. 

그리고 죽으면 열어보라고 테이프로 봉해 둔 벽장 속 상자에서 가족들은 할아버지의 마지막 이벤트를 만납니다.


거기에는 환하게 웃는 깨끗한 얼굴의 영정사진, 베로 남든 여자 수의, 그리고 다시 태어난다면 여자로 태어나 좋은 엄마가 되고 싶다는 글이 적힌 종이가 있었습니다. 가족을 따뜻하게 대하며 더 잘 해주지 못한 아쉬움과 지난 삶의 후회를 담은 것이지요. 


할아버지가 준비한 수의와 편지는 가족들에게는 의외의 낯선 이벤트였습니다.    

  

이 책에서 할아버지를 좋아했던 영욱은 활명수 세 병 사다드리지 못한 것, 할아버지가 오줌을 눈 것을 부모님께 이야기 못한 것을 아쉬워하며 웁니다. 자기 때문에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나 싶은 생각도 합니다. 

그 만큼 평소의 사랑의 깊이를 가늠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으로 인한 슬픔

경제학과 교수인 앤드류 오스왈드(Andrew Oswald)는 독특한 연구를 했습니다.

생명의 가치를 화폐단위로 계산할 수 있다는 전제하에 ‘죽음, 행복 그리고 손해배상의 수치화’라는 논문을 2007년 발표했습니다. 


이 논문에 의하면 부모, 자녀, 배우자의 사망에 따른 정신적 고통을 수치로 나타냈을 때 배우자가 가장 높게 나타났습니다. 

사망 이전 느꼈던 행복을 회복하기 위한 금전적 보상이 배우자는 약 2억 1천만 원, 자녀는 약 1억 1천만 원, 부모는 2천7백만 원이었습니다.


당연히 가까운 사람의 죽음에 대한 보상을 돈으로 환산할 수는 없지요. 

다만 이 연구는 상실로 인한 고통과 사망 이전 느꼈던 행복을 회복하는 데 필요한 금전적 보상을 판단할 때 법원이 참고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연구는 죽음의 고통이 주변 사람들과 사회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지를 다시금 확인시켜 줍니다. 

    



동그랗게 뜬 눈과 홀쭉한 뺨, 비명을 지르는 모습의 죽은 사람을 연상시키는 얼굴이 등장하는 유명한 그림 <절규>(1893년)는 노르웨이 화가 에드바르 뭉크(Edvard Munch, 1863-1944년)의 작품입니다. 


그가 이 그림을 그리던 당시의 심경을 쓴 글을 보면, 불안감과 뭔지 모를 두려움에 고통스러워하는 마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두 친구와 함께 길을 걷던 중이었다. 해가 지고 있었는데, 불현듯 우울함이 엄습했다. 하늘이 갑자기 핏빛으로 물들었다. 나는 죽을 것 같은 피로감에 멈춰 서서 난간에 기댔다. 검푸른 협만에 화염 같은 핏빛 구름이 걸려 있었다. 친구들은 계속 걸어갔고 나는 혼자서 불안에 떨며 자연을 관통하는 거대하고 끝없는 절규를 느꼈다.”     


뭉크는 누군가의 죽음에 슬퍼하는 사람들의 모습과 마음을 표현한 그림을 여럿 남겼습니다. 

(그림설명: 에드바르 뭉크, <죽은 어머니와 어린이>, 1899년)

그중의 하나가 5세의 어린 나이에 어머니가 죽었을 때 겪은 상처를 읽을 수 있는 그림 <죽은 어머니와 어린이>입니다. 

침대 위에 죽은 어머니가 누워 있습니다. 그런데 이 그림의 중심은 어머니가 아닌, 그 앞의 한 소녀처럼 보입니다. 형태도 크고 색깔도 더 선명합니다. 

주변 인물들은 검은색과 흰색으로 윤각만 대략 그렸는데, 이 소녀는 붉은색의 옷을 입고 얼굴도 보다 선명하게 표현했습니다. 

이 소녀가 뭉크의 누이 소피라고 하는데, 이상한 것은 그림에서 소피가 죽은 어머니가 아닌 관람자를 보고 있습니다. 어머니를 보고 있는 소피의 등이 보이는 것이 아니라, 얼굴이 보이도록 그렸습니다. 

공포에 사로잡힌 것 같은 얼굴 모습은 그녀의 마음 상태를 표현했습니다. 

뭉크의 대표작 <절규>에 나오는 그 표정 그대로입니다. 아마도 이것은 뭉크 자신의 마음 상태를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떠날 때에 주변 사람이 겪는 충격이 이와 같습니다.

(그림설명: 에드바르 뭉크, <절규>, 1893년)

                

죽음에 대한 고통과 아픔은 가족과 같이 직접적으로 관련된 당사자만이 아니라, 주변 사람 그리고 더 나아가 사회에도 큰 영향을 끼칩니다. 


2014년을 대표하는 사건이라고 할 수 있는 세월호 사건이 실제 사례입니다. 

당시 뉴스에서 대한 신경정신의학회는 세월호 사고 여파로 국민의 정신건강이 위협받고 있다며 국민과 언론 및 정부에 당부의 메시지를 발표했습니다. 


세월호 참사 여파로 인해 희생자의 유가족들이 잇따라 자살을 시도하는가 하면 자원봉사에 참여한 40대 남성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벌어지는 일들이 위기 상황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정신과 의사가 세월호 유가족들과 함께 생활하며 느낀 것”- tvN 프리미엄 특강쇼 <어쩌다 어른>


1인 가구의 증가와 저출산/고령사회

1인 가구가 급격히 증가했습니다. 2020년 인구주택 총조사 결과 1인 가구는 664만 3000가구를 넘어 전체 가구 수의 30.2%를 차지했습니다. 

1990년대 9% 수준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빠른 속도로 증가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29세 이하 청년층은 52.9%에 달했고, 미혼 1인 가구도 증가해 50.3%를 차지했습니다. 혼자 사는 사람이 늘어나는 현상을 뜻하는 ‘싱글라이제이션(Singlization)’이 더 이상 낯설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림출처: 2020 인구주택 총조사 홈페이지)


이로 인해 혼밥, 혼술 등 혼자 생활하며 활동하는 사람들의 사회적인 관계망 형성에 우려가 큽니다. 

서로 돕고 의지하며 삶을 공유할 사람들이 줄어들면서 사회적 고립감과 위기 시에 대처할 안정망이 약해졌기 때문입니다. 

  

그와 함께 대한민국은 대표적인 저출산·고령화 국가입니다. 그러다 보니 젊은 세대가 노인 세대를 부양하기 어려워 좀 덜 나이 든 노인이 더 많이 나이 든 노인을 돌봐야 합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7개국 가운데 가장 빠르게 고령사회가 되었는데, 심지어 대한민국이 자연 소멸할 수 있다는 이야기까지 나올 정도입니다. 


노인 인구가 늘어나는 속도는 대표적인 초고령사회인 일본의 고령화 증가율 2.9%보다 더 큰 3.3%에 달합니다. 

대한민국은 2000년 고령인구 비중이 7%인 고령화 사회에 진입한 이후, 18년 만에 14% 이상인 고령사회(Aged Society)가 되었고, 2026년에는 20%가 넘는 초고령사회(Super-Aged Society)에 들어설 것으로 예상됩니다.     


메모) 합계출산율이란 / 여성이 평생 낳을 것으로 기대되는 아이의 수를 ‘합계출산율’이라고 합니다. 한국경제연구원이 2021년 3월에 발표한 내용에는 1970년~2018년 합계출산율은 연평균 3.1% 감소해, 2017년 4.53명이었던 합계출산율이 2018년에는 0.98명으로 뚝 떨어졌고, 2019년은 0.84명이었습니다. OECD 국가 중 합계출산율이 1명 이하인 나라는 대한민국밖에 없다고 합니다.     

“초고령사회 치닫는 대한민국”- 연합뉴스 TV 탐사보도 <뉴스프리즘>

조선시대 오복 가운데 첫째로 내세우는 것이 ‘수(壽, 목숨 수)’이듯이, 시대와 지역을 초월하여 사람들은 오래 사는 것이 가장 복된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복’에 대치되는 ‘육극(六極, 여섯 육/ 다할 극)’의 첫 번째는 ‘단명’인데, 이처럼 일찍 죽는 것을 가장 큰 불행으로 여긴 것에서도 장수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사람의 목숨은 하늘의 뜻에 달려 있다고 여겼기에 사람들의 소원이나 다른 사람을 위한 기원에는 장수와 관련된 것이 많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은 장수가 오히려 불행이라고 말하는 시대가 되어버렸습니다. 고령화 시대의 결과로 나타나는 여러 부정적인 현상들로 인해서 그렇습니다. 


오래 사는 중에 겪는 치매를 비롯한 여러 질병의 고통으로 많은 사람이 힘들어합니다. 질병을 앓는 본인만 아니라, 부양하며 돌봐야 하는 가족들까지 말이지요. 


또 은퇴 후에도 여가를 즐기기에는 살아야 할 날이 너무 길어 여전히 경제활동을 하며 돈을 벌어야 생활을 할 수 있어 생계에 대한 부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서로 이해하기 어려운 세대 간의 갈등, 예기치 못한 사건과 사고가 언제 어디서 일어날지 모르는 불안감 등으로 장수를 반기기만 하긴 어려운 현실입니다.     


이제는 자녀세대인 노인이 부모세대인 노인을 봉양할 뿐만 아니라, 노인세대가 된 자녀들이 그 부모의 장례를 치르는 시대입니다. 우리나라는 유교 문화의 영향으로 오랫동안 매장을 당연하게 생각했어요. 

하지만 이제는 묘지를 관리하는 데 따르는 불편함과 고령사회의 도래와 1인 가구의 증가라는 가족 구성과 가족관계의 변화로 시신을 화장(火葬, 불 화/ 장사 지낼 장)하는 비율이 급속히 증가했습니다. 


신문에서 전남 고흥군의 한 가족 묘지에 묘 전체를 회색 시멘트로 덮어버린 ‘콘크리트 묘’를 본 적이 있습니다. 과거 잔디가 수북하게 심겨 있던 묘지의 봉분과 주변을 회색 시멘트로 덮은 것입니다. 

그 이유는 멧돼지 때문이라고 하는데, 수시로 잔디를 파헤치고 봉분을 계속 훼손해 묘지관리가 어려워지자 고육지책으로 이렇게 했다고 합니다.        


도심에 가까운 개발이 한창인 지역의 공동묘지에 가보면 관리비를 내지 않아 딱지를 붙여 놓은 묘비들을 볼 수 있습니다. 

또 지역사회 개발로 인한 공동묘지 이전으로 수많은 무덤이 파헤쳐지면서 그 민낯이 그대로 드러나 주변 사람들의 마음을 안타깝게 합니다. 

(그림 설명: (왼편)묘비에 붙은 관리비 미납 딱지, (오른편)지역개발로 인한 묘지 이전 현장)


고독사

조너선 스위프트의 작품 『걸리버 여행기』(Gulliver’s Travels) 3편을 보면 신기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걸리버가 고향으로 돌아가는 항해를 하다 럭낵이라는 나라에 정박합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죽지 않는 사람이라는 ‘스트럴드브럭’에 대한 이야기를 듣습니다. 걸리버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쁨에 벅차올라 황홀에 빠진 듯 이렇게 외칩니다(『걸리버 여행기』(Gulliver’s Travels, 조너선 스위프트, ㈜을유문화사/2018), 301-302쪽).


“어린이가 영원히 살 수 있는 기회를 지니고 있는 행복한 나라여! ... 그 무엇에도 비할 수 없이 가장 행복한 이들은 스트럴드브럭이로구나. 그대들은 인간 본성에 내재한 보편적 재앙에서 면제된 채 태어나, 죽음에 대한 끊임없는 걱정으로 야기되는 정신적 중압감과 우울함으로부터 자유롭고 해방된 마음을 지닌 자들이로다.”


하지만 그 말을 들은 한 신사는 무지한 자들을 동정하는 듯한 미소를 지으며 이런 설명을 더합니다. 


그들은 대게 서른 살까지는 보통 사람들처럼 행동하지만 이후 점차 우울해지고 의기소침해지며 또 막무가내이고, 까다로우며, 탐욕스럽고, 무뚝뚝하며, 허영이 많고, 수다스럽고, 남을 사랑할 줄 모른다고요. 

그리고 늙기만 하고 죽지 않는 존재로 전혀 행복하지 않다는 말에 걸리버는 큰 충격을 받습니다.


그래서 이전에 품었던 장밋빛 공상이 진심으로 부끄럽고 또 그런 삶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라면 어떤 폭군이 내리는 죽음이라도 기꺼이 맞이하겠다고 말합니다.


오래전 영국을 배경으로 한 이 소설에서 보듯이 장수가 오히려 불행한 시대가 되었다는 것은 각종 통계로도 드러납니다. 


보건복지부 <2021 자살예방 백서>를 보면 2019년 기준 65세 이상 고령자의 자살률이 인구 10만 명당 47명으로, 전체 인구 기준 27명 보다 2배 가까이 높습니다. 

그 이유 중의 큰 원인으로 노인 빈곤율이 꼽힙니다. 대한민국은 노인 빈곤율이 43%로 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높습니다.     


노년 자살과 함께 고독사가 사회적인 이슈가 되고 있습니다. 고독사나 무연고사가 한 사람의 죽음 이상의 의미를 담는 것은 사회적 고립 상태에서 홀로 죽어 방치되는 것이 곧 그 사회의 관계망이 얼마나 허술한지를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보건복지부 조사에 따르면 2017년 무연고 사망자는 2,010명으로, 2013년에 비해 57%나 늘었다고 합니다.      

메모) 고독사란 / ‘고독사’(孤獨死, 외로울 고/ 홀로 독/ 죽을 사)란 혼자서 임종을 맞이하고 사망 뒤 일정 시간이 지나 발견되는 죽음을 의미하는데, ‘독거사(獨居死, 홀로 독/ 있을 거/ 죽을 사)’라고도 합니다. ‘무연고사(無緣故死, 없을 무/ 가선 연/ 옛 고/ 죽을 사)’가 유가족이 없거나 시신 인수를 거부하는 경우인 반면, ‘고독사’는 1인 가구가 가족, 이웃과 교류 없이 홀로 숨지는 것으로 무연고 사망과 비교할 때 범위가 좀 더 넓습니다.                               




고독사의 증가와 함께 홀로 죽음을 맞이한 분이 있던 자리를 정리하고 청소하는 전문 청소업체도 많이 늘었다고 하네요. 

“코로나의 짙은 그늘 ‘고독사’”- TV CHOSUN <뉴스7>


이와 관련된 일을 하시는 분들에 의하면, 고인의 시신을 모시고 유품을 정리하기 전후로 소독약을 뿌리는 등 방역을 하고 환기도 하지만 그 냄새는 오래간다고 합니다. 

그리고 일을 마치고 나서 잘 씻어도 좀처럼 몸에 밴 냄새가 가시지 않는 어려움을 호소합니다.


이렇게 누군가는 사랑하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다시 새롭게 태어나 오래도록 기억되는 반면, 다른 누군가는 죽음이 오기 오래전부터 잊혀집니다. 


누군가는 자녀와 그 자녀의 자녀를 통해 추억이라는 아름다운 기억 속에 오래도록 남지만, 누군가는 죽음의 악취로 전혀 알지 못하는 누군가의 손길에 의해 치워 지는 것이 안타까운 오늘날의 죽음의 어두운 현장입니다.     


가족관계의 변화가 미친 영향들

노년의 삶과 관련된 어려움으로는 생계와 관련된 경제적인 부분과 의료적인 건강의 부분 그리고 관계적인 부분이 있습니다. 


과거에 자녀와 친족 또는 고향 사람들을 중심으로 노년의 삶을 돌봐주던 때와 달리, 요즘은 많은 노인들이 혼자 사세요. 

그로 인해 생기는 노년 부부의 관계, 자녀들과의 관계, 다른 노인들과의 관계 그리고 사회와의 관계가 중요하게 부각되는 이유입니다.


그래서 죽었을 때의 장례방법으로 화장을 선호하고 연명의료를 반대하는 이유 중의 하나도 이런 느슨해진 가족관계와 부족한 지원 체계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자신이 병들었을 때 돌봐줄 사람이나 죽은 후에 자신을 기억해 줄 사람이 없다는 것 또 그런 사람이 누가 될지 모른다는 판단에 그렇게 미리 결정해두는 것이지요.     


고령화라는 사회적 상황을 일찍부터 경험하며 고독사 문제로 고민하던 일본에는 임종 준비 활동 ‘종활(終活, 끝날 종/ 살 활)’, 

장례과정을 간소화하는 ‘직장(直葬, 곧을 직/ 장사 지낼 장)’, 

그리고 가족을 포함한 가까운 지인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소규모 장례인 ‘가족장(家族葬, 집 가/ 겨레 족/ 장사 지낼 장)’과 같은 장례문화가 있습니다.


여러 사람이 모이는 밤샘이나 고별식을 생략하고 곧바로 화장해 하루 만에 장례를 끝내는 직장은 비용적인 부담을 덜기 위해서 또 홀로 살다 죽음을 맞는 노인들이 많아 장례를 돌볼 사람이 없어서 나타난 현상입니다. 

그리고 장례식 참석인원을 미리 소규모로 확정 지어 두고 장례지도사가 그들과 함께 상의하면서 고인의 장례식을 가족장으로 준비합니다.                               


적은 비용과 가족과 친지가 장례식 준비에 참여한다는 점 그리고 고인만을 위한 장례식을 구성한다는 점에서 점점 선호합니다. 

이처럼 1인 가구의 증가와 수명연장으로 인한 고령사회로의 진입은 편의성이 강조되고 의례는 간소화되는 요인이 되고 있습니다.     

“서진아 엄마는-엄마가 마지막으로 하고 싶었던 이야기”- KBS 스페셜

이처럼 예전에는 모두의 관심사였던 장례식이 이제는 그렇지 못합니다. 대부분 남의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함께 슬픔과 아픔을 풀어갈 사람도, 그럴만한 사회의 관심도 사라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죽음은 우리에게 인간 삶이 무엇인지, 인간 삶의 소중한 가치가 무엇인지 깨닫게 합니다. 인간은 결코 혼자 살 수 없음을 보여줍니다.     


함께 나눠야 할 슬픔

영화 <버킷 리스트: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것들>(The Bucket List)은 행복한 죽음을 맞이하고 싶은 사람들의 마음을 잘 보여줍니다. 

(그림출처: 다음 영화)

말기 암에 걸려 시한부 인생을 살아가는 두 노인이 같은 병실에 입원하면서 함께 계획하고 경험하는 인생의 마지막 여행과 그 과정 속에서 얻는 노년의 우정과 삶의 가치를 이야기합니다.

가족들은 절대 포기하지 못한다고, 좀 더 나은 병원으로 가자고 하지만 두 사람은 이미 작성한 버킷 리스트를 가지고 자신이 정말 하고 싶었던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행복감을 경험하지요. 


이들이 작성한 버킷 리스트에는 이런 것들이 있었습니다. 


‘세렝게티에서 사냥하기’, ‘엉덩이에 문신하기’, ‘최고 비싼 차로 카레이싱’, ‘눈물 날 때까지 웃어 보기’, ‘가장 아름다운 소녀와 키스하기’, ‘화장한 재를 깡통에 담아 경관 좋은 곳에 두기’, ‘친구한테 전화하기’, ‘배낭 메고 세계여행’ 등입니다.


그중의 하나로 이집트 피라미드에 올라 대화를 나눕니다. 내용은 두 사람의 영혼이 하늘에 가면 신으로부터 받게 되는 두 가지 질문에 대한 것입니다. 

“당신은 인생에서 기쁨을 찾았는가?” 그리고 “당신 인생이 다른 사람을 기쁘게 했는가?”입니다. 


죽음을 회피하거나 무시할 것이 아니라, 죽음과 친해지며 그 가치를 발견하는 것이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과제임을 생각하게 하는 질문이지요. 죽음에 대해 생각하고 배워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상실의 슬픔은 단지 작정하고 잊어버리겠다고 결심한다고, 오락을 통해 해소해 버린다고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라도 겪고 지나야 하는 하나의 과정으로 혼자만의 힘만으로는 어려운, 친구를 비롯한 이웃의 지지와 격려 그리고 위로가 있어야 감당할 수 있습니다. 


내가 이제까지 많은 사랑을 받은 존재임을 깨닫고, 그리고 누군가를 사랑하는 존재로 살아갈 때 진정한 위로를 경험하게 됩니다. 상실의 슬픔을 이기는 더 큰 사랑을 내일로 미루지 말고 오늘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다.                              

“엘리자베스 퀴블러-로스의 장례식”- KBS <생로병사의 비밀>

생사학의 선구자인 퀴블러 로스는 자신의 장례식을 특별한 이벤트로 준비했습니다. 그녀의 두 자녀가 관 앞에서 작은 상자를 열었습니다. 

상자 안에서는 한 마리의 호랑나비가 날아올랐고, 동시에 조문객들이 미리 받은 종이봉투에서도 수많은 나비들이 일제히 날개를 펄럭이며 파란 하늘로 날아올랐습니다.


그녀가 이러한 장례식을 생각하게 된 것은 소년 시절 자원봉사자로 폴란드 마이데넥의 유대인 수용소를 방문했을 때의 특별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수용소 내부 벽에는 곳곳에 손톱이나 돌조각으로 새긴 나비 그림이 그려져 있었습니다. 

그녀는 왜 나비 그림이 그려져 있는지 무척 궁금했고 수수께끼가 풀린 것은 그로부터 20년이 흘러 스위스 대학에서 의학을 공부하고 뉴욕과 시카고 병원에서 호스피스 활동을 하며 환자들을 돌보면서였습니다. 


그녀는 인간의 몸은 나비가 날아오르는 번데기처럼 영혼을 감싸고 있는 허물임을 확신하기에 이르게 됩니다. 그리고 수용소에서 죽음을 눈앞에 둔 사람들이 영생을 알고 있었고 그래서 나비를 그렸음을 깨닫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생각하며 특별한 장례식을 준비했던 것이었습니다.     


그녀가 준비한 장례식의 메시지를 생각해보면, 그것은 자신만 아니라 남은 가족 그리고 주변 사람을 위한 장례식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나고 관계가 단절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생명으로 나가는 시작이며 소망 가득한 일임을 알려주고 싶었기 때문이지요. 


그것이 죽음의 두려움과 슬픔에 힘들어할 남은 이들을 위한 배려였습니다. 이렇게 누군가의 배려와 돌봄 속에 죽음의 고통을 넘어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죽음을 앞둔 이들을 돌보며 함께 하는 시간을 통해 삶의 의미와 생명의 가치를 발견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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