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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조 Apr 23. 2022

8. 아무도 죽지 않을 세상이 되면 어떨까요?

2장 – 나와 우리의 삶과 죽음 이야기

중국 산시성의 산기슭에는 동서 길이 485미터, 남북 길이 515미터, 높이 76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무덤이 있습니다. 멀리서 보면 무덤이라기보다는 산처럼 보입니다. 

(그림설명: 진시황릉 지하 갱도에서 발견된 병마용)

그런데 이 거대한 무덤 속에는 흙으로 빚은 백성과 병사, 말과 전차 모양의 형상이 수천 점 배치되어 있습니다. 이 커다란 무덤의 주인공은 바로 최초로 중국을 통일한 진시황입니다. 


그는 대제국을 건설하고 문자와 도량형을 통일하는 등 중국 역사에서 가장 큰 발자취를 남긴 인물입니다. 

그러나 엄청난 권력을 가지고 중국 대륙을 호령하면서도 죽음만은 두려워했습니다. 늙는 것을 두려워한 진시황은 중국 전역은 물론 다른 나라로도 신하들을 보내 불로장생의 약을 구해오게 했습니다. 


하지만 그 계획이 실패하자 자신이 묻힐 거대한 무덤을 건설하라고 명령했습니다. 죽어서도 영원히 권력을 누릴 수 있도록 살아 있을 때 모습 그대로를 무덤 속에 재현한 것입니다.     


죽지 않을 세상이 되면 행복할까?

고대로부터 인간은 죽지 않는 삶을 원했고 자신이 처한 상황과 형편에 따라 다양한 노력을 해왔습니다. 좋은 음식을 먹으며 몸을 보양하려는 것이나, 심신을 편안히 하려는 노력들이 그 한 예입니다. 

하지만 이런 노력으로 수명이 연장되면서 장수하게 되었지만, 영원한 삶을 선물해주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죽은 이후 내세에 대한 관심과 그곳에서의 편안한 삶이었고, 진시황처럼 특별한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죽음 이후를 생각해 거대한 무덤을 만들어 산 사람을 같이 묻기도 했습니다. 죽은 이후 자신을 시중 들어줄 사람들로 말이지요.


그리고 이제 과학기술은 죽음 이후의 세상, 내세를 굳이 상정하지 않고도 인간의 죽음과 영생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합니다. 

이제는 유전공학을 통한 유전자 이식이나 조작을 통해 복제인간을 만들어 인간의 고장 난 장기를 교체해 생명을 연장하려는 시도를 합니다. 신소재 개발과 3D 프린팅 기술로 세밀한 인공장기 제작도 추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말 죽지 않을 세상이 되면 행복할까요? 죽지 않을 인생을 사는 것이 삶의 목적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정말 가치 있는 일일까요? 

진시황은 그 꿈을 이루려고 했지만 실현하지 못했고, 이집트의 피라미드도 그런 목적으로 만들어졌습니다. 하지만 죽지 않는 세상에 대한 노력과 기대는 여전히 미완의 상상에 불과합니다. 


냉동인간 시대와 생명공학

미국 애리조나 주에 있는 알코어 생명연장 재단(Alcor Life Extension Foundation)에는 현재 100명이 넘는 인간이 냉동된 상태로 보관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들이 신체를 얼린 진짜 이유?국내 최초 냉동인간 제작자에게 물었다”- 스브스 뉴스


건강이 악화되어 죽음을 앞둔 사람의 신체를 냉동보존술로 액체질소가 담긴 영하 196도의 거대한 통에 보관해 몇 백 년 동안 변화 없이 유지되도록 합니다. 

그리고 이후 나노의학 등 의학기술이 지금보다 훨씬 발전해 새로운 치료법이 개발되어 질병을 치유하고 건강을 회복해 줄 날까지 신체를 냉동상태로 보존합니다. 


이것을 통해 질병으로 죽을 상황을 유예하거나, 20대나 30대 때 누렸던 건강 혹은 그 보다 더 나은 건강을 누리는 것을 추구합니다.      


하지만 이미 시행되고 있는 냉동보존술의 경우에 신체를 냉동시켜 새로운 치료법이 개발될 때까지 보존한다고 해도, 다시 해동시키는 것에 있어서는 해결하지 못한 문제가 많습니다. 

특히 뇌를 냉동상태에서 제대로 보존하는 것과 해동 상태가 된 뒤 뇌의 세포를 복구하는 기술은 멀고도 먼 일이라고 하네요. 


사실 이런 시도는 사람을 냉동시켜 시간을 건너뛰어 미래에 도착하게 할 뿐, 생명 자체를 연장시켜주는 것은 아니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엄청난 비용을 들여야 하는 점도 문제점입니다.     




오늘날 생명연장과 밀접히 관련되는 것 중의 하나는 의학기술의 발달입니다.


생명공학의 발달은 노화를 늦추어 생명을 연장하는 것을 현실로 이루었습니다. 

노화의 유전학적 메커니즘을 연구한 엘리자베스 블랙번(Elizabeth Blackburn)은 ‘텔로미어(Telomere)’를 발견해 2009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습니다. 

(그림설명: 인간 염색체(회색) 끝 부분을 덮고 있는 텔로미어(흰색 부분))


유전병으로 체내에서 텔로머라아제(telomerase)가 적게 생산되어 이례적으로 이른 나이에 노인성 질병에 걸리는 것을 발견하고, 이 물질이 만드는 염색체 보호덮개 텔로미어가 짧아지는 것과의 관련성을 밝혔습니다. 


블랙번은 인간 종의 유전자 풀은 120년의 수명을 허용하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3대 사망원인인 암, 심혈관계 질환, 폐질환은 텔로미어의 상태와 관련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스트레스와 같은 생활조건이 텔로미어의 길이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며 어린 시절 부모의 죽음이나 성폭력 같은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은 텔로미어가 짧았다고 설명했습니다.                               

“노벨화학상을 받은 크리스퍼 유전자가위는 무엇인지 아는 척 해보자”-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최근 유전자의 일부를 잘라 내거나 붙여서 특정 유전 형질의 발현을 막거나, 원래는 없던 형질을 발현하게 하는 유전자 교정(genome editing) 기술을 이용한 치료제 개발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이 기술의 핵심도구가 유전자가위(genetic scissors)인데, 이것은 DNA 염기서열을 인식해 자르는 효소의 일종입니다. 


이전에는 소분자 약물과 항체로 질병에 원인이 되는 유전자나 유전자로 만들어지는 단백질을 억제해 치료했다면, 유전자가위는 유전자 자체를 제거하는 방식이라 이론적으로 부작용을 줄이고 효과를 높일 수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심지어 죽음 해결을 목표로 삼는 기업과 인간의 수명을 영원으로까지 늘리는 일에 전념하는 집단과 포스트휴머니즘과 같은 운동이 20세기 후반에 등장했습니다. 


레이 커즈와일(Ray Kurzweil)은 2012년 구글의 엔지니어링 이사로 임명되고 다음 해에 인간 노화의 원인을 밝혀 인간 수명을 획기적으로 늘릴 목적으로 칼리코(Calico, California Life Company)를 설립합니다. 

그는 인간 신체 안에 혈액 세포 크기의 수많은 나노로봇이 무선으로 외부와 연결되어 부족한 영양분을 자동으로 신체에 전달하고, 심지어 내부 장기의 기능을 대신해 인간이 신진대사 과정에서 완전히 해방될 것이라며 500살까지 사는 것이 가능하다고 주장했습니다.  

    

메모) 포스트휴먼과 포스트휴머니즘이란 / 포스트휴먼(posthuman)은 현생인류인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가 더 이상 인간 종을 대변할 수 없을 정도로 철저히 변화된 상태를, 그리고 포스트휴머니즘(posthumanism)은 “인간의 신체와 정신을 극한까지 강화하려는 움직임”을 가리킵니다. 신체 각 부분을 인공장기로 대체하면서 질병의 치료와 인지·정서·신체 능력이 일상적 범위를 넘어선 인간 강화를 이루고 더 나아가 기계와 인간이 상호작용하는 초연결의 차원으로까지 확장된 새로운 인류의 탄생을 의미합니다.     


죽음으로부터 인간을 해방시킬 수 있을까요?

‘프랑켄슈타인’, 한 번쯤은 들어봤을 이 이름을 듣게 되면 만화 등에서 등장하는 머리가 크고 무섭게 생긴 괴물을 연상하게 됩니다. 

하지만 실제 책 『프랑켄슈타인: 현대의 프로메테우스』(Frankenstein)에서 프랑켄슈타인이란 인간을 닮은 괴물을 탄생시킨 의사 빅터 프랑켄슈타인의 이름입니다.


소설에서 빅터의 어머니는 양녀인 동생 엘리자베스의 성홍열을 간호하던 중 고열로 죽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은 빅터는 깊은 상실감에 빠져 사람은 왜 죽는지 또 죽음을 거스를 방법은 없는지, 죽음에 대한 의문과 죽음을 통제할 방법은 무엇인지 묻게 됩니다.


“내가 인간의 육신에서 질병을 추방하고, 그 무엇보다 폭력적인 죽음으로부터 인간을 영원히 해방시킬 수만 있다면, 그 발견에 따라오는 영예는 상상도 못 할 것이 아닌가!”      


자연철학과 생명 원리에 대한 관심에서부터 시작해 생명의 통로를 발견하고, 시체안치소와 해부실과 도살장에서 시신의 부분들을 모아 연결하고 번개로부터 얻은 전기를 통해 살아있는 “흉물”, 그가 “더러운 악마”라고 부른 생명체를 만듭니다. 

(그림설명: 『프랑켄슈타인』 1831년 판 표지 뒷면)


그런데 이 생명체를 만들었지만 그조차도 받아들이기를 거부합니다. 

실험을 마친 후 기절해있던 빅터는 며칠 후에나 깨어 실험실을 다시 찾아갑니다. 그리고 소름 끼치는 존재를 발견하고는 놀라 도망쳐 애써 두렵고 고통스러운 현실을 회피하기 위해 친구 헨리와 여행을 떠납니다.


여행 후 돌아와 보니 실험실은 텅 비어 있었고, 그는 아무런 일도 없으려니 하고 잊고 지냅니다. 

그런데 아끼는 어린 동생 윌리엄과 보모 저스틴의 죽음 소식을 듣는데, 자신이 탄생시킨 괴물의 소행인 것을 직감하고는 괴로워합니다. 


그러다 괴물을 만나 인간들로부터 어떤 괴롭힘과 거부를 당했는지 또 어떻게 언어와 인간 사회에 대해 알게 되었는지 듣습니다. 

괴물은 아내를 만들어주면 멀리 사람들이 없는 곳으로 가서 살겠다고, 그렇게 해주지 않으면 무서운 보복을 하겠다고 경고합니다.


빅터는 괴물이 지난 시간 겪은 고통을 공감하며 아내를 만들어 주지만, 곧 죽여 버립니다. 이 일로 인해 괴물은 빅터의 친구 헨리 그리고 결혼식 첫날밤의 신부 엘리자베스까지 죽입니다. 빅터는 북극까지 괴물을 쫓아갑니다.     


소설은 북극점에 도달하기 위해 항해를 떠난 탐험가 월턴이 자신의 누이에게 보낸 편지로부터 시작합니다. 

이 편지의 내용은 월턴이 얼음조각 위에서 표류하던 빅터를 구조했을 때, 빅터가 들려준 위의 이야기였습니다. 


그는 선실에서 승무원들에게 지금까지의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놀랍게도 이야기를 마치고 죽은 빅터 뒤에서 그 괴물이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죽음이 내 유일한 위안”이라는 말을 남기고 사라집니다. 


빅터로부터 “평온함 속에서 행복을 찾고 야망을 피하라”는 말을 들은 월턴은 얼음이 풀리면서 배를 돌려 고향으로 향합니다.     


소설 속 빅터가 가졌던 “폭력적인 죽음으로부터 인간을 영원히 해방시킬 수만 있다면”이라는 소원은 이 책을 쓴 저자 메리 셸리의 바람이기도 했습니다. 

그녀는 어렸을 때 어머니의 죽음부터, 생후 11일 된 첫 딸의 죽음 그리고 남편과 존경하는 아버지의 죽음까지 54년의 생애 기간 동안 사랑하는 여러 사람의 죽음을 겪습니다. 


이런 경험과 죽음에 대한 질문 속에서 메리가 발견한 것은 폭력적인 죽음을 해방시키는 특별한 방법은 아니었습니다. 

죽음과 슬픔, 죄의식과 고통 그리고 사랑과 같은 인간이 가지는 근원적인 물음에 대한 것이었고 그리고 이를 통해 인간이 누구인지 들여다봅니다. 이것이 이 소설의 이야기입니다.    

    

(그림설명: 카를 블로흐, <풀려나는 프로메테우스>, 1864년)

메모) 그리스 신화 속 프로메테우스 / 그리스 신화 속에서 프로메테우스는 세상이 만들어지고 여러 동물들이 탄생할 무렵, 손재주가 좋아 진흙으로 인간을 만듭니다. 이것을 신기하게 생각한 아테네가 이 진흙으로 만든 인간에게 생명을 불어넣어 줍니다. 처음 인간은 자신을 지킬 아무런 무기도, 털이나 두꺼운 가죽도 없어 추위에 견디지도 못합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프로메테우스는 신들의 세계인 올림퍼스 산에서 불을 몰래 가져다 인간에게 줍니다. 그리고 불을 일으키는 법, 불씨를 지키는 법, 불을 사용하는 법, 글을 쓰고 셈을 하는 법, 별자리를 보는 법, 짐승을 길들이는 법 등을 가르쳐주고 병을 치료하는 약도 줍니다. 

신들만 쓸 수 있는 불을 훔친 것으로 제우스의 노여움을 산 프로메테우스는 붙잡혀 코카서스 산꼭대기에 있는 바위에 청동으로 만든 사슬로 묶이게 되고, 독수리가 날아와 그의 간을 쪼아 먹습니다. 독수리가 간을 쪼아 먹으면 간은 다시 생겨났고 프로메테우스는 3천 년간 계속해서 헤라클레스의 도움을 받기 전까지 간이 쪼이는 고통을 겪습니다. 




(그림설명: 인간 배아줄기세포)

죽음을 극복함으로 영원히 죽지 않으려는 시도는 인류 역사와 함께 있어 왔습니다. 오늘날 의학은 프로메테우스에게 받은 불처럼 신기하고 놀라운 일들을 인류에게 선물했습니다. 


아직 특정 세포로 분화되지 않아 어떤 세포나 조직으로도 만들어질 수 있는 세포에 대한 연구는 손상된 장기를 회복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주었지요. 

또 새로운 의료기기의 제작을 통한 정밀한 수술과 보다 이른 시기의 정확한 진단으로 생명 연장에 큰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죽지 않을 세상을 향한 미래시대의 시도들

미래학자들은 유전공학(genetic engineering)과 인간복제 기술을 통한 인공장기의 생산으로 심장, 콩팥, 폐, 간, 망막, 심지어 뇌까지도 인공장기로 대체할 수 있다고 전망합니다. 

(그림설명: 3D 바이오 프린팅 기계)

팔과 다리, 신체 각 부분을 교체하거나 병원에서 수술이 필요한 환자의 부목, 붕대, 임플란트, 나사 등을 제작할 때 개인의 신체 부위에 맞게 맞춤형 프린팅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3D 프린터의 바이오프린팅(Bioprinting) 기술 덕분입니다.


그 결과 개별 환자에게 맞는 인체 장기를 제작하고 부족한 장기이식 문제를 해결해 장기이식을 기다리다 사망하는 경우도 줄일 것으로 예상합니다. 

인간 장기는 물건을 프린트하는 것과 동일한 방식으로 3D 디지털 모델을 바탕으로 층층이 프린트해서 만듭니다. 


또 나노로봇은 몸속의 손상된 세포를 고치고 암세포는 즉시 없애며 DNA 복제 오류까지 복구할 것으로 예상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과 유전자 구성이 똑같은 아기나 사람을 만들어내는 복제 기술인 클로닝(cloning)을 통한 복제인간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양, 소, 원숭이와 같은 동물에서는 이미 성공했는데, 인간의 경우에도 성공했다는 발표가 있지만 의심스러우면서도 이미 기본 기술은 완성되어 있다고 합니다. 

인간에 의해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복제인간을 인간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 복제인간의 생명에 대한 주도권과 죽음에 대한 결정권은 누구에게 있는 것인지 여러 질문이 생깁니다.                              


불치의 병으로 알려진 질병을 고치는 획기적인 방안으로 유전자 이식이나 조작이 연구되지만, 이로 인해 불러일으킬 유전자 변이로 생겨날지도 모르는 예상치 못한 문제점이 우려됩니다. 

또 인간의 신체 일부를 프린팅 하는 데 따른 윤리적 쟁점, 건강을 지키는 것에 대한 의욕의 약화, 통제나 규제를 받지 않고 생산되는 인간 장기에 대한 불법적인 거래까지 여러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바이오 인공장기, 생명 연장의 열쇠인가?”- EBS 다큐 <과학 다큐 비욘드>

의학 기술을 사용하는 방식과 그 결과에 대한 윤리적 책임은 해결해야 할 과제입니다.     


솔직히 인간은 죽음에서 해방되어 아무도 죽지 않을 세상이나 새로운 생명을 만들어내지는 못합니다. 기껏해야 흉내 낼뿐이고, 앞으로도 그 가능성은 상상과 기대의 차원에 머물러 있는 정도입니다. 

이미 이룩한 것보다 해결해야 할 과제가 훨씬 더 많습니다. 


학자들이 지적하는 더욱 근본적인 문제는 이런 실험과 연구들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 예측 불가능하다는 점입니다. 이처럼 죽음과 생명의 문제에 있어서 인간은 아직 어린아이 수준에 머물러 있음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죽음이 삶에 전하는 의미

톨스토이 단편소설집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 실린 여러 이야기들 중의 하나인 <사람은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는 시골에서 가족과 행복하게 살던 파홈이라는 농부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어느 날, 마을의 여자 지주가 땅을 판다는 소문을 듣고 어렵게 마련한 돈으로 땅을 삽니다. 땅을 갖게 된 그는 무척 기뻤고 농사도 잘 되어 행복했지만, 곧 이웃과의 마찰로 인해 볼가 강 건너편으로 이사를 갑니다.

그곳에서 다섯 명의 가족이 들판의 땅 50데샤티나와 목장을 분배받아 가축도 기릅니다. 


하지만 더 많은 땅을 얻고 싶은 마음에 한 상인으로부터 바시키르족들이 땅을 엄청나게 싸게 팔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그곳으로 찾아가 촌장을 만납니다.


당신이 원하는 땅을 선택하라는 말에 파홈이 가격을 묻자, 촌장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이곳 가격은 항상 똑같소. 하루치에 천 루블이요. 당신이 하루 동안 돌아다닐 수 있을 만큼의 땅이 당신 것인데, 한 가지 조건은 해가 뜨면 출발해서 해가 질 때까지 출발 지점으로 돌아오지 못하면 당신은 돈만 날리는 것이오.”     


좋은 기회다 싶은 파홈은 해가 뜨자마자 서둘러 출발합니다. 그런데 욕심 때문에 너무 앞으로 전진만 하다가 그만 돌아가야 할 시간을 놓치고 말았습니다. 

그때는 이미 해가 저물고 있었습니다. 그는 죽을힘을 다해 달렸고, 마침내 출발 지점에 돌아왔습니다. 


촌장은 “음, 대단한 친구군. 많은 땅을 차지하셨구만!”이라고 했지만, 쓰러져 있던 파홈을 달려온 하인이 일으켜 세웠을 때 그의 입에서는 피가 철철 흘러나왔고, 결국 그는 목숨을 잃고 말았습니다.


바시키르 사람들은 혀를 차며 안타까워했고, 하인은 가래를 집어 들고 그가 들어갈 크기의 무덤을 팠습니다. 그리고 그를 묻었습니다. 

결국 머리에서 발끝까지 그가 묻힌 3아르신(약 2미터)의 공간이 그에게 필요한 땅의 전부였습니다.     




죽음은 먼 곳의 남의 이야기가 아님에도 우리는 죽음을 항상 멀리 있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대부분 잊고 살거나 무시하며 살아갑니다. 뭐 일부러 생각할 필요가 있나 싶어 합니다. 


죽음은 나와 관계없는 것으로 생각하려 합니다. 

죽음에 대한 이해는 시대마다 달라왔지만, 이런 죽음에 대한 인식 속에는 죽음은 모든 것의 끝이라는 두려움과 비생산적이고 쓸모없는 것이므로 철저히 거부해야 한다는 생각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특히 현대인은 소비를 통해 삶의 의미를 찾는데, 소비를 미덕으로 여기는 세상은 죽음을 잊게 하고 쾌락과 소비를 조장합니다. 

심지어 죽음까지도 상품으로 만들어 판매하거나 다양한 마케팅을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기도 합니다. 그런 면에서 오늘날 죽음은 삶과 완전히 분리되었습니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해 보면 죽음만큼 인간의 현실에 가까이 다가와 있는 것도 없습니다. 우리는 수많은 죽음의 소식을 접하며 살아가는데, 그것은 언제든지 나의 일이 될 수 있습니다. 

즉 우리의 삶과 떼려야 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죽음을 인식하고 인정하는 것이 삶에 미치는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영향을 케네스 베일(Kenneth Vail)은 ‘죽음 현저성(Mortality Salience)’으로 설명합니다.


즉 자신이 죽을 운명임을 일깨워 주는 것이 삶에 미치는 긍정적 측면으로 신체적 건강을 증진시키고, 인생의 목표에 대해 생각해 보도록 고무하며, 친사회적 행동의 동기를 부여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관계를 조성해주고 공동체 활동 참여를 고무시켜주며 환경에 대한 염려를 자극해 준다고, 그리고 집단 간의 평화 구축까지도 뒷받침하며 아이를 낳고 보살피려는 의지도 강해진다고 합니다. 

부와 명예 같은 외적 목표보다는 개인적 관계 같은 내재적 가치를 더 귀하게 여기도록 만듭니다.      


인간은 유일하게 자신의 죽음을 예견하고 두려워하는 존재입니다. 언젠가 죽는다는 두려움이 인간으로 하여금 삶의 의미를 추구하게 만들지요. 

그런데 그 두려움이 없어진다면 인간은 인간성을 상실하게 되고, 남는 건 욕망뿐입니다. 죽음이 사라진 무한한 삶에선 욕망도 무한해지고 갈등도 계속 일어날 것입니다. 


역설적으로 죽음은 삶을 유지하는 근본적인 요소입니다. 다시 말해 인간이 죽지 않으면 인류는 스스로 멸망하게 될 겁니다.

비록 누군가가 겪는 질병의 고통은 심각한 아픔이고, 죽지 않고 살고 싶은 것은 죽음을 앞둔 이와 그를 사랑하는 사람의 간절한 소망일지라도, 그것은 인간에게 허락된 삶은 아닙니다. 


이것은 아무도 죽지 않을 것을 상상하는 미래 세상에서도 마찬가지이지요. 

오히려 생명의 연한을 기억하고 주어진 삶의 시간을 잘 살아가는 것, 고통과 두려움에 피하고 싶은 질병과 죽음의 순간에서 삶의 의미와 가치를 발견하는 일들, 그리고 그 순간을 공동체와 함께 감당해나가는 세상, 그것이 우리가 만들어가야 할 세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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