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리산 문장대에 올랐다. 아내와 같이 올랐다. 애가 어렸을 땐 몰랐다. 떨어져 있는 사람이 나(我)인 줄 알았는데 삶의 터전의 거리감이란 혼자의 소유가 아닌 상호 동등한 느낌이란 것을! 과거 홀로 다녀온 곳을 이제 하나하나 같이 하면서 그동안 비워진 삶의 공간을 하나하나 메꾸려 한다.
작가는 낱말과 단어의 울퉁불퉁한 면을 고르게 하고, 산행의 속도와 행보를 골고루 분산시키는 작품을 '개'로 정했다. 많은 작품 중에 개가 선택된 이유는 작가만이 알 것이다. 과거와 닿지 않았던 것을 지금 알게 된 것처럼 작가가 '개'를 재출간 한 동기는 아마 세월일 것이다. 세월의 흐름은 날카로운 것을 싫어한다.
인간은 세월을 앞서갈 수도 이길 수도 없어서 그저 따라가며 순응하게 된다. 순리라는 것이다. 한때는 순리와 악습이 뒤죽박죽 얽혀 있어 작가의 군말처럼 글과 마음이 어수선하게 되어있음을 시간이 흐른 뒤에 알게 된다. 지금도 세월이 흐르고 있으니 항상 산술적인 순서의 모름(無知)과 앎(知) 또한 흐름 앞에 선명해지기 마련이다.
정갈하면서 모나지 않게 그러면서 뚜렷하고 명확한 글이란, 긴 여정 동안 작가는 쓰기를 반복하며, 독자는 읽기를 반복하는 공감대 선상에서 그렇게 하나씩 앞으로 나아가다 보면 '보리'라는 개를 통해 투영된 인간의 삶은 건조하면서도 은은하게 스미게 할 줄도, 스며들게 받아들일 줄도 알아야 하는 것을 알게 된다.
평등 공정 정의 이런 말은 '보리'의 눈에 비친 인간의 순리가 아닌듯하다. 개의 세계도 악돌이처럼 무법자가 있듯이 보리는 비켜나서 개의 순응에 부합하는 지혜를 가진 개다. 지금은 맞고 그땐 틀리다고 악을 쓰지도 않고 대들지도 않지만 물러나서 억울하게 지내지도 않는 개다. 결국 보리는 순응할 순리를 만들 줄 아는 개다.
문장대 바위능선에서 첩첩산중을 같이 바라보았다. 언젠가 바다를 같이 볼 땐 아내가 그랬다. 저 바다처럼 우리 마음이 더 넓었으면! 지금 보이는 산, 자꾸 헤매고 다니지 말고 그저 바라보고 내려갈 줄 아는 이치를 받아들일 줄 아는 넓은 마음이 이 산에서 느껴진다. 산과 바다! 자연은 인간보다 크고 넓고 관대하다.
하산하면서 머리가 파랗게 염색된 행락을 보았다. 눈에 거슬리는 것, 귀에 거슬리는 선동적인 구호, 눈과 귀가 거슬리면 이제 마음이 싫어진다. 옛날처럼 난장판 같은 다양함, 비상식적인 합리성, 억울한 포용력에 기대지 않고 이제 좀 멀어지고 싶다. 그 대신 자연스러움으로 그동안 채우지 못한 마음의 공간을 하나씩 채우며 살아가고 싶다.
다음 산행은 아내가 좀 덜 지칠 코스로 정해야겠다.
- 2021년 05월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