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낡은 옷을 향한 의리.-
해지고 낡아 너덜너덜한 옷이 있다.
입을 때마다
해진 구멍 사이로 손가락이 불쑥 나오고,
세월이 배어 묵직한 냄새를 풍기는
남루한 옷이다.
유행도, 계절도 모두 한참 지난
그 옷을 내가 아직도 입고 있다면—
그걸 상상할 수 있을까.
가끔은 다짐한다.
“기왕에 빨았으니 한 번만 더 입고 버리자.”
그러고는 말없이
비닐봉지에 담아
현관 옆에 조용히 내려둔다.
하지만 그 옷은 유독 자주,
다시 꺼내져
말없이 내 옷장 속
자리를 찾아간다.
그리고 또,
함께 산에 오르고
바닷가 모래를 뒹굴며
웃고, 울었다.
그 옷은
차가운 바닷바람을 막아주는 주머니였고,
갑작스러운 비에 우산이 되어주던 모자였다.
무엇보다,
너무 오래되어 낡고 얇아진 그 천은
내 피붓결처럼,
내 몸과 하나였다.
편하고 익숙해서만은 아니었다.
그 옷 안에는
견디며 살아낸 나날들이 스며 있었다.
추위를 함께 이기고,
밥을 먹고,
잠을 자고,
눈물을 훔치고,
웃음을 담아주던—
그런 시간이 있었다.
그 냄새, 풀린 옷감 속에는
10년의 내가 있다.
이건 절약도, 집착도 아니다.
분명한 건, 이건 ‘의리’다.
나는, 의리 있는 여자다.
하하. 진심이다.
이 옷과 언제까지 함께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언젠가 이별의 날이 오면
그 작별이 슬프지 않고
조용히, 아름답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