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술상과 술자리-
잠결에 들리는 희미한
초인종 소리.
선잠에서 깬 눈은
겨우 앞을 분간할 정도로
애써도 열리지 않은 상태였다.
다섯 살, 세 살.
이제 막 꿈속으로 들어간
아이들을 살피는 내 눈보다
부스스한 내 몸이 먼저 일어섰다.
현관문은
벽을 의지하고서야 열렸다.
문 밖에는 서있는 세 남자.
그 가운데
두 사람의 부축을 받으며,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남편이
그 중심에 있었다.
그 뒤로,
어색하게 서 있는 빨간 두 남자.
그들의 엉거주춤 서 있는 모습은
잠결에도
참, 어이없고 서글펐다.
식탁 위 된장찌개는
저녁을 기다리다 식어버렸고,
"아빠, 언제 와?"
아빠의 귀가를 기다리던
아이들도 막 잠든 참이었다.
늦는다는 말 한마디 없던 남편은
이미 취할 대로 취해 있었고,
오늘도 우리 네 식구의 집에서
3차 술자리를 이어갈 생각이었다.
사람을 술로 사귀던 남편은,
거의 매일같이 술에 취해 귀가했다.
더 큰 문제는,
그 술자리를 통째로
집으로 데려오는 일이었다.
타고나길
술을 못 마시는 체질인 탓에
남편의 술 취향을
도무지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해하려 애를 쓸수록,
상처는 더 커갔다.
그의 술자리는
퇴근 후의 또 다른 일거리였다.
술상을 차려야 했고
술자리가 끝날 때까지
난, 그 자리를 지키곤 했다.
아이들은 기다리다 지쳐갔고,
나는 실망과 분노로 지쳐갔다.
그렇게 반복되는 나를
더 이상 용서할 수 없었나 보다.
참고 또 참으며 넘겼던
많은 기억 속의 집안 풍경은
어느 날엔 술상과 남자들만 있었고,
어느 날엔 아이들 곁에서
웅크리고 잠든 내 모습으로 기억되었다.
그리고 맞은 아침의
거실 풍경은 더 참담했다.
통제 없는 술자리의 뒤끝은 가관이었고,
그 지저분한 흔적들은
아침 출근 시간의 나를 붙들었다.
오늘도,
그런 날 중 하나였을 뿐인데—
내 안의 인내는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았다.
세 남자가
미처 집 안으로 들어오기도 전,
예측되지 않았던 반사적인 행동이
지갑을 열었다.
**10만 원짜리 수표 한 장**
난, 그걸 남편에게 건넸다.
“밖에 나가시면 술집 많아요.
여긴, 당신 혼자 사는 집이 아니야.”
“아니, 이 사람이…!”
꼬인 혀로 소리치며 흥분하는 남편 뒤로,
두 남자는 연신 고개를 숙이며 물러났다.
남은 밤, 남은 시간.
체면을 구겼다고 여긴 남편과 나는
지난 못마땅함까지 들춰가며
밤새 싸웠다.
그날 이후,
남편의 동료들 사이에서 나는
‘나쁜 여자’가 되었다.
그리고,
내 거실에
더 이상 술상은 차려지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나쁜 여자로 다시 태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