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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숫대야와 함께
나이 들어가는 중입니다.

- 점에서 선으로, 선에서 면으로 온전한 '□'이 되는 날까지 -

by 두니

'냄비 하나,

수저 두 개만 있으면 되지 않아?.'


스물둘,

농담 같던 그 말이

현실이 되어버렸을 때,

나는 비로소 나이를 먹기 시작했다.


남편의 직장 사택에서 시작한 신혼살림.

부엌엔 석유풍로 하나,

양은 냄비와 수저 네 개,

둥근 양은 쟁반 하나.

그리고

어머니의 사촌이 선물해 준

스테인리스 세숫대야 하나,

그게 전부였다.


"양은 때워~~~“

골목을 누비던 수리공의 외침.

구멍 난 양은을 때워 다시 쓰던 시절,

이 세숫대야는

흔치 않은 고급 살림이었다.


어쩌면,

반짝이는 이 ‘스뎅’ 세숫대야는

내가 가진 것 중

꽤 값나가는 물건이자,

내 첫 살림의 중심이었다.


뭐가 그리도 급했던 걸까.

갓 스물을 넘긴 나이에

아버지의 눈물을 배웅 삼아

나는 이렇게,

어른이 되어가는 길목에서 들어섰다.

그리고 그 길에서

나는 기겁하고,

울고, 주저앉기를 반복했다.


압력솥에서 터져 나오는 김 소리,

석유풍로에서 일렁이던 검고 벌건 불꽃

이런 낯설고 뜨거운 것들이

내 부엌의 풍경이었다.


"으악!!"


나는 자주 놀라 부엌을 뛰쳐나왔고,

부엌 한켠에서 울음을 터뜨리곤 했다.


하지만, 빨래는 달랐다.

어머니 곁에서

물을 퍼 나르며 배운 몇 번의 기억 덕에

빨래는 그저 '하면 되는 일' 같았다.


그런데도 손에 익지 않는 일이었다.


빨래를 미는 내 손보다

빨래판이 먼저 밀려났다.


‘아, 어머니는

빨래를 한 손으로 꼭 눌러 잡고 했었지.’


이렇게 어설픈 동작 속에서

빨래는 겨우 마무리되는 듯싶었지만,

어린 색시의 손등에 진한 흔적을 남겼다.


그리고 며칠,

쓰라렸던 손등은

밤마다 밀려오는 외로움과

설움을 쏟아붓는 핑계가 되었다.


그 모습을 안쓰럽게 지켜보던 남편은

그날 이후 빨래를 도맡았고,

세탁기는 우리 집에 가장 먼저 들인

가전제품이 되었다.


아이들은 자라면서

세숫대야를

욕조로 쓰지 못할 만큼 커졌고,

내 살림살이도 그만큼 커졌다.


그렇게 내 삶 안에는

수없이 많은 살림 도구가

들어왔다 나갔다

하지만,

이 대야만은 묵묵히 내 곁에 지켰다.


온갖 허드렛일을 도맡으며

내 삶의 빈틈을 채워주던,

나와 함께 나이 들어가는

유일한 살림 도구.


지지직거리던 흑백 TV가

컬러 TV로 바뀌던 날,

새 아파트로 이사하던 날,

욕실 구석의 대야는

아무 말 없이 그 자리를 지켰다.

아마도,

나보다 더 기뻤을지도 모른다.


내 삶의 시간은 그렇게

점에서 선으로,

선에서 면으로 조금씩 확장되며,

온전한 '□'을 그려가는 과정이었다.


애써 그은 선이 늘 곧지는 않았다.

비뚤어진 만큼

그 선을 펴는데 많은 고단함이 따랐다.

하지만 나는,

그 가운데서 불만보다는

그걸 이겨내려는 의지를 키워갔다.


이제 예순을 넘긴 나이에도

내 삶은 여전히 완성되지 않은 'ㄷ'이다.


언제 채워질지 모를

그 마지막 선 하나.

부족한 듯 여유 있는 'ㄷ'의 빈자리.

그 마지막 선 하나를

나는 여전히 꿈으로 이어가고 있다.


낡은 세숫대야 하나.

내 시간의 거의 전부를 담아냈던 그것은,


언젠가

나의 삶에 마지막 선 하나가 이어져

온전한 '□'이 되는 날까지

나와 함께 나이 들어갈,


나의 가장 오래된 살림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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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