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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기가 아기를 낳았다.

- 44년전 오늘, 지금 막 애기가 아기를 낳았습니다-

by 두니

대학을 막 졸업하자마자,

'결혼'이란

단어의 무게를 생각할 틈도 없이

나는 결혼을 했다.

그리고

그해 바로 아기를 가졌다.


스무한 살.

첫 직장에서 막 근무를 시작한 시기였고,

이제 막 스무 살을 넘긴,

어린 엄마였다.


"에구, 애기가 아기를 가졌네."


처음 임신 소식을 들은 선배들은

우스갯소리로 철없는 엄마에게

따뜻한 염려를 보내셨다.


그 격려와 걱정 사이에서,

나를 바라보던 그 따뜻한 눈빛들은

미숙한 선택에 대한

조심스러운 걱정에 더 가까웠다.


예정일이 가까워지도록,

만삭의 몸으로

여기저기 뛰어다니는 나를 보며

누군가는

허겁지겁 뛰어와 나의 팔을 붙잡았다.


“아이고, 조심해야지!

이제 며칠 안 남았잖아!”

빠르고 된소리 섞인 그 목소리 안엔

핀잔보다 더 큰 사랑이 있었다.


녀석은 엄마와 함께 숨 쉬는

그 시간이 좋았나 보다.

예정일을 훌쩍 넘기고도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아가야, 여기 돈도 준비됐다~

어서 나와야지.”

지갑 속 지폐뭉치를 흔들며

장난처럼 아이를 부르던

선배의 너털웃음에도

녀석은 여전히,

조금 더 엄마의 품에 머물고 싶어 했다.


예정일을 2주나 지난 44년 전, 오늘

6월 11일.


오랜 가뭄 끝, 예보된 비 소식에

녀석은 나올 준비를 하고 있었다.

비 오는 날을 좋아하는 엄마처럼....


그리고 그날.

세상으로 오기로 한 그 날을

아이는 이미 정해 놓고 있었던 것 같다.


왠지 모르게 몸이 찌뿌둥했던 아침.

출근하기가 싫었다.

“아기가 나오려는 건 아닌데,

몸이 좀 안 좋아요.”

'아기가 나오려는 건 아니다.'를

강조해서 말하며 출근을 미뤘다,


늦은 아침,

오랜만의 여유를 만끽하고 있을 때였다.


아기가 엄마를 불렀다.

나지막하지만 작은 고갯짓으로


그리고

작디작은 두 주먹으로

엄마의 배를 꽉 움켜쥐었다 놓았다,

다시 움켜쥐었다 놓았다를 반복했다.


"엄마, 이제, 나갈 거야."


아이의 몸짓은 조용하지만 확실하게,

철없는 엄마를 자주 불렀다.


그리고 마침내,

기적처럼.

따뜻하고 촉촉한 새벽비가 내리던 날.

아이는 머뭇거림 없이

세상으로 와서 엄마의 품에 안겼다.


"응애~~~~응애~~!!"


아이의 첫 울음 소리.

엄마와의 연결이 끝나고

새로운 만남이 열린다는 신호였다.


"아들입니다."

간호사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이제 막 엄마가 된 애기는

손목에 찼던 고무줄부터 건냈다.


"이 고무줄,

울 아기 발목에 채워주세요."

그토록 기다리던 만남 속에서


어쩌면 엄마도, 분리의 두려움을

함께 삼키고 있었던 것 같다.


애기가 아기를 낳았다.


"밖에... 비 와요?"


비가 내리고 있었다.

오랜 가뭄 끝, 축복의 비였다.


44년 전 오늘,

비 오는 새벽.


한 아기가 또 한 아기를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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