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난 여전히 여자이고 내게도 난 여자다. -
50년대,
여자아이로 태어난다는 건
부모의 성씨를 이을 한
사내아이를 위한
기다림의 과정에서 받은
여분의 삶이었다.
60~70년대,
딸로 살아간다는 건
아들 뒤에서, 아들을 위해.
양보와 포기를 받아들이는 일이
미덕이었다.
‘여자가 감히~’
‘여자니까…’
라는 말을 '공부해라'라는
잔소리보다 더 자주 들었다.
80~90년대,
여자로 살아간다는 건
사회로부터의 끊임없는
차별과 편견 속에서
억울함을 삭이고 잘 견디는 일이
능력이었다.
‘여자가 어딜~~’
‘집구석에서나 ~~나 하지’
이 폭력적인 말과 함께 그들은
나여서 더 잘 해낼 수 있을
많은 일들을 가로막았다.
그래서였을까.
내 나이에는
'이십 대', '삼십 대'라는 나이가 없었다.
‘몇 살이냐’
라는 물음에 난 늘 거침없이
'40'이라고 대답을 했었다.
'마흔이에요.'
어쩌면 내 안에 숨었을
'젊음'에 대한 자신감도 있었겠지만,
그 보다 누군가에게 보일
'여자'가 싫었다.
정작, 마흔을 훌쩍 넘겨
50을 코앞에 둔 나이가 되었을 때도
나이 들어가는 내가 싫지 않았고
그때, 이미
내 나이는 환갑의 나이 예순이었다.
'예순이에요.'
'환갑의 나이에 무얼 하고 싶었던 걸까?'
특별한 무엇을 하고 싶다는
생각은 없었다.
그저 나이 예순을 넘겨
나를 '나'로 살게 하고 싶었다
내게 예순의 나이는
여자가 아닌
한 사람으로 살 수 있을 것 같은 나이였다.
사회적 역할이나
'여자'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온전히 나의 가치로 살 수 있는
내가 정한 나이 '예순'.
이렇게 내 나이는
시간을 앞서 훌쩍훌쩍 건너뛰어 달렸다.
그러나—
나이 예순을 훌쩍 넘긴 지금,
나는 여전히 여자다.
나를 바라보는 시선은 여전히
‘여자가…’라는 프레임 뒤에 있고
나는 바라지도 않은
여러 개의 색깔로 덧입혀졌다.
'위험한데....,
무섭지 않으냐.... 극성이다.'라는
그들의 억지 염려에 대한 감사를 강요받거나
절대 이루어지지 않을 포기를 종용당한다.
하지만,
여자로 살아온 지난 시간은
여자이기에 할 수 있었던 일들이었고,
여자이기에 품을 수 있었던 마음이었다.
나는
낯선 두려움 앞에서
포기하지 않고 이겨내는 겁 없는 여자였다.
지금,
난 여전히 여자이고 내게도 난 여자다.
그리고 난 여자인 내가 좋다.
나이 예순에,
나는 비로소 여자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