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그대 곁에 있어서 나의 사랑이 바뀌던 날 -
“나, 지난번에 준 음악,
벌써 다 외웠는데…
좋은 거, 또 없어?”
“트로트는 없는대요?”
뜬금없이, 염치없이
음악을 졸라대는 나에게
아들 또래의 후배가
웃음 반, 농담 반으로 말한다.
내 나이가…
벌써 그런 나이인가 보다.
쎄시봉이
지금의 BTS만큼 뜨겁던 시절,
기타 반주에 온 마음을 기대던
그때의 나를 떠올리면
그의 반응이 이상할 것도 없다.
나는 괜히
입을 삐죽이며 토라진 척 말한다.
“너무 무시하는 거 아냐?”
두어 달 전,
그가 ‘요즘 음악’이라며
건넨 플레이리스트는
달리는 차 안,
나만의 작은 우주를
가볍고 조용하게 채워주었다.
나는 원래
가사가 있는 음악을 잘 듣지 않는다.
피아노,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각자의 음색이 뿜어내는
맑고 겹겹인 선율 속에
그저 마음을 맡기는 시간이
나에겐 가장 짜릿하고
고요한 기쁨이었다.
가사는 늘 너무 빠르게 다가왔다.
그 섬세한 음의 자리에
먼지처럼 섞여 들어와
순결한 울림을 흐리곤 했다.
그래서 나는,
조심스레 피했다.
그뿐이었다.
그런데…
그 음악은 자꾸만
조용히, 오래도록
내 시간, 내 공간 안으로 파고들었다.
내 마음에 남긴 음악의 흔적은
어느 날엔 이유 모를 눈물로
흘려내리기도 했다.
왜 그랬을까.
태연의 〈All With You〉.
“내가 그대 곁에 있어서…
행복합니다.
내가 그대 곁에 있어서…
꿈을 꿉니다.
내가 그대 곁에 있어서…
웃을 수 있습니다.”
고백이라기엔 놀라울 만큼
담담하고, 단정했다.
이토록 단순하고,
이토록 주도적인 사랑의 말이 또 있을까.
나는,
그대가 내 곁에 있어서
행복한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이 노래는 말한다.
‘내가 그대 곁에 있어서’ 행복하다고.
그대가 어떤 모습이든,
그대가 변했든,
어떤 조건도 없이—
그저 곁에 있는 것만으로
나는 꿈을 꾸고, 웃고, 행복하다고.
이 사랑에는 조건이 없다.
이 고백에는 계산이 없다.
그대가 병들었든,
가난하든,
변했든, 달라졌든.
삶이 엉망이 되었든—
그 무엇도 중요하지 않다.
나는 여전히,
그대 곁에 있고 싶고,
그래서 나는 여전히 행복하다고.
그리고,
그대가 내 사람이기를
조용히, 그러나 깊이
기도한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내게 오지 못하는 그대를 향해
마음을 다해 손을 내민다.
이 노래는
내 안의 사랑을 다시 들여다보게 했다.
나의 늘,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상대에게 무언가를 기대했고,
늘 어떤 모양이기를 바랐으며,
내 감정을 지키려고 애썼다.
그래서 어쩌면,
내 사랑은 언제나
이기적이고 초라했다.
이 고백 앞에서,
나는 내 사랑이 부끄러웠다.
그리고 처음으로…
다른 사랑이 느껴졌다.
이 노래는
내 안에 새로운 사랑을 일깨웠다.
“내 맘이 보여서
내 진심이 느껴진다면…
내게 오는 길 찾는다면…
나의 모든 마음 주고 싶어
나의 곁에 그대 영원토록 있는다면…
마지막 사랑을 그댈 위해 쓰고 싶은데
마지막 운명이 그대라면 행복할 텐데…”
태연의 〈All With You〉—
이 노래는
그저 노래 하나가 아니었다.
어떤 날은
하늘이 유난히 푸르러서,
그리고 어떤 날은
땅 아래로 하늘이 무겁게 내려앉아서,
종일 비가 내려
창밖 풍경이 흐려질 때도,
바람에 꽃잎이 흩날려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차올랐던 날도,
별이 쏟아질 듯 반짝이던 밤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유난히 어두웠던 밤에도
그 노랫말과
그 리듬은
내 마음 구석구석에
조용한 흔적을 남겼다.
그저, 그뿐이었다.
그런 줄만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