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야, 거기 말고 맨 뒤야

by 지나

새로 오픈한 한정 굿즈 팝업스토어에 갔다.

출근 전, 새벽같이 일어나 준비하고,

대충 머리 질끈 묶고 나와 줄을 섰다.

줄이 길어지기 전에 도착하고 싶어서였다.


오전 8시 50분.

개점은 11시.

겨울바람이 귓등을 때렸다.

모두들 조용히 핸드폰을 들여다보거나,

뜨거운 커피로 손을 녹이며

서로의 존재를 조용히 존중한 채 줄을 지키고 있었다.


“선착순 100명”

“1인 1개 한정”

“현장 수령만 가능”


이건 단순한 기다림이 아니라

한정된 기회를 위한 묵묵한 투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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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2시간이 넘게 흘렀다.

뻐근한 다리를 주무르며

“그래도 30명 안에 들어왔으니 살 수는 있겠지”

하고 안도하고 있던 그 순간이었다.


앞에 서 있던 여자가 고개를 돌리며 손을 흔들었다.


“얘, 여기야~ 여기!”


그리고 두 명이 씩씩하게 걸어와

그 여자의 앞자리에

아무렇지 않게, 당연하다는 듯 섰다.

누가 봐도 처음부터 줄을 선 사람들은 아니었다.


나는 그 장면을 멍하게 바라봤다.

그 사람들은 커피를 손에 들고 있었고,

겨우 막 도착한 듯

웃으며 이야기하고 있었다.


"이거 살 수 있겠지?"

"아휴, 너 덕분에 줄 안 서도 되고 좋다~"


순간,

가슴 속에서

‘툭’ 하는 소리가 났다.


나는

2시간 반을 추위에 떨며 서 있었고,

나보다 한참 늦게 온 사람들이

내 앞에 서 있다는 사실 하나에

갑자기 나의 기다림이

초라해진 기분이 들었다.


뒤에 서 있는 사람들과 눈이 마주쳤다.

그들도 알 것이다.

지금 방금, 줄이 어그러졌다는 것.

누군가는 그 굿즈를 못 얻게 될 수도 있다는 것.


가만히 서 있는 게

더 이상 의미 없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그런데 문제는

그들이 미안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얘 친구예요. 같이 왔는데 잠깐 주차 좀 하느라~"

"원래 같이 올 생각이었는데 얘가 늦게 일어났어~"

"같이 살 거니까 하나만 살게요~"


같이 산다는 게 무슨 면죄부인가?

늦게 온 게 왜 자랑처럼 말해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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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한정 굿즈는

정확히 100명에게만 주어지는 권리였다.

나는 100명 안에 있었다.

하지만

그들 셋이 앞에 들어온 순간,

내가 101번째가 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생겼다.


줄이란 무엇일까.

단순한 물리적 순서가 아니다.

서로의 시간을 나란히 놓는 행위다.

한정된 것을 향한

평등한 진입 시도다.


누구 하나라도

그 줄을 비껴서 들어오면

줄의 의미는 사라진다.

“나는 기다렸지만, 기다린 사람은 아니게 된다.”


나는 이해하려 했다.

정말 사정이 있었을 수도 있다.

정말 일찍 왔는데 돌아갔다 왔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면

그 사정을 왜 남이 대신 감당해야 하나.


줄 앞에 끼워지는 순간,

뒤에 있는 누군가의 기회는 빠르게 밀려난다.

누군가의 기다림은 무력해진다.


그리고

그 모든 걸

별일 아니라는 듯 웃으며 넘기는 사람들을 보면


나는 결국,

이해하려 했으나 실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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