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
지하 주차장에 들어서면 하루의 마지막 관문이 기다리고 있다.
바로 ‘주차 자리 찾기’라는 작고도 피곤한 싸움이다.
아파트 지하 주차장은
공간이 넉넉하지 않다.
그래서 더 조심스럽게,
더 배려하며 주차해야 한다는 걸
대부분의 주민들은 알고 있다.
하지만 늘 예외는 있다.
어느 날, 빈 자리를 발견하고 다가갔다.
반가운 마음에 핸들을 돌리려는 순간
그 자리는 반쯤 차지된 상태였다.
검은 SUV가
두 칸 사이에 비스듬하게 들어와 있었다.
딱히 급해 보이지도 않는,
딱 봐도 여유롭게 주차한 흔적.
그 차만 없었다면
두 대가 편하게 나란히 설 수 있는 공간이었다.
처음엔 실수겠거니 했다.
그런데 비슷한 일이 반복되다 보니
그건 실수가 아니라 습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넓게 쓸 자격이 있다’는 태도.
그날 저녁엔,
운 좋게 빈 칸을 찾았고
차를 밀어 넣었다.
내릴 준비를 하려는데,
바로 옆 차가 내 쪽으로 딱 바싹 붙어 있었다.
도어라인이 거의 맞닿을 듯했고
문을 열면
스크래치가 날 수도 있을 만큼 가까웠다.
그 사람은 본인의 문은 넉넉하게 열 수 있도록 주차해 놓고,
내 쪽은 아예 벽처럼 막아놨다.
결국 나는
다른 문으로 넘어가거나
가방을 문틈에 끼우며
몸을 구겨 나와야 했다.
이쯤 되면 궁금해진다.
“주차선은 왜 있는 걸까?”
주차선은 단지 차량의 방향을 안내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배려를 위한 약속선이다.
같이 사는 공간,
같이 주차하는 자리에서
그 선을 무시한다는 건
곧 타인을 무시하는 태도나 다름없다.
두 칸을 넉넉히 쓰든,
내릴 수 없는 틈을 남겨두든,
그들에게 중요한 건
편리함이지 공존이 아니다.
물론 주차가 어렵다.
특히 좁은 공간에 맞추다 보면
한 번에 들어가기 어려울 때도 있다.
하지만 그럴 땐
다시 한 번 시도하거나,
다른 칸을 찾는 게
기본적인 예의이자 매너다.
아파트는
‘내 집’이기도 하지만
‘누군가의 집과 함께 있는 공동체’이기도 하다.
주차장은 그 공동체의 작은 시험대다.
그래서
그 날도 나는 조심스럽게 차를 뺐다.
다음 사람에게 민폐가 되지 않게
거울로 몇 번을 확인하고
다시 후진하고, 다시 정렬하고.
그렇게 주차를 끝낸 뒤,
여전히 넓게 누워 있는 두 칸짜리 차량과
내 쪽만 막아둔 한쪽 주차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나는 이해하려 했다.
“몰라서 그럴 수도 있지.”
“운전 초보일 수도 있고.”
“잠깐이면 괜찮겠지 생각했겠지.”
그런데 그 태도가 반복되고,
너무 자연스럽게 보이고,
심지어 미안함도 없어 보일 때마다
나는 결국,
이해하려 했으나 실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