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 속에서도 다시 자신을 일으켜 세우는 내면의 빛
<서시>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에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 윤동주
가끔은 이유 없이 마음이 무너질 때가 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도,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린 것처럼 느껴지는 날이 있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가 오래된 상처를 건드리고,
하루 종일 아무 일도 하기 싫어지는 그런 날들.
그럴 때 우리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왜 이렇게 약할까.”
그 질문이 반복될수록 마음은 더 깊은 어둠 속으로 가라앉는다.
하지만 회복이란 늘 그 어둠 속에서 시작된다.
빛이 닿지 않는 곳에서조차
아주 미세하게 꿈틀대는 생명의 감정이 있다.
그건 누구의 위로나 조언이 아니라,
스스로를 향한 가장 작은 다정이다.
“괜찮아, 아직 괜찮지 않아도 괜찮아.”
이 한 문장을 스스로에게 건네는 순간,
감정은 아주 천천히 제 온도를 되찾기 시작한다.
윤동주의 〈서시〉를 떠올리면 늘 마음 한구석이 조용히 흔들린다.
그의 시는 강하지 않다. 오히려 한없이 약하고, 부드럽고, 인간적이다.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이 구절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건,
감정이 예민하다는 것이 결코 나약함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세상에 무뎌지지 않고, 여전히 괴로워할 수 있다는 건
내가 아직 살아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회복은 결국 느림의 언어다.
시간이 지나면 잊을 거라 믿지만,
사실 우리는 잊지 못한 채 조금씩 달라진다.
그 변화는 눈에 띄지 않는다.
단지 마음의 결이 바뀌고,
다시는 울지 않을 거라 다짐했던 자리에
조용히 눈물이 고일 뿐이다.
그건 다시 감정을 느낄 수 있게 되었다는 신호다.
윤동주의 시에는 늘 ‘부끄러움’이 등장한다.
그는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바랐지만,
동시에 그 부끄러움을 피하지 않았다.
그건 자신을 비난하는 감정이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지키려는 내면의 약속이었다.
감정이 회복된다는 건 바로 이런 일이다.
자신의 상처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그 상처 속에서 여전히 인간다움을 발견하는 일.
삶은 언제나 균열을 품고 있다.
사랑도, 믿음도, 관계도 완벽하지 않다.
때로는 무너지고, 때로는 엉켜버린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 속에서도
여전히 누군가를 향해 마음을 내미는 일이다.
상처가 남아 있어도,
그 상처가 곧 나의 이야기이자 나의 온기임을 인정하는 일.
그것이 진짜 회복이다.
감정이 회복되는 순간은 화려하지 않다.
그건 조용한 밤, 아무도 보지 않는 자리에서 일어난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들키지 않으려 애쓰던 눈물,
그 속에서 마음은 조금씩 다시 태어난다.
눈물이 흐르는 동안,
사람은 비로소 자신을 용서한다.
용서는 회복의 또 다른 이름이다.
윤동주의 시는 그런 용서의 언어다.
그는 세상이 자신을 짓누르던 시절에도
별을 노래하겠다고 다짐했다.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 다짐은 세상에 대한 희망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향한 약속이었다.
감정이 회복된다는 건 바로 그 약속을 기억하는 일이다.
삶이 무너져도 여전히 사랑하겠다는 의지.
절망 속에서도 내 안의 빛을 놓지 않겠다는 마음.
회복은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의 말로 완성되지 않는다.
그건 내 안에서 다시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다.
그 목소리가 말한다.
“아직 끝난 게 아니야. 너는 여전히 살아 있어.”
그 말을 듣는 순간,
우리는 다시 한 발 내딛는다.
어쩌면 윤동주의 ‘빛의 윤리’란
바로 이런 삶의 태도일지도 모른다.
빛은 어둠을 없애지 않는다.
그저 그 어둠 속에서 방향을 알려줄 뿐이다.
그는 세상을 향해 빛을 증명하려 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이 꺼지지 않기를 바랐다.
감정이 회복된다는 건 바로 그처럼
완벽하지 않아도 계속 살아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삶은 늘 우리를 시험한다.
사랑은 우리를 흔들고,
시간은 모든 걸 앗아간다.
그러나 마음이 완전히 닫히지 않는 한,
회복은 늘 우리 안 어딘가에서 자라고 있다.
그건 잊힌 꽃의 씨앗처럼,
때가 되면 다시 피어난다.
밤하늘의 별을 본다.
바람이 잎새를 흔들고,
어둠이 세상을 덮어도 별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 빛이 말한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그 문장은 단순한 시의 마지막이 아니라,
삶이 계속된다는 조용한 선언이다.
감정이 회복되는 순간은 그렇게 찾아온다.
아무도 모르게, 아주 천천히,
하지만 분명히 내 안에서.
윤동주의 별처럼,
한 줄기 빛이 다시 마음을 비춘다.
그때 우리는 안다.
절망 속에서도 인간은 끝내 다시 일어선다는 것을.
그 믿음 하나로 오늘을 버티고,
내일을 향해 또 한 걸음 나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