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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이 회복되는 순간

절망 속에서도 다시 자신을 일으켜 세우는 내면의 빛

by 지나
ChatGPT Image 2025년 11월 2일 오후 04_26_12.png


<서시>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에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 윤동주


가끔은 이유 없이 마음이 무너질 때가 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도,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린 것처럼 느껴지는 날이 있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가 오래된 상처를 건드리고,

하루 종일 아무 일도 하기 싫어지는 그런 날들.

그럴 때 우리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왜 이렇게 약할까.”

그 질문이 반복될수록 마음은 더 깊은 어둠 속으로 가라앉는다.


하지만 회복이란 늘 그 어둠 속에서 시작된다.

빛이 닿지 않는 곳에서조차

아주 미세하게 꿈틀대는 생명의 감정이 있다.

그건 누구의 위로나 조언이 아니라,

스스로를 향한 가장 작은 다정이다.

“괜찮아, 아직 괜찮지 않아도 괜찮아.”

이 한 문장을 스스로에게 건네는 순간,

감정은 아주 천천히 제 온도를 되찾기 시작한다.


윤동주의 〈서시〉를 떠올리면 늘 마음 한구석이 조용히 흔들린다.

그의 시는 강하지 않다. 오히려 한없이 약하고, 부드럽고, 인간적이다.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이 구절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건,

감정이 예민하다는 것이 결코 나약함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세상에 무뎌지지 않고, 여전히 괴로워할 수 있다는 건

내가 아직 살아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회복은 결국 느림의 언어다.

시간이 지나면 잊을 거라 믿지만,

사실 우리는 잊지 못한 채 조금씩 달라진다.

그 변화는 눈에 띄지 않는다.

단지 마음의 결이 바뀌고,

다시는 울지 않을 거라 다짐했던 자리에

조용히 눈물이 고일 뿐이다.

그건 다시 감정을 느낄 수 있게 되었다는 신호다.


윤동주의 시에는 늘 ‘부끄러움’이 등장한다.

그는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바랐지만,

동시에 그 부끄러움을 피하지 않았다.

그건 자신을 비난하는 감정이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지키려는 내면의 약속이었다.

감정이 회복된다는 건 바로 이런 일이다.

자신의 상처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그 상처 속에서 여전히 인간다움을 발견하는 일.


삶은 언제나 균열을 품고 있다.

사랑도, 믿음도, 관계도 완벽하지 않다.

때로는 무너지고, 때로는 엉켜버린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 속에서도

여전히 누군가를 향해 마음을 내미는 일이다.

상처가 남아 있어도,

그 상처가 곧 나의 이야기이자 나의 온기임을 인정하는 일.

그것이 진짜 회복이다.


감정이 회복되는 순간은 화려하지 않다.

그건 조용한 밤, 아무도 보지 않는 자리에서 일어난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들키지 않으려 애쓰던 눈물,

그 속에서 마음은 조금씩 다시 태어난다.

눈물이 흐르는 동안,

사람은 비로소 자신을 용서한다.

용서는 회복의 또 다른 이름이다.


윤동주의 시는 그런 용서의 언어다.

그는 세상이 자신을 짓누르던 시절에도

별을 노래하겠다고 다짐했다.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 다짐은 세상에 대한 희망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향한 약속이었다.

감정이 회복된다는 건 바로 그 약속을 기억하는 일이다.

삶이 무너져도 여전히 사랑하겠다는 의지.

절망 속에서도 내 안의 빛을 놓지 않겠다는 마음.


회복은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의 말로 완성되지 않는다.

그건 내 안에서 다시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다.

그 목소리가 말한다.

“아직 끝난 게 아니야. 너는 여전히 살아 있어.”

그 말을 듣는 순간,

우리는 다시 한 발 내딛는다.


어쩌면 윤동주의 ‘빛의 윤리’란

바로 이런 삶의 태도일지도 모른다.

빛은 어둠을 없애지 않는다.

그저 그 어둠 속에서 방향을 알려줄 뿐이다.

그는 세상을 향해 빛을 증명하려 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이 꺼지지 않기를 바랐다.

감정이 회복된다는 건 바로 그처럼

완벽하지 않아도 계속 살아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삶은 늘 우리를 시험한다.

사랑은 우리를 흔들고,

시간은 모든 걸 앗아간다.

그러나 마음이 완전히 닫히지 않는 한,

회복은 늘 우리 안 어딘가에서 자라고 있다.

그건 잊힌 꽃의 씨앗처럼,

때가 되면 다시 피어난다.


밤하늘의 별을 본다.

바람이 잎새를 흔들고,

어둠이 세상을 덮어도 별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 빛이 말한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그 문장은 단순한 시의 마지막이 아니라,

삶이 계속된다는 조용한 선언이다.


감정이 회복되는 순간은 그렇게 찾아온다.

아무도 모르게, 아주 천천히,

하지만 분명히 내 안에서.

윤동주의 별처럼,

한 줄기 빛이 다시 마음을 비춘다.

그때 우리는 안다.

절망 속에서도 인간은 끝내 다시 일어선다는 것을.

그 믿음 하나로 오늘을 버티고,

내일을 향해 또 한 걸음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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