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관식이 이야기
최근에 넷플릭스 원작 드라마 <폭삭 속았수다>를 보았다. 그 속에 등장하는 관식이라는 캐릭터는 한결같다. 어릴 때부터 애순이만을 바라보며 항상 껌딱지처럼 붙어 있고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애순이조차도 모를 만큼 깊고 변함없는 사랑을 주는 관식이는 인생의 모든 순간이 애순이었다. 몸의 모든 감각 기관이 애순이를 향해 있는 관식이는 누가 뭐라 해도 사랑 그 자체였다. 처음에는 그 모습이 답답해 보이기도 하고, 심지어 바보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싫어하는 것 같은데도 속도 없이 본인이 할 수 있는 일 이상을 애순이를 위해 한다. 이런 사람이 과연 현실 속에 있을까?
관식이를 보며 문득 나의 결혼 생활을 떠올렸다. 나는 결혼한 지 20년이 갓 지났다. 일찍 결혼한 편이 아니라서 어느덧 50이 넘은 중년의 아줌마다. 어제 온라인 쇼핑몰을 보다가 후기 글에서 '50대 이상의 노인들에겐 힘들 수도 있겠어요.'라는 말을 보고 깜짝 놀랐다. 내가 아직 그렇게 늙었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거울을 들여다보니 아직 잔주름은 거의 없지만, 눈 아래 움푹 패인 그늘과 광대뼈 덕에 더 도드라지는 팔자 주름이 입가의 불독살이 눈에 거슬렸다. 그렇다. 나는 늙어가고 있었다. 흰 머리가 늘어나 염색하기 시작했다는 사실도 떠올랐다. 왜 나는 내가 늙었다는 생각을 못 하고 살았을까? 아직 젊은 감각을 유지하고 있다고 생각해서? 거짓은 아니지만 그게 전부는 아닐 터였다. 가장 큰 이유는 내 옆에서 나를 항상 바라봐 주는 남편이 있기 때문이었다.
관식이처럼 어린 시절 만난 것은 아니었지만, 우리는 20대 중반에 만나 50대가 넘은 지금까지 항상 함께하고 있다. 연애 시절에는 (나는 가끔은 혼자 있고 싶기도 했고 지겹다고 느끼기도 했지만) 정말 사정이 있지 않으면 매일 만났다. 내가 집에 쉬고 있으면 서울에서 경기도인 우리 집까지 늘 찾아왔다. 나와 약속이 없어도 내가 사는 아파트, 우리 동의 뒤에 주차를 하고 내가 연락이 될 때까지 기다렸다. 그 시간을 짜증 한 번 없이 나를 기다렸다. 그리고 나를 보면 함박웃음을 지으며 두 손을 위로 흔들어 보였다. 그게 다였다. 서울에서 만나면 아무리 늦더라도 버스를 타고 돌아가는 나를 같은 버스를 타고 한 시간을 데려다주고 서울로 돌아갔다.
'이 사람은 질리지도 않나?'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었다. 오랜 시간을 만나다 보니 만나면 할 게 없을 때도 많았는데 그 시간을 지루해하지도 않았다. '뭐 이런 사람이 다 있을까?' 나는 그동안 만났던 남자들과는 다른 이 사람을 보며 신기했다. 그리고 비혼주의자였던 내가 '결혼을 한다면 이 사람이랑 해야겠다.'라는 생각에까지 이르렀다.
보통 남자들은 잡은 고기엔 신경 쓰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이 사람은 잡은 고기인 나를 애지중지한다. 결혼 생활 20년이 넘는 동안 나의 삐뚤어진 성격을 다 받아주었다. 음식을 잘하지 않는 나조차도 뭘 해 줘도 맛있다고 잘 먹는다. 내가 뭘 하든 잘한다고 칭찬하고 응원한다. 슬퍼하면 같이 슬퍼하고, 화를 내면 같이 화를 내준다. 내가 잘못하는 줄 아는데도 억지 부리고 짜증 내도 다 받아주고 오히려 미안하다고 말한다. 억울한 걸 제일 싫어하는 걸 아는데 나에게만은 예외였다. 이 사람의 한결같은 사랑은 나를 좋은 길로 이끌어준다. 내가 좀 더 잘 살고 싶게 하고, 내가 좀 더 잘하고 싶게 한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모른다. 그가 얼마나 내게 많은 것을 주었는지. 나를 얼마나 성장시켰는지. 나를 얼마나 좋은 쪽으로 바뀌게 해 주었는지. 물론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지만. 그는 내게 늘 더 잘해 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하고 더 많은 걸 못 해준 걸 미안해한다. 그러나 나는 명품에 관심도 없고 억대 연봉의 다른 남편에 관심도 없다. 이 사람은 분명 지금보다 내일이, 내일보다 1년 후, 10년 후 그리고 그 이후가 더 잘될 사람이라는 걸 나는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건 앞으로 남은 인생을 함께 행복하고 건강하게 살아가는 것. 그러기 위해서는 무조건 건강해야 한다는 것뿐이다. 나의 관식이가 내게 베풀어준 것을 이제부터는 내가 나눌 거니까. 욱하는 성격, 모난 성격, 삐뚤어진 성격, 까칠하고 예민한 성격인 거 나도 잘 알지만, 당신 덕분에 둥글어지고 있으니까. 이런 성격을 좋게 이용하고 있으니까. 나는 다른 남편들이 하나도 부럽지 않다. 그러니 당신과 내가 오래 함께 하기를 바랄 뿐이라고 말하고 싶다. 다시 태어나도 나는 당신과 함께할 거라고.
이번 연재를 통해 나의 관식이를 더 깊이 이해하고, 나 역시 그 사랑을 어떻게 돌려주어야 할지 고민해 보려고 한다. 당신이 얼마나 내게 많은 것을 해 주었고 지금도 그러고 있는지 자랑도 할 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