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은 놓지 말자
나는 이민 1세대. 우리 아이들은 어릴 때 이곳으로 왔으니 1.5세와 2세 사이쯤? 1.75세대라고 해볼까?
엄마인 나는 피 한 방울까지 완연한 한국 사람으로 한국 문화 속에서 자랐다. 그리고 우리 아이들은 한국문화에 익숙한 부모와 함께 살고 있는 키위 문화 속의 아이들이다.
4세까지는 한국어(모국어)를 사용했고, 한글을 배웠고, 한국의 동요를 배웠다. 5살이 되어 학교에 입학하면서는 하루의 반 이상 영어를 사용하고, 알파벳을 배우고, 이곳의 노래를 배운다. 아이들이 조금 크자 공통적으로 나에게 한 질문이 있다.
우리는 뉴질랜드에 살고 있는데 왜 한글을 배워야 돼요?
"우리는 한국 사람이니까 당연히 한국어를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읽고 쓸 줄도 알아야 되는 거야."라고 짧게 대답했다. 아이들이 나에게 이런 질문을 할 거라곤 한 번도 생각을 안 해봤다. 당황스럽기보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깊은 질문이었다.
생각해 보면 틀린 말도 아니다. 이곳에서는 한국어를 사용하는 사람이 적고, 한글은 더더욱 보기 힘든 곳이니 굳이 배워야 하나 의심이 들 수도 있다. 주변에는 중국어를 못하는 중국인도 많고, 한국인이지만 한국어를 사용하지 않고 영어만 사용하며 살아가는 사람도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왜 한글 책을 읽고, 배워야 하지?'
내가 외국에 살면서도 아이들에게 한글을 가르치는 이유는 어느 곳에 살고 있던 한국인으로서 정체성과 자긍심을 가지고 사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가 태어나면서 국적 선택의 자유는 없지만, 한 국가의 구성원으로서 문화와 역사를 배우고, 뿌리를 이어나가며 사회적 연대감을 형성할 수 있다. 아이들이 조금 더 커서 한국인과 키위 사이의 정체성 혼란이 오더라도 조금 덜 흔들리고 중심을 잃지 않을 수 있는 힘을 심어주고 싶은 것이다.
누군가는 한글을 배우고 연습하는 것이 조부모님과 대화를 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대답하고, 누군가는 부모로 인해 한 가지 언어를 더 쉽게 배울 수 있으니 매리트 있다고도 답한다. 모두 맞다. 다양한 이유로 한글은 배워야 된다고 생각한다.
재미있게도 아이들이 찾아낸 한글의 장점도 있다. 아이들은 영어와 한글을 섞어 사용하기도 하는데 본인의 생을 정확하게 표현하기 어려운 말은 꼭 한국어로 표현하려고 한다. 한글에는 영어에서 찾을 수 없는 의성어, 의태어를 포함한 수 백 가지의 다양한 형용사가 있다는 사실을 직접 느꼈기 때문이다. 책에서 나오는 어휘들, 어릴 적 가지고 놀던 감정카드, 말할 때 엄마가 바꿔주는 단어들로 풍부한 표현법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우리는 여전히 저녁마다 한글책을 소리 내어 읽는다. 그리고 패드를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한국에 있는 가족들과 메신저를 연결해 줬다. 이제 '쓰기' 연습이 시작된 것이다. 아직 맞춤법이 서툴지만 하나씩 연습해 나가고 있다.
자연스럽게 한글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고, 생각을 공유할 수 있을 때까지 우리의 한글 책 읽기는 계속될 것이다.
"한글은 왜 이렇게 어려워요?"라고 말하지만, 나는 되묻고 싶다. "영어는 왜 이렇게 복잡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