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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육십사 메가헤르츠 Apr 13. 2024

105마리의 트롤

트롤과 함께 산다는 상상


S#1. 주인공 소개


나는 AI로 살아있을 법한 존재들을 그려내고, 그것을 만들어내는 기획 총괄 감독으로 일하고 있다. ‘리얼리티 프로’를 이용해 일을 하며, 시간과 장소는 중요하지 않다.

트롤이 만들어진 곳이 하와이 와이키키 해변이라면 더 할 설명이 있을까?


S#2. 트롤 등장


파스텔 색상의 스킨 컬러와 탱글거리는 곱슬머리의 105마리 존재들. 그들은 내가 AI로 만들어낸 트롤들로 지금까지 나와 함께 살고 있다.


그들은 부지런하고, 총명하다. 게으름 부리는 법 없이 항상 일을 찾아서 한다. 내가 만들어낸 작품들 중 가운데 가장 잘 만든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왜 100마리도 아니고, 105마리이냐고? 한 번에 5마리씩 제작되는데 100마리 목표 중 실수로 버튼을 한번 더 눌러 105마리가 된 것이다.

뭐, 상관없지.


S#3. 주말 일상상상/ 토요일


오늘 새벽 발리에 도착해 낮잠을 푹 자고 일어났다. 보통 몇 시간 안자지만 가끔 푹 자고 일어난 날이면 기분이 좋고, 상쾌하다. 이불 밖의 기온은 살짝 차갑지만 가운을 걸치고 1층으로 내려간다.


1층에는 트롤들의 아침준비가 한창이다. 4마리의 트롤이 식빵의 가장자리를 들어 올려 토스터기에 넣고, 6마리의 트롤이 지렛대를 이용해 스크램블을 젓고 있다. 사다리를 타고 커피머신까지 올라간 트롤이 버튼을 누르자 커피가 머그잔에 담긴다. 커피 향은 언제 맡아도 향기롭고, 고소하다.


식탁에 앉은 나는 그날 뉴스를 보며 정치와 경제의 동향을 살핀다. 그리고 막 차려진 토스트에 스크램블을 올려 한 입 베어 물고, 커피를 마신다.


아침식사를 끝내고 운동을 나간다. 운동을 하기 위해 나를 따라 나온 트롤들은 32마리, 나머지 트롤들은 아침식사를 정리하고, 할 일을 한다.


32마리의 트롤들이 다양하게 준비를 마쳤다. 머리에 운동밴드를 한 녀석, 손목과 무릎에 아대를 차고 준비 중인 녀석, 인라인 스케이트 끈을 묶고 있는 녀석, 애플와치 스포츠 모드를 설정 중인 녀석까지 각양각색이다.


7km의 트래킹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샤워를 한다. 상쾌한 컨디션으로 책상에 앉아 나의 취미인 글을 쓴다. 트래킹에 지친 몇몇 트롤들은 이미 잠이 들었다.


집에 있던 트롤들은 자기 패드를 가져와 내 모니터 옆에 자리를 잡는다. 모니터가 너무 작아 그들이 쓰고 있는 내용은 알 수 없지만 미간을 찌푸린 채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타자를 빠르게 두드린다. 한참 글을 쓰다 주변을 둘러보니 함께 있던 트롤들이 이미 자리를 떠났다.


책상에서 일어나 외출 준비를 하자 운전을 맡은 트롤들도 준비를 시작한다. 그들은 운전대를 잡거나 기아를 바꾸지 않는다. 오로지 컴퓨터를 이용해 운전모드를 바꿀 뿐이다. 그렇게 나를 목적지까지 데려다주고, 자동 주차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선글라스를 끼고, 가죽재킷을 입는지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별다른 말 없이 준비를 마친다.


친구들과 오랜만에 만나 아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낸다. 또 다른 삶의 이야기를 통해 나는 AI 존재들의 이미지를 상상하고 그려낸다. 그 사이 몇몇 트롤들은 내 뒷 테이블에 앉아 밀크셰이크를 마시고, 또 다른 트롤들은 차에서 대기를 한다.


친구들과 헤어진 후 쇼핑을 한다. 세상에 쏟아지는 다양하고 새로운 제품들은 언제나 나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나를 따라나섰던 트롤들의 손에도 쇼핑백 몇 개가 들려있다. 사이즈에 맞는 무엇인가가 존재하는지 궁금하지만 물어보지는 않는다.


저녁은 간단하게 샐러드로 준비해 달라고 말하자 105마리의 트롤들이 모두 가든으로 달려 나간다. 당근하나, 양상추 하나를 따려면 서로가 힘을 합쳐야 하기 때문이다. 집 안에 정적이 흐르는 사이, 다음 세대 트롤에는 더 높은 파워버전을 심어야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스쳐 지나간다. 잠시 후 105마리의 트롤들은 다양한 야채가 담긴 박스를 들고 행진하듯 집으로 들어왔다.


샐러드로 저녁을 먹고 침대에 기대어 책을 펼쳤다. 침실은 개인적인 공간으로 트롤들이 유일하게 들어올 수 없는 곳이다. 가장 조용하고 아득한 공간이기도 하다. 다양한 정보의 책을 읽다 잠이 든다.


트롤들 역시 각자 편한 곳에 자리를 잡고 눕는다. 다음 주까지 발리에서 트롤들과 지낸 후 다음 여행지로 숙소를 옮길 예정이다. 그렇게 나의 하루가 끝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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