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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장아장 아이의 집 탈출 사건!

제8화, 하늘이 무너졌던 하루

by 육십사 메가헤르츠


드르르륵..”


뉴질랜드에 도착한 지 몇 개월 채 안된 어느 여름날, 창문과 거실의 통유리창을 모두 열었다.

오후가 되면서 집안의 온도가 올랐고, 환기도 시킬 겸해서였다. 그 무의식 행동 하나가 나비효과가 되어 하늘이 무너질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뉴질랜드 하우스는 거실이 한쪽 끝에, 방들과 화장실이 반대쪽 끝에 모여있다. 우리 집은 거실이 통유리로 되어있고, 방충망은 없으며 이 것을 열면 정원으로 바로 연결되는 구조였다.


아장아장 걸음마를 이제 막 시작한 막내가 거실에서 놀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유치원에서 돌아온 큰 아이와 방을 정리하며, 유치원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 짧은 대화 시간 사이, 갑자기 정신이 번쩍! 하는 느낌이 들었다.

‘아! 맞다! 막내! 거실이… 왜 이렇게 조용하지?’

일단 대화를 멈추고 이름을 크게 불러본다.


보통은 나에게 뛰어오는 소리가 들리거나 짧게 '응, '이라는 소리를 낸다.

하지만 집이 너무 조용했다. 평소와 다르게 느낌이 너무 이상했다.


빠른 걸음으로 아이 이름을 부르며 거실로 향한다. 분명히 놀고 있던 아이가 없다. 거실에.

이름을 부르며 방으로 가본다. 없다. 방에.

화장실 문은 닫아두었기에 아이가 들어갈 수 없다.

마당으로 달려 나갔다. 없다. 마당에도.


집 안 어디에도 없었다. 내 아이가.


심장이 귀 옆에서, 머릿속에서, 가슴에서. 온몸에서 쿵쾅거리며 뛰기 시작했다. 신발도 못 신은 채 마당과 연결된 길로 달려 나갔다. 그 길을 따라 나가면 찻길이 나온다. 찻길... 차가 다니는 길. 그리고 이제 막 걷기 시작한 아이.

머릿속이 점점 하얗게 물들어간다.


차길로 뛰어나갔다.


혹시 찻 길에도 없으면 어쩌지?

그 짧은 시간 사이에 어딜 간 거야?

낯선 이 나라에서 잃어버린 거야? 내가? 내 아이를?!

내가 그렇게 칠칠맞은 엄마가 아닌데...

뭐... 뭘 입고 있었더라?!

누구한테 연락을 해야 하지?!


길로 뛰어나가는 그 짧은 시간에 나를 향한 질책과 혼란, 걱정, 두려움, 등이 동시에 태풍처럼 몰아치고 있었다. 길가로 나가자 시야가 넓게 트인다. 마른침을 삼키며 주위를 살핀다.



찻길 반대쪽으로 넘긴 시야에 마오리계 아저씨에게 안겨있는 내 아이가 들어왔다.

'하아... 찾았다!'


“Where’s your house?” (너희 집 어디야?)

한국말도, 영어도 못하는 우리 아이를 안고 길가에 서서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그와 나는 시선이 마주쳤고, 우리는 처음 만났지만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우리 아이를 챙겨준 사람이라는 것을. 아이의 엄마라는 것을.


아이를 향해 걸어가는 사이 두 눈 한가득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다. "혼자 밖으로 나가면 어떡해.." 말끝이 흐려진다.

눈물을 참으며 그와 인사를 나눴다. 알고 보니 그는 찻길 맞은편에 사는 이웃이었다. 그 집의 구조상 부엌 쪽에서 찻길이 보이는데 혼자 있는 아기가 보였고, 차가 다니는 길이라 걱정이 되어 나왔다고 했다.


고맙다고, 집 정리하는 사이 나갔다고, 깜짝 놀랐다고, 그리고 또 고맙다고,,, 고맙다고 말했다.

그리고 아이를 꼭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1시간쯤 쉬고 나자 이성적인 생각을 다시 할 수 있게 됐다. 그리고 고맙다는 말로 내 마음이 다 표현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케이크 샵으로 달려가 가장 예쁜 케이크를 사들고 아이들과 그 집을 다시 찾아갔다. 고마움과 한국인의 정을 영어로 완벽하게 표현하지는 못했다. 그래도 그는 다시 찾아온 나에게 자기도 아이가 있어서 어떤 마음인지 안다며 또 한 번의 위로를 해 주었다.




그 뒤로 나는 아무리 더워도 통유리창의 거실 문은 열지 않았다. 방충망을 달아볼까도 생각했지만 상황이 바뀌면서 다른 집으로 이사를 하게 됐다. 외국 스타일을 챙기는 것도 중요하지 않았다. 외국 문화를 좀 늦게 알아가도 괜찮았다. 아이 손을 놓지 않는 것이 더 먼저였다. 조심성이 많은 스타일이지만 '아이와의 순간'은 아무것도 예측할 수 없다는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지금도 아이를 안고 있어 준 그분께 너무 감사하다. 혹여나 내가 그분의 입장이 되는 순간을 만나면 나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겠노라고 다짐해 본다.


"너 혼자 뒤뚱뒤뚱 집을 탈출한 적이 있었어..." 글을 쓰는 나에게 다가온 아이에게 얘기했다.

"그래? 히히힛"

웃을 수 있어서 다행이다. 우리.


해외생활 Tip! 해외에서 아이를 잃어버리면 한국에서보다 더 당황할 수 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전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엄마가 있고, 아빠가 있다. 때로는 아이도 있고, 손자도 있다. 모두가 똑같은 마음으로 도와주려고 할 테니 너무 놀라지 말고, 주변에 도움을 청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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