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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육십사 메가헤르츠 Aug 21. 2023

취업을 잠시 미루겠습니다.

또 한 명의 82년생 김지영

가끔은 행복하기도 해요. 그런데 또 어떤 때는 어딘가 갇혀있는 기분이 들어요.

- 82년생 김지영 영화 대사 중-


내가 경력단절과 언어라는 높은 장벽을 계속 부셔가며, 취업을 하려는 이유는

필요한 돈도 있겠지만, 세상 사람들의 에너지, 소속감, 진취적인 사고방식 등 때문이다. 힘은 들어도 열정을 분출할 내 일이 필요한 것이다.




지난 수요일, 인터뷰와 2시간의 트라이얼을 하고 나왔다.


생각보다 인터뷰 분위기도 괜찮았고, 나름 경력직이라 힘들지 않게 트라이얼도 하고 나왔다. 떨리긴 했지만 테이블별 주문도 실수 없이 잘 받았고, 시키지 않은 업무도 눈치껏 찾아서 했다. 나오면서 일을 가르쳐준 친구에게 오늘 고마웠다고 마무리도 잘하고 나왔다.


내심 기대가 컸다. 곧 일을 다시 하겠구나. 하고 말이다.

이틀 뒤 문자를 받았다.


다 좋았는데, 아이에게 문제가 생겼을 시 아빠가 아닌 무조건 엄마가 가야 한다는 점이 조정이 안 되는 부분이라 같이 일하기 힘들 것 같습니다.


일 마무리하고 나오며 내가 매니저한테 한 질문이 화근이었을까? “3개월간 트라이얼 기간이 있다고 하셨는데, 그 기간 중 혹시 제가 급한일로 빠지게 될 경우 대체할 인원(Casual staff)이 있을까요?” 친구들은 안 해도 될 말을 했다고 말했지만, 그래도 이 나라는 그런  회사들도 존재하니까, 입사 전 깔끔하게 확인해보고 싶었을 뿐이다.


알겠다고 답변을 보냈지만 화가 났다. 그럼 시급도 높고, Full-time 하는 아빠가 달려와야 하는 게 맞나?! 그래서 내가 Part-time으로 지원한 거 아닌가?! 아무리 이해하려고 해도 서운하고 아쉬웠다.


그리고 주말 지난 월요일 아침, 막내 아이에게 급성 장염 증세가 보였다. 미처 화장실에 도착하기도 전에 볼일을 보고 만 것이다. 눈 뜨자마자 아이를 씻기고, 카펫을 닦아냈다. 벌써 3주째 인가보다. 가족들이 Covid-19을 시작으로 돌아가면서 다양한 감기 증세를 보인다.


그래, 계속 아픈 아이들을 두고, 어떻게 출근을 해...
내가 가진 꿈은 천천히 이루자.


다시 현실을 받아들인다.


취업 실패의 고배를 마신 날, 유튭에서 82년생 김지영을 다시 찾아봤다. 하고 싶었던 일을 다시 권한 선배에게 김지영(정유미)은 웃으며 말한다.


"팀장님, 저 힘들 것 같아요."
"왜? 시터 못 구했어? 그럼 파트타임은 어때?"
"그래도 안 돼요."


정신과 다녀야 해서 안된다는 극 중 스토리와는 다르지만, 그 말을 팀장님한테 하는 김지영의 마음은 어땠을까? 현실을 받아들이고, 인정해야 하는 그 말. 그 말을 내 입으로 내뱉어야 하는 그 순간의 마음 말이다.


서운해서 눈물이 났지만 나도 이 순간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조금만 천천히 가자. 막내가 조금 더 크면 할 수 있을 거야. 그때까지 영어 공부도 하고, 글도 쓰면 돼..


또 한 명의 83년생 김지영은 그렇게 현실을 받아들였다. 나는 취업을 잠시 미루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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