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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 Nov 15. 2019

이른 아침의 "에잇!"

새벽(?) 수영 이야기

                                                                 

           요즘 하루가 길다. 일찍 시작하기 때문이지.

          2년 전에 수영을 시작하며 새벽 수영이라기엔 뭣하지만 7시 반을 신청했다. 일찍 일어나는 습관을 들이고 싶어서였다. 나는 당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여서 백수생활을 했는데, 무슨 일이 없으면 언제나 오전 10시나 11시에 눈을 뜨고 오전 시간을 죄다 날려버렸었다. 새벽 수영을 시작하면서 돈을 들이는 활동이다 보니 일단은 일어난다. 그러면 수영하고 씻게 된다. 씻고 나면 그 이후의 시간은 뭘 해도 할 수 있는 세팅이 이뤄져 있다. 백수에게 규칙적인 생활이 생기는 것이다. 
          늦게 일어난 날은 누워서 갈까 말까 고민을 했다. 그러다가 "에잇!" 하며 일어나게 되는 날이 온다. 수영이 재밌어지는 시기다. 물에 뜨고, 킥 판 없이 발차기가 될 때. 자유형을 하고, 배영으로 속도가 붙을 때. 이럴 땐 수영장에 막 가고 싶다.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눈이 떠지고 짐을 챙기고 있다.  아침부터 배실 배실 웃고 있다. 그러고 먹는 아침밥은 환상적이다. (아침밥이 절대로 목적은 아니다.)
          그러다가도 6시 반 수강생들을 존경의 눈으로 바라본다. 7시에 맞춰서 오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수업은 7시에 시작하지만 그걸 위해선 6시에 일어나야 한다. 6시에 일어나려면 전날 12시 전에는 자려고 애쓰고, 조금이라도 가볍게 수영하고 싶어서 적게 먹고 잔다. 수영하는 체력 키우겠다고 든든하게 먹고 근력 운동도 하려고 한다. 그마저도 잘 못 지킨다. 한 시간 차이지만 도대체 6시 반 사람들은 하루를 어떻게 보내는지 궁금할 지경이다. 
           그래도 11월까지는 괜찮다. 12월이 되면서 점점 눈이 늦게 떠진다. 몸도 이유 없이 무거워진다. 늘 고민하지만 역시 나오길 잘했다. 물에 들어가는 게 참 좋다. 특히 겨울인 요즘 처음엔 차가워서 몸이 떨리다가도 발차기 몇 번에 몸에 열이 나는 기분을 즐기고 있다. 추울 때일수록 새벽에 나서는 것이 뿌듯하다. 그래서 그런가 잠시 움츠렸다 어깨가 저절로 펴진다. 
          나는 자존감과 자신감이 바닥일 때 수영을 시작했다. 못할 것만 같던 일들을 한 가지씩 해내고, 6시에 일어나서 따뜻한 물을 한 모금 마시면서 어두운 창밖을 바라본다. 내가 점점 괜찮은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일찍 일어나는 것만으로도 성취감이 들고, 수영을 하고 나면 하루를 이끌어갈 에너지가 생긴다. 내 인생에 수영이 끼어들 줄은 몰랐다. 2년째 심하게 아프거나 특별한 일이 있는 게 아닌 이상 빠지지 않고 수영을 가고 있다. 하루를 수영으로 시작하고, 사람들을 만나면 수영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되었다.  
          나는 여전히 괜한 스트레스와 싸우고 있고, 자존감과도 밀당 중이다. 하지만 버티는 시간이 더 길어졌고, 즐거움이 늘어난 데는 이른 아침 수영이 한몫하고 있다는 건 분명하다. 신기하게도 인생에는 힘을 내야 할 때에 도와주는 '적절한 장치'가 나타나는 것 같다. 내게도 몇 번 그런 순간이 있었는데 2년 전엔 '수영'이었다. 다행히도 적절한 장치를 맞이할 때마다 다시 일어나게 된다.     
          "아~ 수영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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