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음악가들 공연이 열리는 카네기 홀에 가면 자주 만나는 할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면 이렇다. 72세 되는 유대인 할머니는 자주 링컨 센터에서 오페라와 뉴욕 필하모닉 공연을 보고 카네기 홀에도 공연을 보러 오신다. 그분 달력에는 공연 스케줄로 꽉 채워져 있고, 링컨 센터 메트 오페라 하우스에서 발런티어도 하시고, 음악가들을 꽤 많이 알고 있는 분이다. 어제 일요일 오후 3시는 메트 오페라 오디션 공연이 열렸고 그 할머니 달력을 보고서야 난 처음으로 오디션을 일반인에게 오픈한 것을 알았다. 물론 표를 구입해야 하나 특별한 이벤트이니 오페라를 사랑하는 분은 구입해도 좋을 듯 보인다.
아드님이 피바디 음악원에서 박사 과정을 졸업하고 음악가로서 활동하나 생활하기 무척 힘들다고 하시고 며느리는 발레 전공을 하고 강의를 하니 두 사람 수입으로 겨우 생활이 가능하다고 하셨다. 생활도 어려우니 자녀를 출산하지 않는다고 하고 요즘 세대가 과거와 많이 다름을 한국과 마찬가지로 뉴욕에서도 느낀다.
뮤지컬 "지붕 위의 바이올린"이 마치 자신 가족사 같다고 하셨다.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살다 저널리스트 남편을 따라 뉴욕에 와서 살게 된 분이 카네기 홀에 공연을 보러 오셨다. 수잔 할머니는 그분과 함께 이야기를 하며 그 뮤지컬을 봤냐고 하며 눈시울을 적셨다. 난 고등학교 시절 '지붕 위의 바이올린 ' 뮤지컬에 흐르는 곡 선라이즈 선셋(Sunrise Sunset)을 무척 사랑했다. 그때는 뮤지컬 내용도 몰랐다. 훗날 뉴욕에 와서 아들과 함께 브로드웨이에서 뮤지컬을 보았다.
그 할머니 가족은 롱아일랜드에 거주하다 지금은 맨해튼에 살고, 자매는 어릴 적 바이올린을 아주 잘하니 주위에서 줄리아드 음악 예비 학교에서 오디션을 보라고 성화를 해 오디션을 치르고 합격을 했으나 예비학교에서 공부하는 게 싫어서 가족들이 강제적으로 학교를 보내지는 않았고 나중 스탠퍼드 대학에서 박사 과정을 마쳤다고 말씀하셨다.
너무너무 음악을 사랑하는 할머니에게 남자 친구가 있다. 할머니 남자 친구는 맨해튼 음대에서 플루트를 전공한 음악가. 두 분은 공연을 보러 가서 만나 이야기를 하다가 친하게 되었다고. 하지만 할머니에게 슬픈 사연이 있는 줄 몰랐는데 이혼하셨다는 슬픈 이야기를 하셨다. 전 남편은 치과의사였고 25년 동안 함께 살다 이혼했다고 다시는 생각하고 싶지 않은 전 남편이라고. 상처가 아주 깊은 것을 짐작했다. 남자 친구분도 역시 이혼했다. 두 분 모두 이혼에 대한 상처가 깊어 재혼하지 않고 좋은 친구 관계로 지내신다. 함께 자주 공연과 전시회를 보면서.
어느 날 그 할머니는 내게 종일 무슨 일을 하냐고 물으셔 내 아이폰에 담긴 센트럴파크의 벚꽃 사진과 설경 사진을 보여주었다. 할머니는 내 사진을 보고 깜짝 놀라셨다. 이렇게 아름다운 공원이었냐고. 72세 뉴요커 할머니는 내 사진을 보고서야 처음으로 센트럴파크의 봄을 느끼셨다. 워싱턴 DC 벚꽃이 유명하니 뉴욕에서도 벚꽃 구경하러 백악관이 있는 워싱턴 DC에 가고 우리 가족도 수년 전 벚꽃 구경하러 갔다. 백악관이 담긴 벚꽃 사진을 담을 수는 있으나 한국만큼 예쁘지 않았다.
또한 꽃 사진은 꽃이 피어야 사진을 찍을 수 있고 1년 가운데 예쁜 꽃이 피는 시기는 10일 정도가 될까. 그 가운데 햇살이 아주 좋은 날 사진도 예쁘다. 하지만 햇살이 아주 강한 시간 역시 좋은 사진 담기 어려우니 꽃 사진 찍기 얼마나 어려운지 짐작할 수 있다. 설경 사진도 마찬가지다. 하얀 눈이 내리나 금세 녹아버려 예쁜 사진 담기 정말 어렵다. 찰나를 잡지 않으면 불가능한 꽃 사진과 설경 사진.
사진 찍어서 블로그와 브런치에 올리는 작업은 정말 쉽지 않다. 뉴욕에 오래오래 거주해도 센트럴파크의 봄과 브루클린 식물원 벚꽃이 얼마나 예쁜지 모른 분도 아주 많다. 내 아이폰 사진을 보여주면서 수잔 할머니랑 좀 더 친하게 되었다. 할머니는 뉴욕에서 오래오래 살았지만 센트럴파크에 벚꽃이 핀 줄도 모르고 계셨다. 내 아이폰에 담긴 사진을 보고서야 내가 누군지 더 자세히 알 거 같다고 하셨다.
낯선 사람과 이야기를 할 때 처음에 어디서 말문을 열지 모르지만 각자 아이폰에 담긴 사진을 보여주면 쉽게 이야기가 시작된다. 사진에는 추억이 담겨 있다. 언제 어디에 방문했는지, 어느 레스토랑에 갔는지, 언제 무엇을 했는지 등. 낯선 사람과도 취향이 비슷하면 금세 친해진다. 음악과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은 공연과 전시 이야기를 하면 오래된 친구처럼 가까워진다.
오늘 수잔 할머니는 링컨 센터에서 '토스카' 오페라를 보겠다. 얼마나 좋을까. 오래전 내게 보여준 할머니 달력에 안나 네트렙코가 출연하는 토스카 공연 티켓을 미리 구입했다고 적혀 있었다. 이번 시즌 토스카 오페라 공연이 너무 좋다고 소문이 자자하고 난 몇 차례 러시 티켓을 사려고 시도했지만 불가능했다.
2018. 4. 30 월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