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엔 전시회
9월 25일 수요일
노랗게 물들어 가는 나뭇잎을 보며 아들과 함께 산책을 하러 갔다. 아들은 도토리를 주워서 청설모에게 주려고 하는데 이상하게 청설모가 안 보였다. 400 미터 트랙을 몇 바퀴 돌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돌아와 식사를 하고 설거지를 하는 동안 매미 울음소리를 들어 기분이 좋았다. 내년에 다시 들을 줄 알았던 매미 소리가 얼마나 반가운지 몰라. 그만큼 더웠나. 식사 후 간식으로 수박을 먹었다.
지난 월요일 밤 타임 스퀘어에서 오페라 갈라 공연을 조금 보고 플러싱에 돌아와 한인 마트에 장을 보러 갔다. 그날 타임 스퀘어에서 오페라 보는 동안 아들 혼자 식사하려는데 프라이팬에 기름을 넣고 달구는 동안 냉장고 문을 여는데 달걀이 안 보여 놀랐다고. 매주 장을 보러 가는데 왜 냉장고는 텅텅 비어가는지 몰라.
달걀 조차 없으니 아무리 피곤해도 장을 보러 가서 고등어 2마리, 두부 4모, 고구마 약간, 닭고기, 돼지고기, 양파, 호박과 수박 등을 구입해 집에 돌아왔다. 날씨가 여름처럼 더워 수박이 먹고 싶었다. 요즘 삶은 고구마가 주는 행복도 크다. 왜 한국에서는 고구마 맛을 잘 몰랐을까. 피자는 주문해 먹기만 하니 편리하고 고구마는 삶아야 하니 약간 불편하지만 피자보다 고구마가 더 좋은 것은 한국인이라서 그럴까. 한국 음식 예찬도 해야지. 만들기 귀찮지만 음식 맛은 좋다. 시간도 많이 드니 힘들기만 하지만 어릴 적부터 먹은 한식이 좋고 우리 집은 한식을 자주 먹고 가끔은 파스타와 샌드위치 등 다른 음식을 먹기도 한다.
식사 후 지하철을 타고 유니언 스퀘어 역에 내려서 그린 마켓 구경하니 행복했지. 오랜만에 보는 노란 해바라기 꽃도 보고 예쁜 달리아 꽃도 보니 기분이 좋아졌지만 오래 머물 수 없었다. 그래머시 파크 맞은편에 있는 내셔널 아트 클럽(The National Arts Club)에서 전시회를 보는 것이 나의 1차 목표.
어제는 이스트 빌리지에 가서 공연도 못 보고 허탈한 마음으로 집에 돌아왔지만 날마다 그럴 수는 없지. 기분 좋은 일을 만들어야지. 그래서 오랜만에 전시회를 보러 갔다. 실은 유니언 스퀘어 반스 앤 노블 북 카페에 자주 방문할 때는 근처에 있는 내셔널 아트 클럽 전시회를 자주 보곤 했는데 요즘 나의 아지트가 변경되니 자주 안 가는데 곧 막이 내리는 특별전이라서 서둘렀다.
그런데 배가 아파서 화장실부터 갔다. 평소 갤러리도 화장실도 조용한데 낯선 사람들이 화장실에 보여 의아했다. 화장실에서 나오려다 낯선 분에게 어디서 왔냐고 물었는데 시카고 출신이라고 하면서 로스앤젤레스에서도 살다 뉴욕으로 옮겨왔다고. 세 도시 모두 미국에서 상당히 큰 지역인데 어느 곳이 가장 마음에 드냐고 물으니 그제야 배우라고 소개하면서 뉴욕이 기회가 많은 도시라서 가장 좋다고 말씀했다.
정말 그렇겠다. 미국에서 태어나 시민권 있고 영어가 모국어, 특별한 재능이 있다면 뉴욕에서 더 좋은 기회를 찾을 수 있겠다. 다른 나라에서 온 이민자들과는 상황이 다른 경우다. 배우뿐만 뉴욕에 찾아온 것도 아니지. 마크 트웨인, 오헨리, 존 스탸인벡 등 모두 뉴욕에 찾아와 작가 활동을 했다. 과거도 뉴욕은 능력 많은 사람들에게는 기회의 땅이었다.
뉴욕에 살면서 보고 느낀 나의 소감은 뉴욕은 모두에게 공평한 기회의 땅은 아니다. 지금 현실이 그렇다는 말이다. 신분 장벽과 언어 장벽이 높으면 끝도 없는 문제에 부딪힌다. 물론 외국인이라도 전문직에 종사하고, 언어 장벽 없고, 영주권 받는 케이스는 가장 낮은 곳에서 시작하는 이민자와 다르고 뉴욕이 더 좋은 기회의 땅일 수 있다.
낯선 여배우랑 잠시 이야기를 하고 전시회를 보았다. 갤러리에 몇몇 사람들이 전시회를 보고 나도 잠깐 그림을 보며 마음이 평화로워졌다. 세상은 복잡하지만 갤러리에 가면 딴 세상을 보고 느낀다. 작가들이 담은 아름다운 그림을 보노라면 기분이 좋아진다. 그래머시 파크 주변에 오헨리가 단골인 Pete's Tavern이 있다. 뉴욕 레스토랑 식사비가 비싼데 이곳은 저렴한 편이다. 아들과 가끔씩 찾아가서 식사를 해서 우리의 추억이 남은 곳이다. 레스토랑에서 일하는 아가씨가 무척 예뻤고 늘 같은 시각에 같은 테이블에 앉아서 식사를 하는 분도 계셨다. 그분이 무얼 하는지 궁금했지만 묻지는 않았다. 피츠 태번 근처에 뉴요커가 사랑하는 Irving Farm New York 카페가 있는데 언제나 손님이 많더라.
얼른 그린 마켓이 열리는 유니언 스퀘어 지하철역으로 가서 지하철을 타고 차이나타운에 내렸다. 이쪽저쪽 기웃거리다 소호 포토갤러리에 가는 길 계획에 없던 갤러리에 방문해 전시회를 보았는데 작품이 인상적이었다.
트라이베카 갤러리는 첼시 갤러리보다 더 조용하다. 기대치가 높으면 실망하기 쉬운데 갑자기 본 전시회 작품이 좋아서 하늘로 날아갈 듯한 기분이었다. 조금 더 걷다 소호 포토갤러리 사진전도 보았다. 대개 한 달마다 전시회가 바뀐다. 역시 곧 막이 내려서 서둘렀다.
그래머시와 트라이베카에서 전시회 보고 그냥 집에 돌아오기 어려워 차이나타운을 거닐었다. 맨해튼이지만 한자 간판이 많이 보인 지역이라 여기가 뉴욕이야 하면서 의아한 분도 있을지 몰라.
차이나타운에 있는 Columbus Park에 갔더니 노인들이 카드놀이를 하고 있어서 놀랐고 중국 음악을 연주하는 음악가도 보고 데생을 하는 화가들도 보았다. 낯선 차이나타운을 거닐다 리틀 이태리를 걸었다. 얼마 전 산 제나로 축제가 열렸던 리틀 이태리는 조용했지만 영화 속에 등장하는 멋진 레스토랑이 참 많다.
근사한 곳에서 와인을 마시며 식사를 하는 사람들도 아주 많더라. 리틀 이태리 그라피티도 보며 소호를 향해 걷다 나의 아지트 하우징 웍스 북 카페에 가서 잠시 쉬려는데 프라이빗 특별 이벤트가 열린다고 하니 밖으로 나왔다.
수요일 부지런히 돌아다녔다. 플러싱에 사는데 맨해튼 유니온 스퀘어, 그래머시, 차이나타운, 트라이베카, 리틀 이태리와 소호에 갔다. 얼마나 많은 지역을 걸어 다녔나. 스스로 생각해도 놀랍다. 약 16000보를 걸었더니 기분이 좋아져 신기하다. 파란 가을 하늘 보고 산책하고 갤러리에서 전시회 보고 낯선 거리 걸으며 구경하니 기분이 좋아졌을까. 7호선 지하철 안에서 구슬픈 아코디언 멜로디도 들어서 기분도 좋았지. 하루 종일 기분 좋은 일 가득했구나. 감사의 기도를 드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