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네기 홀 Marc-André Hamelin, Piano
10월 22일 화요일
하늘은 흐리고 가을비 내린다고 하니 가방에 우산 하나 담고 외출을 했다. 줄리아드 학교에 갈지 카네기 홀에 갈지 망설였다. 만약 저렴한 티켓이 남아 있다면 카네기 홀에서 공연을 볼 생각으로 늦은 오후 박스 오피스에 들려 직원에게 값싼 티켓이 남아 있는지 묻자 한 장 주었다. 웹사이트에서 확인하니 피아니스트 Marc-André Hamelin, Piano(마크 앙드레 아믈랭) 티켓이 다 팔리지 않고 저렴한 티켓도 남아 있었다.
수년 전 처음으로 그의 피아노 독주를 카네기 홀에서 봤는데 명성과 달리 그날 연주는 형편없었다. 특히 전반부 연주는 망치로 쾅쾅 두드리는 느낌이 들어 아들에게 정말 이상하다고 말했는데 휴식 시간 조율사가 아주 오래오래 피아노 조율을 했다. 그제야 피아노 조율에 문제가 있었나 보다고 눈치를 챘다. 카네기 홀에서 공연을 보면서 그리 오래 조율한 것은 처음이었다. 그날 후반부 연주는 전반부보다 더 나았다.
저녁 7시 반이 지나 카네기 홀에 도착 하늘 높은 계단을 올라가 발코니 석에 앉았다. 평소와 달리 객석에 빈자리가 아주 많았다. 그리 많은 빈자리를 본 것은 아마도 처음 같다. 카네기 홀에 가면 자주 만난 지인들은 한 명도 만나지 못했다. 나 역시 요즘 상당히 컨디션이 안 좋아 공연을 볼지도 망설였다.
피아노 독주회는 음악을 사랑하지 않은 분에게는 매력적이지 않을 수 있다. 오케스트라 반주가 없는 독주는 자칫 지루할 수도 있다. 10월 베를린에서 온 피아니스트를 만난 날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랑 협연했던 프랑스 피아니스트 연주는 그다지 기억에 남지도 않고 다닐 트리포노프 연주는 정말 좋았고 마추예프 피아노 연주도 스트라빈스키 곡이 가장 기억에 남고 좋았다.
마크 앙드레 아믈랭의 연주는 과연 어떨까 궁금했는데 휴식 시간이 지난 후반부 슈베르트 연주가 참 좋았다. 반복이 무척 많은 곡이었다. 젊은 나이에 요절한 슈베르트 음악이 참 좋다. 가난과 고독과 몸부림쳤던 슈베르트의 음악을 들으며 위로를 받은 가을비 내린 날. 전반부 내가 잘 모른 Feinberg Piano Sonata No.3, Op.3 곡 연주도 좋았다. 악보 없이 2시간 동안 피아노 연주를 하니 얼마나 위대한가. 음악가들 참 대단하다.
피할 수 없는 거대한 운명과 끝없는 투쟁을 하면서 창작의 혼을 불태운 위대한 예술가들에게 얼마나 감사를 해야 하는가. 내게 주어진 작은 것에도 감사 감사 감사하고 살자는 마음이 들었다.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고 하늘의 뜻을 기다리는 것 그게 인생인지도 모른다. 빈 손으로 태어나 빈손으로 떠난다. 즐거운 마음으로 그날그날 최선을 다하면서 행복을 찾자.
인생은 뜻대로 되지도 않는다. 시도 때도 없이 찾아와 우리를 괴롭히는 불청객들이 참 많다. 매일 피아노 조율하듯 우리들 마음을 조율해야 한다. 악기 연습하기 전에 반드시 조율을 한다. 마음도 악기와 마찬가지다. 내 마음이 조율되지 않으면 거센 파도에 휩싸인다. 살다 보면 좋은 일도 있고 나쁜 일도 많다. 감정에 휘말리지 말고 지혜롭게 살아야 한다. 인간이니 실수도 한다. 매년 여름에 열리는 유에스 오픈 테니스 축제에 가면 전설적인 선수들도 자주 실수를 한다. 원해서 실수를 한 것도 아니다. 실수는 반복하지 않도록 노력하면 된다.
밤늦게 공연이 막이 내리고 카네기 홀 옆 지하철역은 닫혀 있어서 약간 불편했고 맨해튼에 산다면 앙코르 곡도 감상하고 떠났을 텐데 가을비 내리고 플러싱에 사니 앙코르 곡은 듣지도 않고 홀을 떠났다.
컨디션이 안 좋아 닭죽을 끓여 먹었다. 가을비 내린 날 안개 가득한 맨해튼 하늘도 쳐다보고 백만 개의 빗방울 동그라미도 보았다. 또, 이상한 전화도 받았다. 2주에 한 번씩 1만 불을 보낸다고 하니 얼마나 좋아. 하하. 웃는다. 웃어. 돈 벌기 얼마나 어려운가. 매달 2만 불을 받으면 돈 걱정 안 해도 되겠어. 요즘 이런 사기꾼들이 아주 많다. 오래전에도 로또가 당첨되었다고 이메일을 받았다. 맨해튼 노인들도 이런 사기 연락을 받고 속은 사람들도 많다고 한다. 수 백억 준다고 하면서 미리 세금 내라고 하니 수백억에 비하면 몇 만불 세금은 아무것도 아니니 보낸 노인도 있다고 한다. 속지 말자. 지나치게 친절한 사람은 항상 조심해야 한다.
직장 구하기도 얼마나 어려운 세상인가. 힘들게 직장 구해서 출근해봐라. 돈 벌기 얼마나 어려운지. 경험하면 안다. 상사의 온갖 눈치 보면서 일해도 최저 임금 받는 경우도 많다. 임금도 제대로 주지 않은 경우도 많다. 겉과 안이 다른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과거에는 직장 구하면 평생 일했는데 요즘은 다르더라. 아이비리그 대학 졸업해 직장 구해도 가만히 생각하니 자신의 노동보다 보수가 더 작은 거 같아 사직서 제출한 젊은이들도 많다. 세상이 점점 변하고 있다. 나쁜 사람들 안 만난 것도 행복이다. 달콤한 말로 속삭인 사람들을 조심하자. 점점 빈부차는 커져가고 사기꾼도 많아져가고 세상이 공포 영화보다 천만 배 더 무섭다. 나쁜 악당들이 너무나 많다. 악마의 속삭임은 항상 달콤하다. 악마의 유혹에 넘어가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