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의 진짜 이유] 이렇게 이기적이다
난 공지영 작가가 밉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봉순이 언니>에서 부터 내가 좋아하는 에세이집 <지리산 행복학교>까지 우리 집 책꽂이에는 공지영 작가 책이 가득이다. 그런데 오늘부터 공지영 작가는 나에게 미운털 박혔다.
재수생 딸내미가 우울하다. 그 어렵다는 독재(독학 재수)를 한다. 멘탈이 무쇠 거나 재수 학원에 내는 돈이 무지 아깝거나 둘 중 하나다. 전후반 긴 시간을 명랑 쾌활 소녀로 잘 뛰더니, 경기 종료 한 달을 앞두고 급습한 우울 한 방에 뒤로 넘어갔다.
방문을 걸어 잠그고, 화장실 가려고 나올 때만 얼굴을 보인다. 힐끗 곁눈으로 훔쳐보면 딸내미의 눈가가 불그스름하다. 나는 5분마다 딸내미 방문을 두들기며, 그동안 쌓아 놓은 나름의 비책을 하나씩 꺼내 내밀어본다.
“까뭉이 데리고 산책 갈까?”
“아니.”
“매운 떡볶이 먹으러 갈까?”
“아니.”
“카페 가서 달달한 거 먹을까?”
“아니.”
“그럼, 마그네슘 먹어볼래?”
“아~~~~~~쪼옴! 나 좀 내버려 두라고~~~~.”
비명에 가까운 소리가 잠긴 방문 사이로 터져 나온다.
‘아쪼옴’까지 가면 상태가 심각하다는 증거다.
난 앉았다 일어났다 물을 코로 마셨다 입으로 마셨다 창밖을 내다봤다 안절부절못한다. 머릿속은 뭔 뾰족한 수가 없나 과거를 이 잡듯 뒤진다. 앗! 아직 말하지 않은 비책 하나를 발견했다. 일단 딸내미 방에서 무슨 소리가 나는지 최대한 귀를 쫑긋거려 들어본 다음, 조심스레 목구멍에서 소리를 긁어모아 뱉어본다.
“따~알~냄! 엄마랑 노래방 갈까?”
잠시 정적이 흐른다. 혹시, 성공?
“정말 미치겠네. 나 좀 내버려두라니까.”
날카로운 비명 뒤에 이제는 꺼이꺼이 통곡 소리까지 들린다. 비법이고 나발이고 다 실패다. 나도 미치겠다. 왜 그러는지 이유라도 속 시원히 말해주면 좋겠는데, 그냥 저런다.
또 ‘나에게 그분이 오셨다.’ 불안이라는 손님.
‘불안하다.’
딸내미가 저러고 있으니 그건 당연하지. 그래, 네 불안의 이유는?
‘불안하다. 저러다 일 년 준비한 수능 망칠까 봐.’
시험 결과 나오면 맞춰서 대학 가면 되지. 불안의 진짜 이유, 그걸 말해봐. 여기가 제일 난이도가 높지만. 그래도 입을 떼봐.
‘불안하다. 저러다 일 년 준비한 수능 망칠까 봐. 그 모습을 지켜볼 내가 힘들까 봐.’
결국 내 얘기다. 그걸 지켜볼 내가 자신이 없는 거다. 딸내미에게 하루하루 다가오는 결전의 시간이 얼마나 불안하고 두려울까 공감하고 위로를 건넬 생각보다, 옆에서 지켜볼 내 걱정이 먼저다.
장례식장에서 ‘나는 어찌 살라고.’ 통곡하는 것도, 냉정하게 까놓고 얘기하자면, 떠난 이를 안타까워하는 것보다 그 없이 살게 될 나의 남은 삶이 걱정돼서 우는 거다. 불안의 진짜 이유는 이렇게 이기적이다. 누구에게 말하기도 민망하고 그래서 ‘있는 그대로’ 직시하기는 더 어렵다.
남편이 밖에 나갔다 오더니 손에 뭘 사들고 들어왔다.
“딸냄! 너 좋아하는 배스킨라빈스 아이스크림이랑 공차 사 왔어. 좀 있다 나와서 먹어.”
딸내미 방문에 대고 이렇게 얘기하더니, 식탁 위에 진분홍 비닐봉지와 공차를 올려놓는다.
남편은 상황을 자기가 원하는 방식으로 통제하려 하지 않고 자기 할 일을 한다. 지금 당장 자기가 할 수 있는 작은 일이라도 찾아서 그걸 한다. 딸내미가 좋아하는 아이스크림과 공차 사 오기와 같은.
여전히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나에게 남편이 말했다.
“그냥, 내버려 둬. 시간을 줘. 그럼 괜찮아질 거야.”
이런 상황에서도 쿨한 남편이 멋져 보여 남편 따라 하기를 해본다. 내가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작은 일이라…. 고민하다, 수능 때 먹이려고 사다 놓은 ‘불안, 초조, 불면을 위한 드링크제 천왕보심단’을 딸내미 방문 앞에 놓아둔다.
우리는 자기 자신과 다른 이들에 대해 ‘바라는 상’을 가지고 있다. 그 ‘상’은 내가 기억하는 과거의 모습 중에서 가장 멋지고 바람직한 모습이다. 딸내미가 멘탈 잘 챙기며, 밥도 잘 먹고, 씩씩하게 엄마 아빠 괴롭히지 않고 자기 할 일 잘하는 것과 같은.
‘상’에서 벗어나는 ‘변화’를 우리는 두려워한다. 변화는 불편하고 힘이 들며, 무엇보다 우리를 불안하게 만든다. ‘변화를 겪어내야지.’하고 마음을 다잡기보다, 내가 바라는 바람직한 ‘상’으로 어떻게든 빨리 돌려놓으려고 먹히지도 않는 별짓을 다한다. 그렇게 안쓰럽게 애를 쓰다 바로 결과가 바뀌지 않으면 또 불안해한다.
딸내미는 다음 날 아침, 다행스럽게 다시 ‘내가 바라는 딸내미의 상’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요란하게 치던 천둥 번개가 밤새 모두 물러간 것처럼.
“근데, 딸내미 어떻게 해서 진정되었어? 엄마가 준 드링크제 먹었어?”
“아니.”
혹시나 싶어 물어보니 역시나 내 뻘짓은 안 먹혔다.
“그럼, 어떻게 진정됐어?”
“우리 집에 <딸에게 주는 레시피> 책 있잖아. 공지영 꺼. 그 책 읽다 보니 마음이 편해지더라고. 속이 갑갑할 때 먹는 시금치 된장국 끓이는 순서를 하나씩 생각해 봤더니 어느새 잠이 들었어.”
“….”
내가 딸내미 중학교 졸업 선물로 건네준 책이다. ‘오늘도 열심히 살아가려고 애쓰는 딸에게 보내는 삶에 관한 따뜻하고 솔직한 응원을 담은’이라는 긴 설명이 붙어있는 책이다. 열심히 살아가려고 오늘도 애쓰는 우리 딸에게도 그 책이 힘들 때 도움이 되었다니 좋긴 한데….
내 뱃속으로 낳고 20년을 함께 산 엄마보다 한 번 만난 적도, 말 한마디 건넨 적도 없는 공지영 작가가 도움이 되었다는 말이지…. 뭔가 속이 갑갑하다. 공지영 작가가 권하는 시금치 된장국을 나도 끓여 먹어야 하나?
힘든 순간 내 딸내미에게 도움되는 사람이 엄마인 내가 아니고 공지영 작가라니…. 카카오 글쓰기 플랫폼, 브런치 작가 되었다고 입 찢어지고 다닌 지 25일 차. 다리 짧은 뱁새, 가랑이 찢어지는 소리가 툭 들린다.
그래도 나는 공지영 작가가 밉다.